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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은 물론 공정택도 불구속이 옳다

2010년 공정택 전 교육감의 10개월을 끈 재판이 끝이나고, 공교육감은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 1년 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참으로 많은 일들을 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일은 일제고사에 반대한 교사들의 징계를 확실하게 마무리한 일일 것이다.

흔히 공정택 전 교육감이 선거관련 재판 때문에 구속되고 결국 징역형을 받은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교육감직을 상실한 다음, 재직 당시 매관매직 사건에 대한 것이다. 선거 관련해서는 10개월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았으며 벌금형만 받았다.

또 당시 검찰은 공정택에 대해 접수된 무수한 고소, 고발들 중 뇌물수수, 불법선거운동자금 조성 등은 갖가지 이유(주로 대가성이 없다)를 들어 무혐의 처리했으며, 겨우 하나 골라서 기소했다. 그리고 구형자체도 매우 낮게 구형하여 은근히 당선취소형을 피해가게 하려는 취지가 역력해 보였다. 당시 진보진영이 무죄추정원칙에 입각한 냉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게 한 원인을 검찰이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에서 강경하게 판결하였다. 이런 점에서 애매한 혐의 하나만 걸려있는 곽노현 교육감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정택 역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어쨌거나 불구속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우리 헌법, 형사소송법, 그리고 검찰의 지침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2조

③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④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⑥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⑦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보는 바와 같이 헌법은 국민이 구속에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강하게 보장하고 있다. 특히 구속적부심을 형사소송법이 아니라 헌법에 명시해 놓음으로써 이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에서도 구속의 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형사 소송법 제 70조 (구속의 사유)
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 할 수 있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② 법원은 제 1항의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우려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검찰 스스로 세워 놓은 구속수사 지침이 있다. 여기에서도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며 구속은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수사 편의를 위해 구속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못 박고 있다.

구속 수사 기준에 관한 지침
(대검예규 기획 제400호, 2006. 6. 12.)

제1장 총칙
제1조(목적) ① 이 지침은 피의자에 대한 구속 수사의 적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② 형사소송법과 이 지침에서 정하는 사유와 기준에 따라 구속을 엄정하게 함으로써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할 수 있도록 한다.

제2조(불구속 수사의 원칙)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무죄추정과 임의수사의 원칙에 따라 수사는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제3조(비례성의 원칙) ① 구속 수사는 헌법상 기본권 제한 과잉 금지의 원칙에 따라 수사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
② 구속 수사는 사안의 내용과 예상되는 형벌에 비추어 상당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③ 수사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권익 침해 정도가 더 낮은 수사 절차와 방법을 강구하고, 다른 절차와 방법으로는 수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구속 수사하는 것으로 한다.
.....
제25조(선거법위반사범)
......
②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피의자는 원칙적으로 구속 대상으로 본다.
1. 다액 또는 선거인 매수 목적의 금품을 제공하거나 이를 받은 자
2. 상습적으로 금품 제공을 요구․알선하거나 제공받은 자
3. 상습 또는 대량으로 흑색 선전물․불법 선전물을 배포하거나, 악의적인 내용의 허위 사실 공표 또는 사생활 비방을 목적으로 한 흑색 선전물․불법 선전물을 배포한 자
4. 흉기․위험한 물건 또는 다중의 위력을 사용하여 선거의 자유를 방해한 자
5. 폭력을 행사하여 선거 단속 업무를 방해한 자
6. 그 밖의 제1호 내지 제5호에 준하는 행위로 건전한 선거 질서에 중대한 위해를 가한 자

여기에 따르면 공정택 전 교육감의 경우 일정한 주거가 있으며, 모든 증거가 계좌 등과 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확보되어 있으며, 스스로 교육감직을 계속할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도망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당시 공교육감에게는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았다. 2010년에 구속된 것은 이 사건이 아니라 장학사, 교장 승진 뇌물 사건이다. 이 경우는 뇌물의 실체가 절반도 밝혀지지 않았고, 연루된 사람이 매우 많은데다가, 이미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라 도주의 우려가 크다. 따라서 구속 기소의 사유가 된다.

그렇다면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는 어떨까?

우선 주거는 확실하다. 주거가 너무 확실해서 어버이들이 몰려가서 난리를 치고 있다. 그리고 증거인멸의 경우 모든 증거와 진술이 거의 다 드러났다는 것을 양측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즉 1% 남은 진실의 다툼이라고 검찰도 인정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인멸하거나 은폐될 증거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도주? 사건이 발표된 이래 꼬박꼬박 칼출근 칼퇴근 하고 있으며 본인 및 주변인들 중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아 체포된 사례가 없이 꼬박꼬박 제발로 찾아갔다.

그렇다면 형사소송법의 구속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보기 어렵고, 검찰의 지침에 따라도 다른 수사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선거사범의 경우 선거인 매수의 목적으로 금품을 제공하거나 받은자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있는 지침을 들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주어진 금전이 차용인지 증여인지, 또 그것이 대가성을 가진것인지 아닌지가 이미 중대한 다툼의 대상이기 때문이 이것을 근거로 구속할수는 없다. 그건 검찰이 판결을 내리겠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공정택의 경우는 이미 혐의는 명백했고 다만 당선 취소형보다 낮은 형량을 받기 위해 재판을 진행했던 것이라, 경우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공정택의 경우 학원장, 특목고 관계자 등으로부터 "차용"했다고 주장하는 수십억원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줄 무혐의 판정을 때렸기 때문에 역시 구속사유는 없었다.

따라서 곽노현 교육감의 사안의 경우 구속수사를 해야할 필수적인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당선인과 당선인 정책은 별개라는 점을 감안하여 기왕의 교육정책과 행정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도록 하고, 만일의 경우에 충분히 준비해서 공백없이 교육청 행정이 인수인계 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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