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이것은 소설이다.

지난 하룻밤만에 지난 다섯달 누적 방문객수의 두배나 되는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댓글달기가 지극히 어려운 블로거닷컴 덕에 성지를 면했지만(그래서 여기 온 것이죠), 글 쓴 저도 감당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예 대놓고 소설이라고 해 볼까 합니다. 이하 이야기는 모조리 if에 입각해 있습니다.

1) IF 정치검사라면

10월 26일 선거가 있습니다. Oolong 전 시장이 사퇴한 흔적입니다. 불리합니다. 이때 Oolong 전시장의 적수인 ducky 를 물고 늘어진다면 한 번 해 볼만 합니다. 게다가 적절한 껀도 있습니다. 물론 수사는 빨리 진행되면 안됩니다. 유죄에 대한 확신이 있기 전에는(그런데 법률가와 의사는 확신을 안하기로 유명합니다) 절대 10월 26일 전에 선고공판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 대신 조금씩 조금씩 수사망을 좁혀가는걸로 9월을 소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좌를 추적하더니 추적하면서 서서히 ducky의 계좌로 접근해야 합니다. "ducky에게서 나온듯" 이러면서 언론에 피의사실을 마구마구 흘리는 위법을 하면서 말입니다. 기자들은 그 동안 온갖 설설설을 다 흘리고 다닐겁니다.

어, 그런데 ducky이 바보가 스스로 "내가 줬다" 해버립니다. 이거 이러면 수사가 아주 짧아집니다. 계좌추적 등등은 더 할게 없고, 대가성 여부만 입증해야 합니다. 이미 압수수색 다 했으니 뭐... 수사가 짧아지면 10월 26일 전에 선고공판까지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건 부담됩니다. 오, 당혹스럽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우선 "그래 네가 줬어? 하지만 그게 정말 네 돈이야?" 이렇게 한 단계를 더 찌릅니다. 그래서 DUCKY가 자기 돈 준게 아니라 공금을 횡령하거나 어디서 뇌물을 받아서 준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마구 흘립니다. 기자들이 알아서 잘 마무리 해 줄겁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DUCKY의 가족 친지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하룻밤씩 조사하며 괴롭힙니다. 이런 식으로 한달쯤 끌면 아마 버텨낼 사람 없을 겁니다.

또 대가성 입증할 증거자료가 있다는 설, 당시 관련자 증언을 확보했다는 설 등등을 슬슬 흘립니다. 진짜 이런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 공판도 열리기 전에 미리 이런 설을 흘리면 당연히 재판에 불리하겠죠. 만에 하나 이렇게 비장의 증거가 있다라고 설을 풀었는데 막상 공판에서 법원이 증거불인정이라도 때리면 정말 개망신이니 이런 과감한 주장은 법조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어차피 목적은 재판에서 이기는게 아니거든요.

그러다가 무죄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요? 뭘 고민합니까? 당연히 항소해야죠. 마침 내년 4월에는 의원 선거가 있네요. 그때 맞춰서 항소심 하면 되겠네요. 이런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야권후보 통합을 운운하는 간큰 후보자들은 없겠죠?

2) IF제대로 검사라면

어허, 이거 피의자가 스스로 만천하에 자백을 했습니다. 그럼 자금확보했겠다, 계좌 확보했겠다, 준측 받은측 자백 다 받았겠다, 수사 다 끝났네요. 음. 마침 대가성을 입증할 증거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 받기 전까진 다만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죠. 섵불리 있다고 설레발 쳤다가 저쪽에서 이 증거를 어떻게 찾았는지 추적해서 증거수집과정의 하자라도 찾으면 정말 재판 망칩니다. 조용히 있어야죠. 기자들이 물으면 "공소유지 자신이 있다. 공판때 다 밝혀 질 것이다. " 이렇게만 말하는게 법률 전문가다운 태도죠. 의사라면 x-RAY나 ct결과도 나오기 전에 미리 암이 걸렸네 안거렸네 떠들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기자님들 좀 저리 가세요. 정 궁금하면 공판을 취재하거나 혹은 공식적인 수사 브리핑을 들으세요. 뭘 자꾸 훔쳐보십니까?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