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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냉정하게 곽노현 교육감 구속 이후를 생각하자

지금 트윗이 불타고 있다. 불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타서 소진된다면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가슴을 잠시 부여잡고 냉정하게 상황상황을 따져 보아야 한다.

일단 나는 법리공방으로 가면 판사가 법적 안정성을 중히 여기는가 아니면 무죄추정의 원칙(검사의 유죄 소명책임)을 더 중히 여기는가에 따라 판결이 나겠지만 무죄가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곽노현 교육감의 최초의 기자회견 뒤 즉시 범법자 취급을 하고 바로 도덕적 단죄를 하는 조리돌림을 식히고 싶었을 뿐이다. 즉 법적으로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이다.

하지만 나는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서는 엄연하게 잘못이며, 박원순 변호사의 말을 빌리면 오버라고 생각한다. 검찰 구속은 수사의 한 방법이며, 법원 구속은 재판에의 출석을 보장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찰은 이미 2004년부터 자체 내규를 통해 구속이 아니고서는 수사할 방법이 없을때 구속이라는 수사방법을 쓴다고 정해 놓은 바 있다. 법원 역시 구속이 아닐 사유를 소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 해야만 하는 사유를 소명하여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쪽으로 변해 왔었다. 2002년부터 구속영장 기각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피의자가 "범죄에서 사실관계를 부인할 경우",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 "중요 증인이나 피해자를 위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매우 위험한 피의자로 풀어 놓으면 계속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경우(대개 이 경우는 10년 이상의 중범죄)", "도망갈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음은 구태여 다시 말 할 필요도 없다. 그 해석과 의미를 달리 했을 뿐 "팩트"에 대해서는 부인한 적이 없다. 그리고 사전합의 인지여부는 단지 검찰의 의심일 뿐 피의자가 소명할 사항이 아니다. 게다가 그건 영장에 적시한 2호에 해당되는 내용도 아니다. 도주의 우려야 당연히 없다 할 것이다. 게다가 모든 검찰의 소환에 협조적이었다. 박명기 교수와의 형평성도 웃기는 얘기다. 박명기 교수는 일수 빚에 쫓기는 사람인데 만약 피의자까지 되면 도주의 우려가 매우 높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가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구속이라는 수사방법이 피치못할 상황이라고는 전혀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정희 변호사 말대로 일단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영장실질심사에서 이를 저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어떤 관행적 사고 같은 것이 문제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단 영장은 발부되었고, 착한 사마리아인은 구치소로 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린 또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일단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는 것이다. 연휴기간에 법원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당장 내일이라도 구속적부심을 신청한다. 그래서 인용이 되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 적어도 1심 판결이 나는 12월 말까지는 결재를 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까닭은 2012년 서울교육예산이 9월중에 확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1심 결과에 따라 법정 구속이 되더라도 교육혁신사업의 예산을 내년도까지 확정해 놓고 갈수 있다. 게다가 그 사이에 서울시장 재보선이 한바탕 지나갈것이기 때문에 1심 판결 역시 크게 달라질 수 있다(혹자는 판사가 정말 법률 로봇처럼 중립적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강아지 풀뜯어먹는 소리고, 오히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 판사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다. 판사는 당연히 여론을 살펴야 한다. 여론을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문마다 단골로 나오는 건강한 상식, 사회적 통념이 판사 개인의 생각이 아니게 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1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1년이면 마음 독하게 먹으면 교육혁신을 못 박아놓고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설사 대법원 판결로 인해 직을 상실하게 되더라도 이미 도덕적 위신의 손상은 충분히 회복했기 때문에 억울한 정치검사의 피해자 혹은 허접한 공직선거법의 빈틈의 희생자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보궐선거에서 능히 진보교육감을 재창출하여 정책을 연계할 수 있다. 사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최고수준의 결과였다. 도덕적으로는 무죄를 믿지만, 적용 법 자체가 전례가 없는 것이라 논란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 나쁜 시나리오는 구속적부심이 기각당하는 경우다. 이때는 양 갈래 길에 서게 된다.

1. 뜨겁게 생각한다면

끝까지 싸운다. 최상의 경우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을지도 모르며 다시 직무에 복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1년간 이주호가 파견한 부교육감은 서울교육을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수준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벌써부터 교장들이 세상만난듯이 술렁거리고 있다. 교원업무경감은 물건너가고 학생인권도 물건너가며, 다시 국영수 심야 방과후가 꿈틀거리고 있다. 확정판결까지 1년이면 혁신을 못박을 수 있듯이 그 역도 가능한 것이다. 사실 나도 이 문제 때문에 가장 큰 고민이다. 끝까지 싸워야 할까 아닐까.

2. 차갑게 생각한다면

구속적부심 기각과 함께 울분을 토하며 교육혁신의 1년간 후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교육감 직을 사퇴하며, 10월 26일에 시장과 함께 교육감의 재보선을 실시하게 하고, 사퇴의 변 등을 통해 진보진영 교육감을 다시 선택해줄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 진중권이 사퇴를 종용할때는 도덕적으로도 회복되기 전이었기에 파렴치범으로 남는 것이지만, 이 시점에서의 사퇴는 교육혁신의 지속을 위해 피눈물나는 희생자의 이미지로 물러나는 것이기에 그 도덕가가 다르다. 35억 환수 안한다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이건 법원에서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 결과에 따라 선관위에서 반환을 요구하는 문제기때문에 확실한 것이 아니라 다만 사퇴를 유도하는 낚시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가 서울교육혁신의 지속성이라는 명분으로 이런 요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사퇴했는데 대법원에서 무죄라도 받으면? 어차피 2호 적용이라면 선거후 금품거래를 처벌할수 없다는 법적안정성 논리와 사실상 공소시효 무제한에 한번 선거로 겨루었다면 앞으로 어떤 사적 거래도 할수 없게 만드는 범죄의 확대해석의 문제 사이에서 머리 터지게 고민할 것이다. 박명기 교수의 경제적인 위급상황의 정도, 그리고 박명기 교수와 곽노현 교육감간의 사적인 관계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느 변호사의 말대로 대한민국 사법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바로 이런 부분이 바로 도덕적 딜레마를 만든다. 그러니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폄하할때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솔직히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서울교육의 혁신이 꾸준히 진행될 것을 바라는 마음과, 저 바보스러운 착한 사마리아인(직접 만나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나의 이 견해에 대해 토 달지 말라)에 대한 신뢰와 애정 사이에서.

그래도 끝까지 가는게 더 나을것 같기는 하다. 이주호와 부교육감이 서울교육의 시작하다 만 각종 혁신 사업을 닥치는데로 뒤로돌아 시키겠지만, 그때는 투쟁하면 된다. 어차피 나나 전교조는 교육청 사업을 협조하는 것 보다는 교육청을 상대로 투쟁하는게 익숙하니까. 그렇게 1년쯤 투쟁하다가 교육감이 귀환하면 그 다음에는 폭풍우를 휘날리면 된다. 만약 생환하지 못한다면(35억 환수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 동안 베푼것이 많은 만큼 분명히 도움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또 다시 진보교육감을 옹립하면 되는 것이다. 그 때는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기 때문에 아주 조건이 좋을 것이다. 이미 곽노현 재판을 통해 진보진영의 파렴치범으로 몰 가능성은 봉쇄되었고, 끌면 끌수록 분노게이지만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일단 잠을 자야겠다. 그리고 만약 끝내 곽노현 교육감 체제가 무너진다면 나는 딱 2년만 더러운 꼴 보며 학교에서 버티고(쒸파, 1년만 더 버티면 연금 수급권 생긴다구), 곽교육감과 함께 학교를 바꾸려던 꿈을 접고, 학교 밖에서 이놈의 썩어버린 공교육 전체를 대체할 대안적인 교육활동을 모색할 것이다.

20년 교육활동하면서 꿈꾸어왔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 막 이루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주저앉게되는 이 참담함은 차가운 법리나 들이대는 법률가 혹은 법률가연 하는 로스쿨생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조중동의 인격살해에 가까운 허위날조 보도에 대해서는 기자와 신문사에게 철저히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피의사실을 슬슬흘린 책임자는 반드시 찾아내어 처벌해야 한다. 그들은 반드시 응징되어야 하며,검찰 빨대노릇한 신문들에게서 모조리 배상을 받아서 혹시 모를 환수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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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