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이 무너져? 뭐가 있기나 했나?

이 글은 2011년 7월 22일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 한 동안 게시되었던 글입니다. 이제 게시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블로그로 옮겨 옵니다.

우리에게 무너질 교권이 있기나 했는가?


교권이 무너진다며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교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교권을 침해해 왔는지 돌아보고 정말 체벌금지 등이 교권 침해의 결정적인 요인인지 차분히 살펴보는 성찰적 목소리는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교권의 법적 근거는 헌법 제31조입니다. 여기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의무적으로 공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권은 교사가 공동체의 가치와 문화의 대변자로서 존중과 존경을 받을 권리, 그리고 자신의 전문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적 판단과 조치를 할 권리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체벌 금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는 말은 언어도단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 학교 교실에는 무너질 교권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없는 교권이 어떻게 무너지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나라 교사들은 국어, 수학, 사회 등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라 학적, 행사, 시상, 연수 등 각종 행정업무에 따라 편성되고 그것을 자신의 업무로 부여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사회선생님, 2반 선생님이 아니라 교무부 학적계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수업 때문에 이런 행정업무나 공문서 처리를 지연하면 문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행정업무, 공문서의 처리가 수업보다 우선시 되는 학교에 교권이 있었겠습니까?

그 동안 우리 나라 교사들은 변변한 연구비도, 연구할 시간도 장소도 없었습니다. 교무실을 한 번 보십시오. 이게 연구할 공간입니까 아니면 행정사무 처리할 공간입니까? 게다가 이런 행정잡무들은 마치 시지포스의 바윗덩이처럼 해도 해도 계속해서 다시 생겨납니다. 교육청과 교장, 교감은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갖가지 사업을 벌리고는 교사들에게 수업 제쳐두고, 교재 연구 제쳐두고 이 일부터 완수하라며 마치 수레 끄는 노새처럼 닥달합니다. 이런 학교에 교권이 있었겠습니까?
전문성은 자유로운 정신에서 피어납니다. 통제와 규율이 가득한 공간에서는 전문성이 아니라 진부한 관행만이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학교는 행정적인 통제와 규율에 의해 갖가지 자질구레한 책무와 교사를 말단 공무원 내지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풍토만 가득했습니다. 이런 학교에 교권이 있었겠습니까?

교육 전문성의 핵심은 평가입니다. 평가와 가르침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권마저 침해당하고, 일제고사를 강요받으며, 수업을 일제고사에 맞출 것을 강요받으며, 여기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조차 파면, 해임으로 보답받는 학교에 무슨 교권이 있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우리 나라의 학교는 어느 교육학 이론에 따르더라도 절대 교육으로 불릴 수 없는 점수 따기 입시교육을 “교육수요자”의 요구라는 이유로 강요해 왔습니다. 여기에 전문직 교사는 없고, 다만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서비스 판매자만 존재합니다. 환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진통제, 항생제 처방을 강요받는 의사가 의사입니까? 그런데 교사더러는 그러라고 합니다. 이런 교사에게 무슨 전문성이 있으며 교권이 있겠습니까?
그 동안 우리 학교는 어느 학부모건 마음대로 들어와서 아무런 절차도 없이 삿대질을 하며 항의해도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고성으로 위협하고 심지어 교사에게 폭언을 해도 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교장, 교감 등 관리자는 이런 횡포로부터 교권을 수호하기는커녕 자기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조용히 덮기 일쑤였습니다. 정치적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는커녕 몇몇 목소리 크고 영향력 있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학교에 교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우리 학교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 교권은 애시당초 있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무수한 교권침해와 무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입방정을 찧는 분들은 대체 교권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깊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교권은 모든 교사가 당연히 누리는 그런 권리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교육의 전문성에 기반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문성에 대해 내세울 것이 없는 교사가 보장받을 교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자신의 전문성에 기반한 자율을 누릴 교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전문성을 계속 유지하고 갱신해야 할 의무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권이 무너진다는 말을 혹시 듣게 되거든, 교사가 아이들을 마음대로 때릴 수 있느냐 마느냐 등을 볼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교사에게 복종하느냐 마느냐를 볼 것이 아니고, 전문성에 기반한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각종 부당한 외부의 압력과 통제와 간섭이 있는지, 그리고 교사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청의 각종 전시성 사업을 폐지하고, 교사들을 각종 행정잡무로부터 풀어주게 될 2011년은 교권 추락이 아니라 도리어 교권 회복의 원년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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