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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도대체 뭐가 포퓰리즘이라는 것인가?

요즘 포퓰리즘에 맞서 싸우는 것이 마치 항일투쟁이라도 하는 양 비장미를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시절에는 반공투사가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반 포풀리즘 투사가 유행인 모양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저 사람들이 포퓰리즘을 알고 저러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며, 그들이 포퓰리즘에 맞서야 한다고 선동하는 대상들이 도리어 포풀리 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라 그들이 포퓰리스트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1. 포퓰리즘의 고전적 의미

역사는 포퓰리즘에 가장 결연하게 맞서 싸운 인물로 아마 키케로를 기억할 것이다. 포퓰리스트인 카이사르를 견제하려다 실패했고, 끝내 카이사르의 후계자들인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했으니 말이다. 안토니우스는 그의 손을 잘라서 원로원 문에 못박았다고 하니 그 증오의 정도를 짐작할만하다. 그렇다면 키케로는 무엇에 맞서 싸웠던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포풀리즘에 대해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Classical populism

The word populism is derived from the Latin word populus, which means people in English (in the sense of "nation", as in: "The Roman People" (populus Romanus), not in the sense of "multiple individual persons" as in: "There are people visiting us today"). Therefore, populism espouses government by the people as a whole (that is to say, the masses). This is in contrast to elitism, aristocracy, synarchy or plutocracy, each of which is an ideology that espouse government by a small, privileged group above the masses.

Populism has been a common political phenomenon throughout history. The Populares were an unofficial faction in the Roman senate whose supporters were known for their populist agenda. Some of the most well known of these were Tiberius Grachus, Gaius Marius, Julius Caesar and Caesar Augustus, all of whom eventually usedreferendums to bypass the Roman Senate and appeal to the people directly.

시간이 없어서 번역은 안했다. 또 비유하자면 이걸 번역 안하면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듣기에 그럴듯한 말로 지지자들을 모으려는 것, 그게 바로 포퓰리즘이라는 의미도 아울러 담고 있다. 고전적인 포풀리스트들의 공통점은 바로 선발된 사람들(어원상으로는 가장 고귀한 사람들)의 의결기구인 '원로원'을 무시하고 다수 인민의 여론과 힘으로 정책을 밀어 붙이는 정치 사조를 의미한다. 이들은 시민들을 구별없이 하나의 인민이라고 보면서 원로, 귀족, 엘리트들의 판단과 선택을 거부했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단지 다수 인민의 환심을 삼으로써 지지를 모으려는 시도들이 나타나면서 포퓰리즘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 이렇게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합법적인 정치과정과 의사결정절차를 건너뛰는 것은 그 다수의 여론을 조장하는 몇몇 선동가를 독재자로 만들수 있다는 점에서 키케로 같은 공화주의자들의 우려를 샀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우스 시저"에 나오듯이 다수 인민들은 "로마 민주주의를 위해 개인적인 친분에도 불구하고 시저를 죽였다."는 브루투스의 고결한 외침보다는 "시저는 여러분에게 이런저런 재산을 나누어 주라고 유언했다."는 안토니우스의 선동이 더 잘먹혔던 것이다.

2. 근대의 포퓰리즘

근대 들어서 포퓰리즘은 수평파 운동, 올리버 크롬웰을 거쳐 루이 보나빠르트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루이 보나빠르트는 오직 보나빠르트라는 이름과 그 이름이 주는 향수를 자극하고, 당시 프랑스 의회를 지배하고 있던 부르주아들에 대한 농민대중과 도시빈민들의 반감을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는 자기들의 지지기반이 된 이들의 환심을 사는 각종 인기영합적 정책을 펼치는데도 아낌이 없었다.

흔히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페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페론이 포퓰리스트라고 불리는 이유도 복지라는 이름으로 퍼주기를 해서가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영국의 베버리지 경이나 스웨덴 사민당도 포퓰리즘이다. 하지만 페론의 경우는 토착 농장주 세력과 엘리트에 대한 다수 빈곤층의 반감을 이용하고, 그들에게 영합했지만, 정작 그들을 계급적 관점에서 본게 아니라 막연하고 모호한 "인민, 국민"으로 묶었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다. 한 마디로 포퓰리즘은 "질투심과 수혜심리"를 이용하여 정당한 의사결정 절차를 무시할 정도의 대중적인 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3.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인가?

자, 그럼 이제 무상급식 문제로 가 보자. 이게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불릴려면 다음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1)학교 급식과 관련하여 엘리트 층에 대한 반감이 만연해 있다. 하여간 무상급식을 통해 대중들이 엘리트들에게 한 방 먹였다는 느낌을 받을만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 2) 무상급식은 그야말로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즉 학교급식은 급식비는 물론이려니와 세금 등 그 어떤 댓가도 없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무상급식이 1)을 충족시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부자 증세를 통해 빈곤층만 무상급식을 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부자 증세를 통해 부자 아이들도 무상급식을 받는다면 이게 포풀루스를 통쾌하게 만들것 같지는 않다.

2)의 경우도 무상급식정책은 보편적 복지정책의 큰 틀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보편적 복지정책은 어떤 형식으로든 증세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페론 같은 경우는 증세를 수반하지 않은 막퍼주기 정책으로 재정을 파탄낸 경우지만, 무상급식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 정책은 오히려 철저한 누진세를 통한 세수확보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4. 그렇다면 누가 포퓰리즘을 주장하는가?

지금의 구도는 매우 우스꽝스럽다. 포풀리즘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는 세력들이 포풀리즘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표적인 표어 두개가 그렇다. "부자급식 반대", "세금폭탄되어 돌아온다." 이 중 부자급식 반대라는 말은 이들이 보수우파가 정말 맞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전형적으로 부자에 대한 반감과 질시, 그리고 우리의 세금이 부자집애들 밥상에 들어간다니 말도 안된다는 등의 기초적인 분노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표어는 조금만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금방 모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누진세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세금폭탄이 되어 돌아오더라도 차등적으로 돌아온다. 부자급식에 분노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득세 등급이 낮거나 혹은 면세점 이하일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세금폭탄을 맞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질투와 분노에 덮인 눈에는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부자급식에 대한 반감을 동원하면서 포풀리즘을 추방하겠다는 이 지독한 포풀리즘을 보면 최근 부쩍 축소된 중고등학교 정치교육(법과 사회와 통합되면서 도리어 정치과목이 축소되었다)이 도리어 두세배쯤 늘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들을 마음대로 동원하고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 엘리트들에게 엿을 한 방 먹일만한 기개와 깡도 없는 한국의 포풀루스의 수준상, 이 땅에 진정한 포풀리즘은 아마 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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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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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