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도덕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폭풍같은 며칠이었습니다. 그리고 SNS의 힘을 믿은 저의 신념이 승리한 며칠이었습니다. 위키노믹스, 그리고 매크로위키노믹스 두 권의 책을 읽고 그것을 교육과 실천에 접목하려고 했는데 그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덕에 지난 2월에 오픈해서 여섯달 동안 25000명의 방문을 받았던 이 블로그가 단 사흘만에 12만명 이상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사람 많은 이글루스에서 나름 파워(?)블로거로 불렸던 시절에도 여섯달 단위로 10만 히트가 넘어갔었는데.

그러다 보니 다소 오해도 있고 해서 좀 교정을 하려고 합니다.

1. 우선 폭풍 알티의 원천이었던 ".... 냉정히 보자"라는 포스팅은 한 마디도 "법리로는 다퉈볼만하지만 도덕적인 판단은 쉽게할 수 없다."입니다. 제가 그 글을 쓴 이유는 조국 교수가 "법적 판단은 신중해야겠지만"이라고 해 놓고는 바로 도덕적 단죄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적판단이 신중해야 한다면 도덕적 판단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법적판단은 드러난 현상들과 법리를 따지지만 도덕적 판단은 그 맥락과 의미까지 이해(따지는게 아니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법리를 따져본 까닭은 유무죄를 따지는게 아니라 "대단한 비리"처럼 알려지는 2억과 자문위원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치 "교육감은 무죄"인것처럼 퍼뜨려지면서 많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저는 법률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물론 로스쿨 학생도 전문가는 아니죠) 그럴 위치에 있지 않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설법대 출신이고 동생이 법대교수라서 집에서 법타령은 좀 많이하고 사는 편입니다만, 이 법률전문가(로스쿨 학생이 아니라 라이센스드)들은 어떤 질문에도 확답을 안합니다. 항상 대답이 이렇게도 볼수 있고, 저렇게도 볼수 있고, 다수설은 이렇고, 소수설은 이렇고 하면서 우물거립니다. 그래서 짜증을 내면 모든 법해석에는 이설이 있고, 그래서 재판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만약 제 글이 "무죄를 입증"하는 것으로 읽혔다면 그건 글쓴 당시 제가 다소 격앙되어 조절이 안된 탓으로 돌립니다.

다만 "좀 조목조목 따져보자, 내가 먼저 따져볼테니 다 같이 따져보자, 흥분해서 욕부터 하지 말고"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건데, 그건 성공한 것 같습니다.

2. 두번째 폭풍알티글인 "진짜 위기는 곽노현이 아니다"의 경우도 저는 진보진영 보수진영이 아니라 과도엘리트 체제와 다중네트워크의 대립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또 리트윗 되면서 도덕선생 주류보수 코가 납작해 식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도덕은 중요하지 않아 이런 식의 오해를 사게 되는데, 사실 저는 도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독한(?) 도덕주의자인 손*호(이렇게 해도 다들 아실듯) 교수의 제자인데 어찌 도덕을 가벼이 여기겠습니까? 도덕을 너무 중요시 하기 때문에 도덕적 질타를 함부로 하면 안되며, 또 "진보는 도덕성이 무기다"따위의 헛소리를 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덕적 질타를 함부로 하면 안되는 까닭은 보편적인 도덕판단의 기준을 한 두개 미리 설정해 둘 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덕판단이 아주 쉬워지겠지만, 손쉽게 도덕적 일원론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도덕적 일원론이 진보와 결합하면 독단주의가 되며, 파쇼가 됩니다. 그래서 칸트는 순형식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구체적인 판단기준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직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보편화되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행위자의 도덕적/비도덕적의 판단기준은 그 행위자가 자기 마음속의 정언명령에 충실했느냐, 보편화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따져 보았느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소위 말하는 "진정성"이죠. 하지만 어떤 행위가 반대로 실제 공동체에 얼마나 도움을 증가시키고 피해를 감소시켰느냐를 가지고 도덕판단을 해야 한다는 목적론적인 관점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정치공학적 이익을 위해 사퇴를 강요하는 주장은 바로 "목적론"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이며, 스스로의 진정성에 따라 싸울것을 요구하는 주장은 앞의 의무론적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둘중 뭐가 옳다고 단정지을 근거는 없습니다. 그럼 뭐란 말입니까? 더 말하면 아주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결론은 어떤 행위를 도덕적으로 질타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논변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자회면 끝나기가 무섭게 "도덕적으로는 !" "도덕성이 무기!" 이따위 소리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도덕성이 무기라는 말을 듣는다면 칸트는 당장 도덕을 수단화했다고 펄펄 뛸겁니다. 반면 공리주의자들은 "도덕성이 무기"인게 아니라 "무기가 되는게 도덕적"이라고 수정해 줄겁니다. 제가 진보 과두정 지도자들의 도덕주의, 엄숙주의를 비판한 까닭은 도덕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각자가 양심에 따라 복잡하고 신중하게 내려야 할 도덕판단을 자신들의 권위를 가지고서 대신 내려준뒤 그걸 강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도덕성.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건 진보진영의 무기가 되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인간성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도덕성,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싸우려 하면 안됩니다. 도덕적 우위를 내세우려면 결국 하나의 도덕적 기준을 설정해서 "봐라 이 기준에 우리가 더 많이 도달했다."라고 하면서 반대진영에게도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데, 실상 자신의 도덕기준을 상대방에게 적용할수 있다는게 이미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는 절대 싸움도 승리도 안됩니다. 그 기준을 저들이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도덕교과서의 1/3이 반공교육이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당시 권력을 쥔쪽은 반공을 도덕기준의 하나로 썼단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면 저쪽도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것이며, 그들의 도덕기준을 강요할 것입니다. 교과서 뜯어고치는거 봐요.

그러니 진보진영은 싸움은 도덕성으로 하지말고 전략과 전술로 하세요. 도덕성은 보수진영하고 비교해서 내가 더 우월해 하고 선전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 행동을 계속 해나갈 힘을 주는 스스로에 대한 힘의 원천입니다. 도덕은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내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떳떳하면 그걸로 만족하는 겁니다. 도덕은 바깥에 내보일 흠결 하나 없는 그 무엇이 아니라, 흠결이 있을지라도 스스로에게 물어가면서 이 흠결을 둘것인가 제거할것인가를 양심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칸트도 말했잖아요? 그 자체로 선한것은 선의지(사실상 신의 뜻이죠) 뿐이다 라고. 도덕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흠결 속에서 완전해지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 그 과정인 것입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이른바 숙의민주주의에 대하여(1)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학종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학종 다음의 셀프학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