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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선 교수 간단 인터뷰

강경선 교수와 사적인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느닷 차용증 얘기가 쏟아져 나오네요. 하지만 저는 검사가 차용증 이야기를 꺼내서 스스로 백기를 들었거나 출구전략을 찾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차피 흠집내기 수사이기 때문에 댓가성 입증보다는 선의 무력화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곽노현 교육감이 선량한 기부천사였다는 과거행적이 자꾸 나오자 차용증 이야기를 꺼내어 냉정한 거래로 돌려 놓으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사인간의 단순한 거래가 되어 사건 자체가 성립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박명기 피의자가 소명을 잘 한 것이 되고, 결국 법무법인 바른의 실적이 되고 말겠죠.

게다가 차용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형사상의 매수나 뇌물공여 등이 성립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차용증의 여부(있다고 했으니 합격), 돈 받는 사람의 상황(빌릴만큼 절박했는가? . 이건 합격), 변제기간과 이자의 약정(이건 봐야 알겠네요. 이때 이자가 시중금리보다 지나치게 싸면 그 금융이익만큼을 뇌물로 봅니다), 실제 그 기간과 이자의 이행여부(. 이건 차용증 내용에 월리인지 연리인지에 따라 다를거 같고, 그냥 박명기가 떼먹은걸로 가면 그만이고) 등을 따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차용증 논란은 도덕성흠집내기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따뜻함흠집내기로 가면서 수사도 연장할 수 있는 고도의 꼼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언론 장난질을 막기 위해 너무도 명백한 왜곡보도로 강경선 교수가 댓가성을 시인했고, 곽노현 교육감 측이 낙담했다고 악의적인 소설을 써댄 동아일보를 일벌백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강교수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만, 나는 교육감의 측근이 아닌지라, 이리 저리 줄을 찾던 중 강경선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는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회의 위원들 중 제 지인이 있어 그 분께 강교수님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오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강교수의 멘트를 따 올수 있었습니다. 소회가 많으셨는지 곽교육감 취임 초반기 이야기부터 풀어 가시더군요. 그걸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터뷰는 931130분에 약 30분간 전화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저런 안부 이야기 등을 다 빼니까 딱 이렇게 남습니다. (이렇게 작성한 것을 녹취록이라고 하죠 ^^ 음원과 함께 제출해야만 증거능력이 있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임의로 작성한 녹취록은 의심받으니 전문가에게 작성하게 하세요^^ 아니, 웬 옆길....)

= 이하 녹취록(?)=

지인: 언제부터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강경선: 원래 교육현실을 잘 몰랐습니다. 다만 곽노현 교수와의 인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육현장을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은커녕 교사들의 기본권도 무시되고 있지 않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참정권도? 이런 이야기를 교장들 앞에서 강의한 적이 있는데, 환호하지 않고 분위기가 싸했습니다.

지인: 처음 사건이 알려지고 K씨라는 이름이 보도될 때 강교수님임을 직감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해 안타까운 마음에 전화 메시지 남겼다가 석방되셔서 너무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92일 동아일보에 뜬 인터뷰 기사 때문에 너무 황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린 것입니다. 지금부터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강경선- 곽교육감이 교육감직을 원활히 수행하고, 서울교육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궂은 일을 맡이 처리한다는 차원에서 이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평상시 법을 강의하면서 생각한 내용을 정리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진술했고, 나중에 우리나라 법관련 중요한 토론 거리를 제안한다고 생각하고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 강의실을 벗어나 여행차 검찰청에 왔다고 생각하면서 맘 편히 지냈습니다.

2. 하필 동아일보 인터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경선- 안 그래도 사건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 하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뜻밖에 영장을 청구하지 않아서 학교로 왔는데, 동아일보 수습기자가 찾아와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터뷰 할 때, 나의 선의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응한 것입니다.

물론 조중동의 동아라는 건 알지만, 이 기회에 동아일보가 제대로 기사를 작성해서 정론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반목과 불신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수습기자가 작성한 내용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인터뷰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작성되었고, 수습기자가 아닌 다른 기자의 이름으로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선의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나의 태도가 나이브하다고 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3.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강경선- 나도 반론권 등 권리를 회복하는 방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방법을 동원하면 나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법적 공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까지 소모적인 법적 공방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싶지 않습니다. 동아일보도 법인이고 기자도 인격이 있으니 그들도 이런 상황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평가는 대중에게 맡겨서 대중들의 상식으로 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4. 그럼 결국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강경선- 곽교육감 관련 사안도 그렇고, 이 사안도 그렇고 법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때 법적으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기고 지는 게임에 너무 몰두하면, 법의 정신은 사라지고 공방하는 테크닉만 남습니다. 사실 주변에서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모두 부인하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두 번이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되면 내가 평생 살아온 삶의 철학에 어긋납니다. 나는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법도 이런 정직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율법과 복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죠. 나는 이번 사안들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추구한 가치, 법에 대한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정리 하자면 동아일보 수습기자가 와서 순진하고 진심어린 태도로 인터뷰를 했고, 강교수는 동아일보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이 참에 조중동과 시민사회의 반목도 해소하고 싶어서 성실히 인터뷰에 응했으나, 수습기자가 가져간 원자료를 노땅 기자들이 멋대로 뜯어고쳐서 엉뚱한 기사를 만들었다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럴까봐서 언론 등을 상대로 말을 하지 말라는 요청도 있었으나 진실만을 말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소신있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실을 왜곡 보도한 동아일보 기자도 사람인데, 그냥 용서하되 대중들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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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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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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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