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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인들은 왜 박해받는가? 약자무시의 문화

최근 부쩍 "노인 폭행" 사례가 자주 알려진다. 그 전형적인 양상은 주로 10대 20대가 노인들에게 폭언을 한다거나 위협을 하는 동영상이 나돌면서 젊은이의 신상이 털리고, 그럼 그 젊은이의 싸이나 페북에 "저런 ****한 놈"하며 단체로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리는 식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거의 지하철이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일단 "요즘 젊은 것..." 가정은 배제하자. 요즘 젊은이의 기준도 모호하거니와 요즘 젊은이가 예전 젊은이보다 특별히 더 무례하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도리어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노인들을 무례하고 매너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피차 서로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모두 무례한 것이다. 옛날 젊은이는 바로 지금의 무례한 노인일 것이며, 젊은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무례해진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일 것이니, 필경 무례한 젊은이였을 것이다.

실제 공공장소에 가 보면 공중도덕, 공공예절 안 지키는 무례한 사람들에는 세대가 따로 없다. 청년은 청년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나름 무례하다. 아시아의 선진지역(일본, 한국, 타이완, 싱가폴, 홍콩) 국민들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무례하고 거칠다는 것 역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인구수와 모터사이클 수가 비슷한 타이완에서도 마주치기 힘든 인도위의 오토바이 질주신을 하루에도 몇번 씩 만날수 있는 나라 아닌가? 게다가 한국의 카페는 홍콩의 맥도날드보다도 더 시끄럽다. 물론 그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은 10대부터 50대까지 총망라되어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요즘 젊은 것들은..."할 자격이 있는 기성세대는 딱히 없다.

젊은이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이 무례하다면 달라진 쪽은 노인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옛날 노인보다 요즘 노인이 더 무례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아무래도 더 개명된 시대의 노인인데 그러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노인 자체가 변했다기 보다는 노인이 놓인 위치, 맥락이 바뀌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몇 해 전에 어느 영국인이 차가 거의 지나가지 않는데도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길을 건너지 않는 행인들을 보며 "한국인의 준법정신은 정말 놀랍다."고 경탄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보행자 신호가 끝나기도 전에 먼저 머리를 들이밀고, 심지어는 경적을 울려 보행자를 독촉하는 자동차는 보지 못했는 모양이다. 교통법규를 아주 잘 지키는 보행자와 무법천지의 운전자의 이 부조화를 뭘로 설명할 것인가?

예컨대 타이페이나 방콕 같은 도시는 운전매너가 아주 사나운 곳이다. 자동차가 멋대로 신호를 위반한다. 그런데 보행자 역시 동등한 자격에서 신호를 위반한다. 보행자 신호인데도 마구 들이미는 차들이 있는가 하면, 버젓이 빨간불인데도 길을 건너는 심지어는 중앙선을 횡단하는 보행자들도 즐비하다. 일단 사람수가 좀 모였다 싶으면 신호 무시하고 우르르 길을 건너기 일쑤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보행자들은 정말 신호를 잘 지킨다. 그리고 신호를 무시하고 싶어하는 자동차 앞에서 황망하게 짧은 신호동안 종종걸음으로 길을 건너간다. 아마 이 보행자들이 운전석에 앉으면 역시 경적을 울려가며 보행신호를 무시할 것이다.

즉, 한국인은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약자일때와 강자일때를 잘 판단할 줄 아는 것이다. 교통약자인 보행자일때는 신호에 복종하지만, 교통강자인 운전자가 되면 보행자의 신호를 무시하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차도에서는 구박받던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이 느닷없이 인도를 질주하면서 보행자를 위협하는 모습은 매우 흔하게 볼수 있는 광경이다. 분명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차도를 달릴때의 오토바이와 인도로 기어올라운 오토바이의 기세는 아주 다르다. 인도위에서 자전거로 달리는 노인들은 심지어 호통까지 치며 보행자를 몰아붙인다.

자, 이제 노인 문제로 돌아오자. 원래 우리나라는 경로사상이 발달한 나라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런데 그 경로가 무엇이었을까? 왜 노인이 존중받았을까? 그것은 전통사회에서는 노인들이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즉 "어르신"이었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들보다 권력이 강한(집안에 따라서는 생사여탈까지 할 수 있는) 노인들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칸트 윤리학에 따르면 그런건 존경이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의 경로사상은 강자에 대한 복종에 다름아니다. 경로사상이 발달한 만큼 어린이들과 여성들에 대한 경시, 천시가 댓구를 이루었던 것이 그 좋은 본보기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노인들은 강자가 아니다. 노인들은 약자다. 지하철에 노약자 보호석이 있는것은 약자인 노인들을 "배려"하는 것이지 노인들의 "특권"이 아니다. 실제로 그 자리는 경로석이 아니라 노약자석이다. 즉 약자들의 자리다. 장애인들도 혹은 임산부들도 나이와 무관하게 그 자리에 가서 우선적으로 앉을 권리가 있다. 일본의 노인들은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면 "대접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배려받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앉거나 아니면 "폐를 끼칠 수 없다"면서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문제는 형식적으로는 "노약자 보호석"인데 문화적으로는 "경로석"이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스스로를 "약자"로 생각하지 않으며 여전히 "어르신"으로 여긴다. 하지만 전통사회와 달리 "어르신"으로서 내세울 어떤 지혜나 권위는 없다. 시대에 너무도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세대는 노인을 존경하지 않는다. 존경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힘들어 하시는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다. 존경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배려로서.

하지만 한국의 노인들은 양보 받아도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는다. 당연한 권리로 여기기 때문에 도리어 "왜 이제야 일어나나?"하는듯한 모습으로 꼴아보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70대 남성이 40대 후반의 여성에게 호통을 치며 자리를 내놓으라고 강제로 일으키는 비신사적인 행동까지 한다. 영국이나 일본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서라면 아마 70대 남성이 도리어 자리를 양보했을 것이다.

이제 왜 젊은이와 노인의 격한 충돌이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노약자석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워둔다. 그리고 일부러 다른 자리를 기다렸다가 간신히 찾아서 앉는다. 그런데 어떤 노인이 들어와서 싹 간을 본 뒤 일부러 그 젊은이 앞에 와서 눈치를 준다. 이 때 눈치없이 "경로"의 입장에서 강자 행세를 하는 노인이 있기 마련이다. "네 이놈. 감히 자리 안비켜?" .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다. 그러니 상황이 이쯤 되면 젊은이는 "누가 강자인지"를 가르쳐줄 필요를 느낄 것이다. 배려해주면 감지덕지해야 할 약자가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 감히 강자에게 말이다. 그러니 사단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경로사상의 태생적인 비극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에 기반한 경로사상으로 충분히 진화하기에는 한국 문화 자체가 너무도 강자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유독 젊은이에게만 그것도 여러 약자들 중 노인들에 대해서만 무한한 배려심이 발휘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 앞에서 배려대상자가 도리어 강자의 입장에서 호통을 치고 행패를 부리거나 가르치려 든다면 이런 강자위주 풍토에서 봉변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퍼지고, 또 사회제도가 약자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기 전까지는 호통치는 노인이 젊은이에게 봉변을 당하는 사태는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더구나 이 문제를 "요즘 젊은이의 예의"탓으로 돌리는 한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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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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