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곽노현이 아니다

지난 주민투표 이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곽노현교육감은 전국을 뒤흔드는 인물이 되었다. 혹자는 위기라고도 하고, 혹자는 반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단일화를 매수로 몰고가는 것이 실패하더라도 검찰은 다른 걸로라도 기어코 걸어 넣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가 되었든 이미 SNS세계에서는 그리고 2008 촛불에서 희망버스까지 이어진 새로운 다중들의 세계에서는 법적 판결이야 기다려 볼 일이지만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곽노현 교육감의 무고함으로 입장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따라서 직을 상실하더라도 곽노현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져도 최소한 명예는 유지한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이광재나 문국현의 경우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위기는 누구에게 찾아올까?

1. 민주당

민주당은 조중동의 검찰 중계방송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한나라당 보다 먼저 "사퇴"를 외치고 "난 곽노현을 몰라" 하고 도망을 감으로써 잠시나마 그들을 진보로 인정했던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박지원의 강경발언은 거의 홍준표를 연상시켰고, 여기 부담을 느낀 손학규의 김가도 아니고 박가도 아닌 발언은 그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임을 각인시켰다.

민주당에서 했어야 할 얘기는 딱 하나였다. "당사자가 고백한 만큼 사실관계는 이미 밝혀졌으니 검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댓가성을 입증하는 일에만 신경쓸 것이며, 시시비비는 재판에서 가리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전에 수사내용을 언론에 흘려 여론몰이 하는 정치공작은 그 내용의 진위 여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결국 어제 유시민, 오늘 이정희 의원이 했다. 즉 진보신당 민노당 국참당의 한 블럭이 형성되고 민주당과의 대통합은 어려워 질 것이라는 거다. 어쩌면 이게 이번 시나리오의 큰 그림일지 모른다.
민주당은 적어도 정치꾼들이라면 이 사건에서 대중들이 옳건 그르건 간에 노무현 데자뷔를 보고 있음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함으로써 앞으로 "호남 자민련"이미지를 재확인시키고 말았다. 한날당보다 더 큰 목소리로 사퇴를 외쳐대는 박지원 추미애의 모습을 보면 혹시 박태규한테(?)이런 의심이 들 지경이다. 하긴 추미애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외쳐대었던 자가 아닌가? 결과적으로 그들이 곽감을 내친 명분으로 내건 "진보세력 껴안기"는 도리어 "진보세력 대분열"이 되고 말았다.

2. 한겨레, 경향, 오마이

지금 주요 포털사이트에 곽노현 관련 기사들은 조중동 프레임으로 도배되어 있다. 과거에는 이런 기사들 사이에 한겨레, 경향, 오마이의 기사들이 예리한 각을 이루면서 사태의 이면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차별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굳이 곽노현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피의사실 공표에 의한 여론재판이라도 비판해야 했다. 알거지 박명기 교수가 공교롭게도 MB전용 로펌인 바른을 수임했다는 것도 팩트로 다루었어야 했다. 이해학 교수의 손석희 시선집중 인터뷰도 비중있게 다루어 포털을 장식했어야 했다. 이건 편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조중동의 시각과 다른 시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 경향, 오마이는 같이 놀았다. 그 결과 포털이 사실상 떡검 프레임으로 도배가 되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뉴스페이스, 위키트리, 뷰스앤뉴스, 딴지일보 등등 하여간 다양한 출처를 통해 사실을 수집하고 트위터로 퍼 날랐다. 그 결과 한겨레, 경향, 오마이는 그들의 주요 독자층의 엄청난 불신을 사고 말았다. 트위터로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를 인정하고 적어도 떡검의 언플에 분노를 공감하는 사람들은 바로 2009년에 한겨레, 경향을 수십부씩 사서 길거리에서 나누어주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제 한겨레는 경향은 누구에게 호소할 것인가? 민주당에게?

(오마이의 내가 아는 몇몇 시민 기자들이 이제 의미있는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3. 진중권, 조국 등 주류 진보논객들

진중권의 힘은 학벌이나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그가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그는 선사퇴 후규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오면서 평소 그의 지지자들을 배신했다. 그의 트윗은 심지어 "앞으로 이 사람 글은 리트윗 하지 맙시다"라는 QT로 올라오기까지 했다. 내가 아는 한 진중권의 트윗이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은 없었다. 또 평소에 줄 트윗을 하며 끝장 논쟁을 하던 그 답지 않게 도덕선생같은 고답적인 트윗 하나 올려놓고 침묵 중이다. 물론 진중권 본인은 그닥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대중의 지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적도 많이 있었으니. 그 "D-War"논쟁때 나는 몇 안되는 진중권의 지지자였었다.

진중권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조국이 아닐까 한다. 본시 아버지와 동생이 모두 서울법대 출신이고 해서 법대쪽에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인데, 가까이서 그를 본 사람들의 평이 세간에 알려진 조국의 평과 다소 괴리가 있어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네티즌들도 바로 그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곽노현 기자회견 끝나자 마자 오세훈 축포에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발빠르게 비난글을 썼던 조국은 이런 반응에 놀라서 2탄, 3탄 해가면서 무마하고 있지만 이미 버스 떠났다. 실상 조국의 명망을 높여주었던 사람들은 노무현 추억세력들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데자뷔 현상같은 곽노현 사태때 슬기롭지 못하게 대처하면서 조국은 자기가 선언한대로 폴리페서를 비판하는 순수한 교수로 남게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진보진영의 사이버 좌파들은 뜻밖에도 이번 사태에 조중동의 프레임에서 같이 말하거나 아니면 소신없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차라리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4. 진보 과두정

운동권은 이상하게 보수적이다 못해 봉건적이다. 부카니스탄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수령 비스무레한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언제나 소수의 지도자들이 다수의 대중들의 여론을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대중들을 언제든 자기들이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진다. 그 결과가 몇몇 시민단체 대표들의 "사퇴촉구" 성명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 단체에 회비를 내는 회원들의 생각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 그 단체들 속에 곽교육감이 가장 신뢰하고 아꼈던 단체인 "좋은교사모임"이 포함된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좋은교사 모임의 교사들은 검찰의 언플에 놀아나지 말고 적어도 피의자로서의 인권이라도 보장해야 한다며 호소하고 다니고 있다.

더군다나 진보교육감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라야 할 전교조의 미온적인 대응은 사회적 공분을 사야 마땅하다. 실제로 전교조 교사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를 비롯해서 트위터에서 부지런히 호소하는 분들 중 상당수가 전교조 교사다. 그런데 전교조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뭔가 언급한 것은 병설연구소장의 검찰수사 비판 뿐이었다. 위원장, 서울지부장, 대변인의 전교조스러운 대응은 보이지 않았다. 정작 경기도지부장이 안타까움과 분노를 페이스북으로 계속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세훈 물리칠때는 트위터의 힘을 예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트위터 민심을 체크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트위터를 하룻밤만 훓어 봐도 그런 성급한 성명서를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부위주 시민단체의 문제점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어느 트위터러는 이번 사태를 보수대 곽노현, 보수대 진보가 아니라 엄숙주의 구운동권 지도부와 진보적인 다중의 대결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지나가면 각종 운동권 단체 지도자들의 발언권은 현저하게 약해질 것이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지나면 모두 현저하게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다. 이중 가장 위험한 쪽은 안그래도 사양산업인 종이신문업 한겨레로 예상된다. 경향은 여기저기 버틸만한 재산이 좀 있어서 좀 나중에 위기가 올 것이다. 아마 "진알시"처럼 자발적으로 한겨레를 배포하는 운동은 영영 사라질 것이다. 조중동 프레임에 가려진 진실을 보여준다는 브랜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전교조 등의 단체도 간부와 대중이 따로 노는 형국이 되고 말 것이다. 전교조는 이미 그런 상황이 상당히 많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며, 이번에는 확인사살이 되고 말 것이다. 혹시 이들이 내년 총선, 대선때 민주당이 압승하고 그 덕에 한자리 얻어먹으려면 민주당과 이해관계를 같이할거라 생각한다면 크게 후회할 것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