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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보고서(1)

곽노현 교육감의 회심의 작품이라면 작품이고, 또 그분이 직접 말씀하신대로 선무당이 사람잡은 것이라고 하면 또 그렇다고 볼 수도 있는, 학급별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단 처음 해 보는 일이니 리포트를 남겨야 하겠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고, 교사들의 피로도도 매우 높았습니다.


우리반은 옆반과 함께 단촐하게 강원도 내륙권 문화기행을 했습니다. 코스와 숙소는 담임이 짜고, 이를 묶어서 하나의 패키지로 만든 다음 여행사에게 일괄 구입하는 형식으로 다녀왔습니다. 담임이 숙소 체크아웃할때마다 매 식당 갈때마다 매 관광지 입장때마다 학교 카드 들고가서 결재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한결 깔끔하고 또 저렴한 것 같습니다. 아직은 여행사들이 이런 소규모 학생단체 상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큰 혼란이 있었지만, 잘 정착이 되면 교사가 패키지를 짜고, 여행사가 수속을 대행하는 형태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어쨌든 출발입니다. 잔뜩 들뜬 아이들과 걱정이 태산인 담임의 모습이 너무 대비되지 않습니까? 버스가 흔들려서 사진이 영 엉망입니다만...


어쨌든 첫번째 코스인 영월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여행사 직원과 합류하기로 했는데, 뜻밖에도 회사 고위층에 계시는 나이 지긋하신 팀장이 오셨습니다. 아마도 여행사에서 이런 소규모 수학여행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조사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일단 경치는 참 좋습니다. 또 아이들이 두반 60여명 뿐이라 풀어놓고 마음껏 구경할 수 있어서 그것도 좋습니다. 붐비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두배 세배가 되겠죠.

특히 졸업앨범용 단체사진 찍을때 확실히 간편했습니다. 10반이 이동하면 한 반씩 사진 찍느라 벌써 한 시간이 갔을텐데, 딱 두반이니 10분만에 사진 다 찍고 시간여유가 남습니다. 이렇게 사진찍고 내려오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폭우가 내려서 다음 코스인 청령포와 고씨동굴이 폐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돌발상황이 발생했을때도 팀이 소규모라 훨씬 덜 당황스럽습니다. 버스기사님들, 여행사 팀장님, 그리고 담임 2명 이렇게 다섯명이 머리를 맛대고 스맛폰으로 찾고 하다가 화암동굴로 진로를 수정했습니다. 이렇게 즉석에서 코스 변경이 자유로운게 소규모 수학여행의 또 다른 장점인 것 같습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아이들은 마냥 즐겁습니다. 이렇게 화암동굴까지 관람하고 나서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애들 숙소로 밀어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숙소 배정 후 두시간 쯤 지났을까? 애들이 방문을 두드리고 난립니다. 뭔일인가 봤더니 아뿔사 방배정이 잘못되었습니다. 10명인 조에게 26평 방이, 6명인 조에게 32평 방이 배당되었던 것입니다. 맙소사 이런 실수를! 대규모 수학여행이었다면 노련한 조교들이 착착착 처리했을테지만, 여행전문가가 아닌 담임 손을 타니 이런 실수가 벌어집니다. 어쩌겠습니까? "몽땅 짐싸서 방 교체!" 하고 소리치며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이들이 투덜거리며 짐을 싸고, 복도로 어그적거리며 나옵니다. 일대 아수라장입니다.

짐싸서 방 뺐는데, 들어갈 방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복도에 퍼져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코믹합니다. 한 장 찍었지만 플래시가 터져서 모두 로봇눈 처럼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 끝에 겨우 방배정이 끝나고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생각하면 이건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이 "망할 것들"은 체력이 무제한입니다. 아예 안 자기로 작정하고 온 16세 청춘을 44세 중년이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28세 차이! 방 곳곳에서 라면 끓이고 삼겹살 굽고, 온갖 게임이 난무하고, 콘도 편의점에서 사재기 하고, 노래방에 찜질방에, 아이들이 거미떼마냥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대규모 팀이라면 숙소 하나를 전세낸 뒤 조교들이 철통 방어를 하겠지만 64명에게 통으로 내어주거나 조교를 제공할 수련원이나 콘도는 없습니다. 꼼짝없이 담임 몫입니다. 여행사 가이드는 가이드지 조교가 아닙니다. 주무셔야 다음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대체 언제 잘래?"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다 결국 내가 먼저 잠듭니다. 그런데 새벽 1시에 애들이 방문을 두드립니다. "샘, 배고파서 잠이 안와요." "편의점 가" "문 닫았어요" "어쩌라고?"... "샘 목말라요" "그래서? 생수 사" "문 닫았어요" "어쩌라고?" 하여간 온갖 민원이 끊어지지 않고 들어옵니다.

마침내 새벽 두시. 모든 상황이 종료됩니다. 애들이 종료된게 아니라 내가 종료되었단 뜻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식사 시간이 7시이니 애들을 6시에는 일어나도록 해야 하고, 난 5시30분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세시간 반... 수면.... 이렇게 이틀밤 합쳐 7시간 이내의 수면만이 보장됩니다.... 아 까마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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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