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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과 평교사와의 대화



고 노무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사건중에 '평검사와의 대화'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검새라는 말이 나올 그런 사람들이었지만, 어쨌든 몇몇 평검사(이렇게 말하니까 꼭 권력자 아닌것 같지만 검사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권력자임을 스스로 즐기고 있었겟지)와 대통령이 이른바 터놓고 이야기 하고, 그게 전국에 생중계 되었던 행사 말이다.

그런에 4월 26일 곽노현 교육감이 "평교사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교육감이 평교사들을 모아놓고 훈시를 하는게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지라 비록 초청자 명단에는 없지만 그냥 찾아 갔다. 그런데 너무 빨리 도착해서 제일 앞줄에 강제 배당되고 말았다. 하지만 불청객 답게 발언을 삼가하고 경청과 관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김상곤 교육감과의 대화에도 참가했으니(그때는 정식 초청), 교육감과의 대화와는 참 인연이 많다. 아무리 한계가 있니 뭐니 해도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고맙게 여겨야 한다. 옛날 같으면 교육감은 커녕 본청 장학관 만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였으니까.

우리는 자꾸 진보를 어떤 정해진 내용으로 규정하려는 편향을 가진다. 그래서 그 내용들이 얼마나 관철되었는가를 가지고 진보다 아니다를 따진다. 하지만 그것은 진보를 가장한 보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과정과 형식이다. 내용은 얼마든지 바뀔수 있고, 또 내 생각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형식이 얼마나 열려있는가, 그리고 그 내용이 같은 과정과 형식을 통하면 얼마든지 바뀔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책 자체는 어떤 진보교육감보다도 혁신적이었던 유인종 교육감을 진보교육감이라고 까지는 부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말 터놓고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곽노현 교육감의 이번 행사는 그가 "진보적"임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10개월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많은 교훈과 학습이 있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낡은 관행적 교육, 학생의 행복에 무관심한 교육, 소외계층들을 더더욱 소외시키는 불평등한 교육을 혁파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영리하게" 활용할 것임을, 또 그런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대화를 나누어 보았던 김상곤 교육감과 비교해 보면, 교육관료들과 수싸움을 하는 노련함, 노회함은 김교육감이 앞서는 반면, 교육에 대한 비전과 의지는 곽교육감이 보다 확고하다는 느낌이었다. 또 자신의 교육감직 수행을 전체 진보운동의 관점속에서 바라보려는 태도도 곽교육감 쪽이 보다 확고해 보였다. 이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김교육감 보다 곽교육감이 관료보다 운동가에 더 가깝다는 의미인데, 때로는 운동가의 어떤 이상주의나 낭만이 현실의 장벽에 의해 큰 상처를 입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예리한 현실의식을 갖춘 보좌진들의 조력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곽교육감이 터놓았듯이 그에게 "교육에 대한 전문성"은 없다. 그래서 그는 지난 10개월을 "선무당이 사람잡았다."라고 매우 진솔하게 자아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행정조직을 주무를" 능력은 있다고 자부했다. 문제는 그 행정조직을 주물러서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이며, 진보적인 교사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반면 교사들은 노회한 관료조직들을 주무르는 정치적 감각 부분에서는 너무 우직하고 순진할 수 있다. 그러니 양자간의 협력이 필요한 것이며, 교육감은 이를 요청한 것이다. 그런 긴 안목과 먼 싸움을 내다보면 당장의 현안들은 매우 사소한 것이나 지엽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지엽적인 것에 발목을 잡혀서 먼 싸움, 긴 그림을 망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생각과 관점을 진보교육감 핥기라고 폄하하는 전교조내 좌파들의 원리주의적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그래서 내가 전교조의 문제는 정치적이면서 정치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관심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에 가 있으면서, 주장을 펼치고 관철시킬때 필요한 정치력은 부족해서 하고 한날 들이받고 떼쓰기나 한다는 뜻이다. 물론 진보교육감을 핥아서 한 자리 해 보려는 일부 전교조 원로분들의 거슬리는 행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진솔하게 교육감과 대화하고 고민을 함께 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려는 진지한 교사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식의 대화가대 앞으로도 대상을 바꾸어 가며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그때마다 불청객 관찰자로 참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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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