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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논평] 좌파교육감들... 논평에 대한 논평

지난 6월 30일, 이른바 진보교육감 6명의 공동선언문을 놓고 아니나 다를까 조중동에서 논평들을 내어 놓았다. 그 중 막가파 조선일보 보다는 합리적인 외피를 가지고 있는 중앙일보의 논평이 사실을 더 교묘히 왜곡할 수 있기에 몇 마디 재논평한다.

원문 링크는 다음과 같다.


이 논평의 주장은 진보교육감을 좌파교육감이라고 부르는데서 출발한다. 평소 곽노현, 김상곤 교육감을 좌파라고 보지 않던 필자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명명이다. 그 스펙트럼이라면 나는 극좌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좌파진영으로부터 회색분자, 기회주의자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내가 좌파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시장의 기능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경제가 매우 효율적인 메카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과 완전한 자유방임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심판없이 경기가 진행될 수 없듯이 사회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볼 뿐이다. 그런데 곽노현, 김상곤 두 교육감과 대화해 본 내 기억으로 이 두 분의 시장경제관이 나 보다 더 급진적이라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조중동식 좌파 척도인 "종북"쪽은 어떨까? 그게 궁금한 사람은 6월25일 곽노현 교육감의 트윗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61년전인 1950년 6월25일 북한의 침략전쟁으로 3년간이나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전쟁은 분쟁해결수단이 아니라 인간성과 문명파괴범죄입니다. 모든 분쟁국들이 '각자 지키는 평화'를 넘어 '함께 만드는 평화'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종북좌파(실제 그런 놈들 있고, 난 그런 놈들을 혐오한다. 난 이정희 의원이 왜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는지, 왜 진보로 받아들여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들에게 북한의 침략전쟁이란 말은 금기사항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근거로 진보교육감도 아니고, 좌파교육감인가?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좌파교육감들은 교육계 편가르기 하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한다. 그런데 애초에 좌파교육감이란 말을 만들어가면서 편가르기를 시작한 것은 바로 조중동이다. 교과부와 사사건건 충돌하는게 편가르기일까? 교육청이 교과부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독재적 발상이 아니라면 교과부와 교육청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그 충돌은 교육청 때문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강제력을 억압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한 교과부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교육감들의 생각이 다 같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중 생각이 비슷한 교육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협력적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 다른 쪽에서 생각이 비슷한 교육감들이 협력적 관계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걸 편이라고 하면 편이다. 그리고 이런 편이 갈라지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갈라진 편들이 서로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너면 안된다. 그래서 "범국가적인 교육위원회"를 만들자고 하는 것 아닌가?

편가르기 하면서 위원회를 요구하지 말라는 말이 성립되는가? 편이 갈라지지 않으면 애초에 무슨 위원회가 필요하겠는가? 교육계는 몇몇 교육감들이 모이건 말건 간에 이미 편이 갈라져있다. 진보교육감의 탄생은 교육계의 편가르기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애초에 어느 정도 편이 갈라져 있었던 교육계다. 교육에 대한 관점과 소신이 전통주의(교사중심), 행동주의(교육과정중심), 진보주의(아동중심), 구성주의 등등 다양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저마다 동의하는 교육관에 따라 교육하고자 하며, 뜻을 같이하는 교육자들끼리 뭉치게 된다. 그럼에도 교육이 전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관점들의 장단점을 인정하면서 적절한 범위 안에서 논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8년 이전에는 전교조와 교총도 공존할 수 있었으며, 진보주의와 전통주의도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8년 이후 바뀌었다. 일방적인 학력지상주의, 경쟁지상주의, 교육학에서는 족보도 없는 시장주의를 끌어다가 드라이브를 걸면서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해임, 파면도 불사했다. 이건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교사가 군사정권 시절보다도 더 쉽게 파면당한 시절이 2008-2009년이다. 이게 편가르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게 일방적인 편들어주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게다가 그쪽 편은 교육에 대한 고민은 일절 없는 오직 효율만 추구하는 경제집단인데 교육계의 슬픔은 오죽했겠는가?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서 "표로 심판"한 것이 바로 진보교육감의 탄생이다.

즉 진보교육감의 탄생은 "경제논리로 교육계에 편가르기를 강요하지 말며, 한쪽 편의 일방주의를 강제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였던 것이다. 교육에 엉뚱한 시장지상주의를 끌어들여오고, 경제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교육에 대해 감놔라 대추놔라 하면서 교육계를 혼란과 좌충우돌에 빠뜨리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였던 것이다.

이렇게 좌파, 편가르기, 혼란과 좌충우돌. 그 어느것도 조중동이 진보교육감들에게 비판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한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단 한가지일수 밖에 없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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