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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 아주 문 닫아 버리자

요즘 교육과정평가원이 연일 난타를 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엄한 명령인 "물수능"을 내지 않고 제대로 수능을 냈다고 혼줄이 났고, 다음에는 고3 학부모들을 출제위원으로 위촉했다고, 그리고 중국제 샤프를 썼다고 연일 난타를 당했다.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의 난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수능은 문자 그대로 대학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것이지,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만한 실력이면 누구나 대학에 갈수 있다는 발상은 대체 누구 발상인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졸업할만한 실력이면 이건 사회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적절한 교양을 갖추었다는 의미다. 반면 대학 수학능력은 "해온것"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해 나갈것"에 대한 평가다. 따라서 교과서에 안나오는것,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것이 출제되는 것조차 당연하다. 안 배운 것을 어떻게든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아카데믹한 능력이니까.

그런데 수능을 EBS문제집에서 출제하라는 명령을 지키라고 한다. 이거야 원 교육학 박사들로 득시글 거리는 교육과정 평가원이 EBS문제집에서 문제 추려내는 심부름꾼 역할이나 하게 생겼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어느 박사 하나 나서서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사람들이 그런 대접을 받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 수능 출제위원중 고3학부모가 있었다는 것 역시 나는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3 학부모가 거기 포함되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자본의 얄팍함이 문제다. 고3학부모라 할지라도 교육자로서의 직업의식이 있는 사람이며, 공직자로서의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며 또한 비밀엄수의 서약을 했다면 하등의 문제 될 것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사범대학 교수는 교원임용고시 출제를 하면 안되고(자기 학교에 유리하게 할테니), 법대교수는 사법고시 출제를 하면 안되고 등등..... 중국산 샤프 사건이야 교육연구직이 아니라 행정원들이 저지른 사건일테니 나랑 무관하고....(역시 어디나 서무실이 문제군)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관련된 일이 터졌다. 내가 저 망할놈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의 서답형 채점원으로 차출되었다. 차출된거야 우리학교 다른 사회선생들이 전부 컴맹에 가까운 할마마마들이라 그렇다 치지만, 차출된 선생들 신상을 온 동네에 공개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짓인지! 빌어먹을 놈의 일제고사에 시간 빼먹히는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신상까지 털렸다. 이러고도 국가기관이라고 고개를 쳐들수 있는지...

게다가 걸핏하면 서버가 안된다. 오늘 저녁 8시부터 딱 네시간 작업해서 채점 완료하려 했더니 10시 40분에 서버가 다운이다. 도대체 바쁜 사람들 붙잡아 놓고 자기들 시스템 문제때문에 일 못 끝내고 시간 질질 끌게 만들다니 이런 집단에게 수능을 어떻게 맡길지 참으로 걱정된다.

그래서 시스템 관리자한테 전화했더니 조치하면 연락 준다고 한다. 그런데 11시가 넘어도 답이 없다. 그래서 다시 걸었더니 내일 아침에야 될 것 같다고 한다. 30분이란 피같은 시간만 날아갔다. 내일 아침에야 될 것 같으면 바로 답을했어야 할 게 아닌가? 조치되면 연락하겠다+내일아침에야 된다= 밤새도록 지들 전화 기다리고 있어라? 무슨 일들을 이따위로 하는지.

나의 이 거친 포스팅이 평가원, 교과부 고위층들에게 널리 널리 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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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