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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편향 교육감이라고? 지나가던 소가 웃을

요즘 조중동이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념공세를 뜨겁게 하고 있다. 올 초만 하더라도 빈축성 기사로 공격을 하더니 요즘은 이념공세다. 그건 그만큼 서울시교육청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곽노현 교육감을 김상곤 교육감 수준으로 심각히 보고 있다는 뜻이다. 곽교육감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이념 편향이라고 내 거는 이유가 참으로 한심하다. 이를테면 "4대강 반대운동"을 하던 강경선 교수를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장으로 삼았거나 , 전교조 교사들이 TF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전교조와의 단체교섭에서 많은 타결을 보았다 정도이다. 결국 교육감이 자기 뜻에 맞는 사람을 발탁한다거나 아니면 전교조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념 편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로 이념 편향? 여기에 이념 편향의 종결자가 있다.
아마 이 플래카드 기억 나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전교조의 의견을 존중해서 이념 편향이라면 아예 전교조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편향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것이 아닐까? 조중동이 공정택을 이념 편향이라고 비난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 반대도 편향이 아닐까? 적어도 곽노현 교육감이 "전교조에게 맡기지 않으면 교육이 무너집니다" 정도 말할때 까지는 편향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리고 필자가 당초 교육청의 TF에 참가할때 TF21명 중 전교조 조합원은 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조리 교총이었다. 그런데 6월에는 교총 TF는 스스로 다 사라졌다. 불성실하게 참여했고, 오히려 사업을 방해하려 했으며 회의적인 발언을 했다. 당초 교육감은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것은 그들의 무능력 때문이지 교육감의 편향 때문이 아니다.

교육청 인사위원회에 교직단체 추천인사를 반드시 포함토록 한 것도 그렇다. 교직단체가 어디 전교조 뿐인가? 교육감은 항상 교총과 전교조에 똑 같은 인원의 TF나 자문위원 추천을 의뢰했다. 그런데 전교조에서는 유능한 사람이 가고, 교총에서는 게으르고 회의적인 사람이 오는 걸 어쩌겠는가? 그나마 회의에 참석도 잘 안하고, 자료도 안 만들어 오니 당연히 배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체 협약...문제가 되고 있다는 단체협약의 표지다. 여기에 어떤 단체들이 서명했는지 보라. 뉴라이트들이 만든 서울자유교원조합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보고 전교조 안이라고 우겨붙이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거나 아니면 자기들 동지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일 것이다. 전교조가 다수라서 어쩔수 없다고? 라이트들은 그렇게 무능한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19명의 교총이 2명의 전교조에게 제압당하기도 했는데, 그 반대는 왜 못하는가? 어차피 기회는 다 주어진 것 아닌가? 정 마음에 안들면 소수 노조라도 서명 못하겠다고 철야 농성도 하고 단식투쟁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 깡 없으면 말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전교조의 발언권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김정일이 내려 주었는게 아니다. 그렇게 헌신하고 희생하고 싸워가면서 얻어낸 것이다.
그러니 현재 이 상황이 불만스러운 보수, 우익 교육계 인사들에게 고한다. 좌편향 운운하며 비겁하게 조중동 뒤에 숨어서 깐죽대거나, 기밀 문서를 조중동한테 흘리는 짓거리 하지말고, 89년부터 지금까지 전교조가 그래왔듯이 그대들도 해직을 각오하고 투쟁하라. 아마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좌를 선택한 게 아니지만, 그대들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우를 선택했을테니. 어디 그대들의 진정성을 확인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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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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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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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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