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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 사용법

요즘 전교조 활동가들 사이에서 진보교육감 무용론, 진보교육감 배신론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주로 강경파로 분류된 분들이 그러는데, 그들의 논리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1) 비리 사학재단을 한 칼에 날리지 않고 있다.
2) 해직교사들을 복직시키는데 소극적이다.
3) 일제고사, 교원평가, 성과급 철폐에 미온적이다.
4) 이런 저런 일들을 벌여서 선생을 귀찮게 한다.
5) 경쟁교육을 철폐하지 않는다.
6) 귀족학교, 특목고를 확 정리하지 않는다.

대략 이런 정도인데, 안타깝게도 어떤 교육을 해라, 어떤 학교를 만들어라에 대한 비전은 찾아볼수 없고, 결국 이익집단으로서 교사의 모습만 보입니다. 설사 그렇지 않다해도, 여기에는 진보교육감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그릇된 관점이 보입니다.

1) 진보교육감 도구주의: 이 관점은 진보교육감을 특정 교육운동 의견그룹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보는 관점입니다. 진보교육감 자신의 비전이나 견해는 무시되며, 이 의견그룹의 주장과 어긋나면 즉시 "사이비 진보"로 규정됩니다. 하지만 진보의 스펙트럼이 넓듯이 진보교육감의 스펙트럼도 넓습니다. 따라서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 진영은 각자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고 토론하면서 지평을 함께 넓히고 방향을 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강요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2)진보교육감 해결사주의: 이 관점은 진보교육감을 뽑아 주었으니 이제 그 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들을 확 풀어라 하는 주의입니다. 이게 노무현 대통령을 거꾸러뜨린 논리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진보교육감의 정치적 위상은 매우 미약합니다. 장학사, 장학관으로 득실거리는 교육청에 섬처럼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 영토를 넓혀주는 것은 오히려 바깥에 있는 진보교육운동 진영입니다. 즉 진보교육감이 뽑혔기 때문에 교육운동 진영의 노력이 비로소 빛을 발할 조건이 생긴 것이지, 그 동안 운동권이 노력했으니 이제 교육감이 해결해라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진보교육감도 한 사람의 교육운동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도 나름의 교육에 대한 비전, 운동전략 등이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비전과 상호조정해야 합니다. 대화를 요구하는 것은 옳으나, 입장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2)의제를 계속해서 만들고 선점해야 합니다. 진보교육감은 교육자가 아닙니다. 교육의제는 결국 학교 현장에서 발굴되어야 합니다. 이건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 교육감을 교육운동진영으로 불러들이는 방법 이것외에 없습니다. 의제가 없는 곳에 선출직이 갈 이유는 없습니다.

3)전문성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교육운동가들은 교육전문가들입니다. 이 부분이 일종의 정치인인 진보교육감이 가장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교육전문가로서 지원할 수 없는 교육운동가들은 안되었지만 진보교육감과 더불어 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4) 실천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진보교육감은 보수적인 세력의 대표를 선거에서 물리쳐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 한 셈입니다. 이겨주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은 진보교육자들이 교육현장에서 실천사례를 만들어서 진보교육의 영역을 넓혀가고 계속 새로운 의제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자는 진보교육감과 교사와의 대화에서 입장차이가 크고 진보성이 미진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지난 교육감때 우리는 교육감은 커녕 본청 장학관 만나기도 힘들었습니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입니다. 그 다음 변화는 교육감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여주고 교육감이 지원하는 형태로 일어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진보교육감을 뽑았으니 뭔가 되겠거니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진보교육감을 뽑았으니 뭔가 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짤릴 걱정 없이 이런 저런 새로운 교육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진보적인 상황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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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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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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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