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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육 선언

이 글은 원래 지난 7월 1일 진보교육감 6인의 공동 성명서 초안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당초 곽노현 교육감의 보좌관 중 한 명에게 의뢰 받았습니다. 그 보좌관은 "진보교육의 포이어바흐 테제" 수준의 글을 의뢰했습니다. 그래서 그 수준의 글을 쓰기 위해, 즉 모든 진보교육의 테제들이 빠짐없이 아우러질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달간 고심해서 이 글을 썼습니다. 제가 글 쓰는 속도를 아는 분들은 A4 네쪽의 글을 두달동안 썼다그러면 놀라실겁니다. 제가 글 쓰는 속도는 분당 300타거든요(타자 속도가 아니라 글 쓰는 속도가)

그런데 막상 이 글을 써서 제출하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전혀 엉뚱하고 조잡한 글이 공동선언문 초안이라면서 날아오더군요. (이 글을 읽어 보신 뒤, 6교육감 공동선언문과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분이 팍 상했지만, 저의 교육사상이 오롯이 요약된 이 글을 다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진보교육감 체제의 한계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공정택 시절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적어도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초안을 작성해보기도 했으니까요...(하하 땡전 한 푼 안받긴 했지만, 원래 운동권 바닥이 날로 먹는 바닥이라....)

어쨌거나 이 글은 6교육감 소유에서 다시 저의 소유로 돌아 온 셈입니다. 그래도 6교육감 공동선언의 약발이 떨어질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달이 지난 지금 제 블로그에 올려 둡니다.



새교육 선언


강원도 교육감, 경기도 교육감, 광주광역시 교육감, 서울특별시 교육감, 전라남도 교육감, 전라북도 교육감은 각 지역 공교육의 책임자라는 엄숙하고 신성한 의무를 가슴깊이 새기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Ⅰ. 공교육의 과업

공교육은 신성한 과업이며, 이 과업은 학생, 사회, 그리고 교사 및 교육기관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1) 학생면에서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공동체의 학문, 예술, 문화유산을 전수 받으며, 도덕성을 갖춘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한다.
-이러한 교육의 혜택을 학생의 출신이나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골고루 제공한다.

2) 사회면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사고 문화와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공동체의 진보와 발전 그리고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3) 교사 및 교육 기관면에서
-교사가 교육을 통해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하며, 교육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필요한 교육환경, 시설, 행정적 지원을 한다.

한 마디로 공교육은 학생, 교사 및 공동체의 행복과 선을 증진시킨다.


Ⅱ. 공교육의 실패

그러나 우리 나라의 공교육은 그 동안 많은 교육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이런 과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1) 낡고 경직된 공교육 체제
- 수 십년 간의 권위주의 정권의 압제는 학교를 민주주의와 인권이 구현되는 곳이 아니라 통제와 억압과 규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만들었다.
- 경직된 관료주의가 학생과 교사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억누르고 질식시키고 있다.
- 낡고 봉건적인 가부장제는 공교육 전반을 행정·관리직을 정점으로 위계서열화 하였고, 학교에서 실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와 공교육의 주인인 학생이 위계 서열의 제일 아래 위치하는 전도된 상황이 고착화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가 행정직이 되는 것이 승진으로 여겨지면서 교사들이 교육보다 행정사무에 치중하게 되었다.

2) 전도되고 왜곡된 공교육의 가치
- 입신양명주의와 배금주의는 배움의 과정은 생략하고 다만 그 결과만 얻으려는 천박한 도구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만들어 공교육의 가치를 왜곡하고 있다.
- 효율과 경쟁이라는 경제논리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교육을 다만 돈과 자리를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만들었다.
- 이런 상황에서 점점 그 도가 더해지는 승자독식의 풍토는 갈수록 공교육을 소수 5%만의 것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빈곤층 학생들은 기회를 박탈당한체 갈수록 공교육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학생, 교사, 학부모의 행복과 선의 증진 그리고 공동체의 선과 행복의 증진이라는 공교육의 가치와 목표에 역행하는 것들이다. 요컨대 우리 공교육의 역사는 공교육의 가치와 목표가 지속적으로 훼손당해 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Ⅲ. 우리가 세울 공교육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교육의 상을 세워 공교육이 학생, 학부모, 그리고 공동체의 선과 행복을 증진하도록 할 것이다.

1) 학생이 주인 되고 권리가 지켜지는 공교육
- 학생을 공교육의 주인으로 명시하고, 학생의 권리가 모든 공교육의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학생들 각자의 특성들이 존중받으며 어떤 형태의 차별도 받지 않으며, 소외되는 학생도 없다.
-학생들이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받고, 이들의 기본권이 학교 안에서나 학교 밖에서나 철저히 지켜진다.

2) 다양한 소질과 재능이 꽃 피는 공교육
- 학생들은 학문적, 예술적, 문화적, 사회적, 신체적, 직업적 발달을 포함하는 폭넓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이 골고루 축복받고 사회에서 그 꿈과 열정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다.
- 학생들의 잠재력과 이들 나름의 학습 방법이 존중받으며, 다양한 학업 성취가 골고루 인정받는다.

3)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공교육
-21세기 지식·정보의 시대를 맞이하여 학생들이 정보의 바다에서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고 창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21세기 감성과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학생들이 섬세한 미적 감각과 창의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
- 21세기 네트워크와 접속의 시대를 맞이하여 학생들의 소통과 공감의 능력을 함양한다.

4)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공교육
-학생들이 다양한 수업을 통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기른다.
-학생들이 학교 운영이나 그들과 관련한 결정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민주시민성을 함양한다.
-학생들은 다양한 자치활동을 보장받는다.
-교육의 모든 과정에서 교육행정기관, 학교, 시민사회의 협치가 이루어진다.

5) 교사가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는 공교육
- 학교, 교육청, 그리고 공교육 제도가 규율, 통제, 행정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를 중심으로 편성된다.
- 교육과 행정사무가 완전히 분리되어 교사들이 연구, 자기 계발, 그리고 학생 교육에 전념한다.
- 교사가 연구, 자기 계발, 그리고 학생 교육에 전념할 때 더 많은 지원과 존중을 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선언을 바탕으로 교육을 혁신하고 이 혁신을 널리 확산시킬 것이다. 우리는 교육 혁신이 체계없는 실험에 그치지 않게 이후 모든 교육자들에게 안내와 지침이 되는 새롭고 혁신적인 교육학을 수립하고 보급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혁신 학교를 확산시켜 모든 학교가 새롭게 환골탈태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Ⅳ. 우리의 요구

아울러 우리는 입법, 행정 및 지방자치단체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우리는 질높은 공교육을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와 재정적 지원을 요구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신성한 과업에 따라 교육의 영역에서도 강력하고도 민주적인 자치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보편적 복지 정신에 따라 학생들이 지역, 성, 경제적 형편에 관계없이 모든 교육 기회와 필요한 교육적 자원을 충분히 제공받는 보편적 교육복지 정책의 실시를 요구한다.
- 우리는 우리의 교육개혁의 필요와 방향에 대해 대다수 주민들의 지지를 확인하였기에, 우리의 교육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신속하게 재개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 우리는 교육개혁이라는 과업 완수를 위해 정부, 교육청, 교원단체, 교육시민단체의 협의기구 설치를 요구한다.

또한 우리는 학부모를 포함한 모든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공교육이 학부모나 어른들의 행복이 아니라 학생들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명심하고 이들의 입장에서 보다 많이 생각해 주기를 요구한다.
- 자녀의 성적이나 입시결과가 아니라 공교육의 가치와 목표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 교사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교육적인 조치가 충분히 시간을 두고 발휘될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줄 여유를 요구한다.
- 학부모가 교육 수요자가 아니라 교사와 함께 자녀를 교육하는 공동의 교육자라는 생각에서 보다 긴밀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가져 줄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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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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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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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