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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물타는 애교 교장

구체적으로 밝히면 명예훼손이 되니까 그냥 익명으로 처리합니다.

어느 교장이 있습니다. 공정택이 처음 교육감이 될때 장학사가 되었다가 3년만에 장학관, 4년만에 51세에 교장이 된 여성입니다. 딱히 잘난 점은 없습니다. 애교를 잘 부리고 교태를 잘 떱니다. 그리고 말로 자신의 업적을 상당히 잘 포장합니다. 공정택 시절에는 각종 방과후학교랑 자원학교 학력신장 따위의 공정택표 사업을 전부 자기가 한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여기저기 떠벌리면서 자기 자랑 하느라 학교에는 잘 붙어있지도 않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후에는 출장입니다.

그런데 하늘같이 믿던 공정택이 짤리고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되었습니다. 잠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이 교장은 1년이 지나자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이번에는 교육혁신 세력들 앞에서 교태를 부리고 다닙니다. "학력신장 교장" "방과후 교장"이 이번에는 "문예체 교장"으로 변신했습니다. 정작 자기 학교에서는 있던 밴드부도 해체시키고 밤 늦게까지 국영수 내신 방과후 하느라 불이 훤한데 예술제 한번 개최한 적 없는 학교인데, 밖에서는 문예체 교장이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뭐, 누구나 살아남아야 하니 그걸 누가 탓하겠습니까? 문제는 그 말에 녹아나는 사람들입니다. 공정택과 그의 사람들은 원래 그런 수준이니 그러려나보다 합시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택 사람들을 녹였던 바로 그 무기가 명색이 진보교육감의 사람들이라는 사람들에게도 먹히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는 권위적이고 독선적이고 국영수사과 보충수업을 미치도록 강요하는 교장이 밖에서는 만면에 미소를 띄며 문예체를 진흥하고 혁신적인 마인드를 가진 교장으로 선전되고 있습니다. 선전 하는 교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 교언영색을 읽지 못하는 혁신주체들이 문제입니다. 이럴때 나오는 말은 딱 하나겠네요. "그저 남자들이란....."

저를 포함한 모든 혁신 일꾼들에게 경고합니다. 오랫동안 권력의 변방에 있다가 이제는 서서히 권력의 맛이 느껴지는 시기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하면 서서히 주변에 아첨하는 무리들이 생깁니다. 우리의 적은 우리의 오만함입니다. 우리를 칭찬하고 우리 뜻에 찬동한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경계합시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을 질타하고, 왜 그 정도 밖에 못하냐, 그게 무슨 진보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합시다. 그래야 혁신학교가 진보가 되고 혁신이 됩니다. 얼렁뚱땅 웃는 얼굴과 거짓 보고서로 교육청 돈이나 타내고서 적당히 굴려먹으면서 대외적으로는 무슨 혁신 선구자인양 포장하는 그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포장되고 선전되는 만큼, 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혁신에 대한 비토가 늘어납니다. "혁신 좋아하네. "이런 말이 늘어납니다. 삼가고 삼가며, 경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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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