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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와 운동권의 실패: 진보교육감 데자뷔?(1) 남자, 남자, 남자

나는 그 동안 수업 열심히 하고 학생들과 호의적이고 유쾌한 상호작용 하는 교사로 , 또 제법 영향력 있는 블로거, 저술가, 연구자로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되고서 이런 저런 연락을 받기도 했지만, 원칙적으로 나는 전교조 조합원이며, 교육감은 설사 진보교육감이라 하더라도 사측이기 때문에 조합과 사용자의 원칙적인 관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조합은 설사 진보교육감과 협력할 일이 있더라도 교섭과 정책협의를 통해서 해야지, 조합원들이 직접 교육청에 진출해서 할 일은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포스팅 해 두었었다. (포스팅 보기)

그랬던 내가 도리어 이런 저런 TF에 참가했다. 그래서 상당히 다이나믹한 두달을 보냈다.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인데, 옛날에 써 두었던 포스트를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그 포스팅인즉 "교육감 TF에 가담한 전교조 전현직 간부들은 속히 떠나라"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교조 전직 간부였으니 이율배반을 행한 셈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이율배반을 범한 이유는 참여정부 데자뷔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TF에 참가한 선생님(홍일점이다)의 표현대로 "지못미"는 이제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데자뷔가 정말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가 호언장담했던 만큼 구원투수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어쩌면 블로운 세이브나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실패를 기록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내가 보았던 데자뷔나 기록해 두려고 한다. 훗날 진보진영이 집권하였을때 또 다시 지못미 하지 않도록

참여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씽크탱크의 현실감각 결여였다. 노 전대통령도 처음에는 운동권 출신들을 중용하였으나 그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나중에는 역정을 내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뭘 어떻게 할지 좀 제시하라."인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한결같이 두 가지 종류의 발언만 했다.
"지금 진행중인 ^****8는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많다. 그러니 &&&&&한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럼 대통령은 관료들에게 "&&&&&한 방향으로 정책을 세우라"고 지시하지만 관료들이 그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턱이 없다. 그러니 대통령이 언론에 발표한 내용과 실제 현실에서 집행되는 정책이 따로 노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운동권들은 또 가서 비판한다. 하지만 실제 집행 가능한 정책까지 수립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만약 관료들 중 그런 정책을 쌈박하게 패키지로 수립할 수 있고, 그러면서 나름 진보적인듯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출세줄이 완전히 보장된 것이다. 이를테면 김진표 같은 사람이 그렇다.

나는 이렇게 풍성한 문제제기와 방향제시에 비해 터무니 없는 실무능력 부족을 진보진영의 남성중심주의 때문이 아닐까 가설을 세워본다. 내가 진보교육감을 돕는 일을 잠시 했을때 느낀 가장 심각한 상황은 "남자 일색"이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교육계는 원래 "여자 일색"인 곳이다. 우리 학교만 해도 3학년 담임 8명 중에 나 혼자 남자다. 그리고 1~3 학년 23학급에 남자 담임은 4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진보교육감을 돕기 위해 구성된 각종 정책 TF의 성비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 교사들의 대부분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느낄 정도다. 예를 들면, 교원업무경감 TF중 전교조 추천위원 5명이 전원 남자. 서울 교육청 파견교사 9명중 8명이 남자. 서울교육발전계획 정책 TF중 전교조 추천인원 전원 남자, 교육감의 자문역할을 맡은 정책검토위원 6명중 5명이 남자. 교육감 보좌관 5명도 모두 남자. 교육청과 맞상대 하는 전교조의 지부장, 정책실장, 사무처장, 사무국장, 참교육실장도 모조리 남자. 압도적이다. 이거야 말로 "남자 만세!"가 아닌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교육계의 그 많은 여성들은 일체 자기 가정에만 신경쓰나라, 참교육이나 진보교육에 아무 관심도 없고, 아무 활동을 하지 않는단 뜻일까? 원 천만의 말씀이다. 실제 일선 학교에서는 여교사들이 더 진보적이다. 남교사들은 특별한 한 두명을 빼면 죄다 애 패는거 즐기는 절반 변태 아니면 월급이나 까먹으며 편히 살려는 웰빙족, 혹은 교감 승진 하려고 간도 쓸개도 다 빼놓은 무리들이다.

예컨대 우리학교 남교사들 9명 중 전교조 조합원은 나 하나다. 그러나 여교사 27명 중 7명이 조합원이다. 또 남교사 9명 중 자발적인 독서모임이나 학습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은 나 하나다. 그러나 여교사 27명 중 12명이 독서모임에 참가한다. 그 나마 전원 여교사들로만 조합원들이 이루어지거나 학습모임이 이루어진 학교도 비일비재하다. 또 전교조 시도 지부에만 가도 얼굴도 보기 어렵던 여성 활동가들을 지회나 분회 단위로 가면 아주 쉽게 찾아볼수 있다. 사실상 지회나 분회는 여교사들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진보적인 교사들 중 최고의 정수를 가려내어 진보교육감의 자문역을 맡기고자 했다면 그 중 적어도 2/3는 여성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대부분의 남성 활동가들은 묵묵히 서포트 하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지회 이상의 단위에서 두각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설사 분회, 지회에서 활동한다 할지라도 본부, 지부의 간부들과 연결고리를 유지하며 한 그룹을 형성하려 한다. 그러니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기 교실, 자기 학교의 일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인 것들이다. 전교조 남성활동가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수업, 자기 교실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진보정치 전반에 대한 담론을 거침없이 펼치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여성활동가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교실, 자기 학교 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모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주 활동 무대는 분회, 지회가 된다. 이들의 주요 대화내용도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보적인 교육운동게에 괴이한 분업이 나타난다. 남자들은 지부 이상의 단위에서 주요 간부직들을 독점하면서 선 굵은 정책과 방향을 논한다. 여자들은 실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하며 고민한다. 남자들은 민주노총, 민노당 등에 대해 관심 없는 여성조합원들을 진보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며 더더욱이 자신들이 조직의 상층부 독점을 정당화 한다.

그런데 진보적인 정권 혹은 교육감 눈에는 당연히 상층부의 인사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들을 부른다. 그럼 그들은 다시 자신들과 가까운 활동가들을 부른다. 물론 남자들이다. 이렇게 해서 각종 정책 TF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방향 제시" 까지만 했던 사람들이다. 그 방향에 따라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까를 고민했던 사람들은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 이들은 "구체적인 안"을 생산하지 못하고, 설사 생산한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어떻게 돌아갈지" 생각하지 못한다. 결국 뭘 어떻게 하라는건지 알 수 없는 뜬구름잡는 정책들 아니면 현장에서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올, 그리고 현장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그런 정책들이 쏟아진다. "운동의 대의"를 걸고서.

이들은 당황한다. 훌륭하고 유능한 우리들이 모였는데 왜 이럴까? 답은 간단하다. 실제 일은 "여자들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걸 여전히 캐치하지 못한다. 이들의 눈에도 여자들은 그저 여자들이고, 여자들 할 일이나 하면 되는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진보라고? 후훗. 웃음거리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교육청 여성 장학관과 전교조 여성 간부의 공통점은? 정답: "남자가 하는 말을 거역하지 않는다." "설사 거역하더라도 조분조분하고 공손한 말로 거역한다." 딩동댕! "주요 정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은 겸손하게 남자에게 양보하고, 그 결과 파생되는 각종 실무, 허드렛일을 말없이 티도 안나게 잘 처리한다." "딩동댕!"

마르크스가 말했나, 엥겔스가 말했나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여성이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그 사회 진보의 척도"라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곳은 소위 "진보단체"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전교조"가 제일일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민주노총"이 더하겠지만, 조합원의 성비를 감안하면 전교조야 말로 마초의 천국이며 보루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고서 진보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다.

이제 데자뷔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그 동안 봉건적 위계에 따라 각종 비판과 기획만 했던 남성 활동가들의 현실감각 결여, 바로 그것이었다. 그 답도 알았다. 여성을 등용하라. 적어도 정상적인 성비만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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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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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