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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자문위원 - 단일화 댓가로 주어진 공직?

마침내 검찰이 곽노현 교육감을 기소했다. 뭐 구속까지 시켰으니 당연히 기소하겠지. 더구나 죄질이 아주 나쁘다느니, 최고형을 때려야 한다느니 아주 살기가 등등하다. 가카적 관점에서 보면 첫 공판이 10월중에 열릴 것이고 이때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기간일테고, 그런데 이때 유죄 무죄가 판가름 나는 선고공판이 열리기는 멀었고, 기껐해야 검찰이 공소장 읽고 구형하는 정도의 기일이나 잡힐 것이다.

그러니까 10월 중 열리는 재판은 검찰의 주장이 나오는 재판이다. 이때 검찰은 "징역 5년" 정도 때릴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을 때릴 가능성도 있다. 구속=징역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일반인들이라면 구형=선고 라고 착각하기도 쉬울테니. 그래서 시장 보궐선거 한 복판일때 검찰이 "징역 7년!" 하고 외치면 실제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곽노현은 징역 7년짜리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건 자위대축하사절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기소 내용이 우습다. 공직선거법 232조 1항 1호가 아니라 2호로 기소한다고 떠들어 놓고는, 정작 기소사실에는 계속해서 5월19일 합의, 합의인지, 합의 주도 등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증거는 없다. 다만 이렇게 큰 돈을 약속 없이 주었겠느냐 하는 심증 뿐이다. 또 공소시효를 착각해서 6개월이 지난 다음에 돈을 준것이라고 정황증거를 내세우지만, 이는 거꾸로 아무런 약속의 증거가 없는데 굳이 공소시효 지난 다음 돈을 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 앞에 쉽게 무너진다. 동생에게 돈을 준 것은 아주 쉽게 그때 박명기가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며, 나눠서 준 이유는 돈이 없어서고(빌렸음을 검찰도 알고 있다), 차용증은 그건 곽노현 소관이 아니라 강경선과 박명기 동생의 소관이니 알 바 없다. 만약 차용증을 곽노현이 알고 있었다면 처음 기자회견때 "빌려주었다."라고 해서 단번에 법망을 피해갔을 것이다.

어쨌든 약속의 증거를 찾지 못하는 한 "돈을 준 사실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라는 검찰의 자신감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약속했던 사실을 처벌하는 1호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이전에 약속했던 사실이 있어야 사후매수인 2호도 입증이 용이한 것이다. 이때 검찰이 절묘한 한 수를 찾았다. 그게 바로 교육청 자문위원이다.

이 자문위원은 단일화 협상때 곽노현 교육감 측에서도 이미 말이 나갔던 바 있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 사전 약속이다. 그리고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으니 이건 사후매수가 성립되는거다. 결국 언론플레이는 2억원으로 하고 정작 유죄판결은 이 자문위원직으로 걸어 보겠다는 꼼수가 보이는데, 문제는 이 자문위원이 어떤 자리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에는 모두 22개의 자문위원회가 있다. 이 중 가장 발언권이 센 자문위원회가 서울교육발전 자문위원회인데, 그 마저도 기껐 열심히 만든 제안서가 장학관들에게 묵살당하기 일쑤다. 자문위원회에서 A라고 작성한 제안서를 장학관이 aaa라고 기안해서 올려도 뭐라고 할 수 없는 힘없고 백없는 자리가 자문위원회다. 그나마 서울교육발전 자문위원회, 혁신학교 자문위원회 정도가 정책에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게다가 보수도 없고, 교통비도 안 나오고, 심지어 식사값도 없다. 재능기부도 이런 재능기부가 없다.

이 자문위원회 중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회라고 있다. 교육감의 절친인 강경선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는 자문위원회다. 그러니 최측근 자문위원회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자문위원회 역시 예외없이 회의 끝나면 자기 돈 내고 밥먹어야 하며, 자기 돈 내고 택시타야 한다. 또 이 자문위원회에서 "당면 민주시민교육의 과제는 교육청의 민주화부터"라는 제안서를 작성했는데, 이 제안서는 장학사, 장학관 손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어떤 제재를 가할수 없다. 그냥 울분만 토할 뿐.

이게 바로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회의 실상이다. 게다가 이런 자문위원회가 22개나 되고 자문위원은 300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사후매수의 대가라고 당당히 기소사유로 적시된 이 자문위원이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자리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물론 교육계에서 탐내는 자리인 것은 맞다. 단 일선학교 교사의 경우가 그렇다. 비록 보수는 없지만 이런 걸로 위촉되면 학교에서 교장이나 교감이 슬슬 눈치를 보니 상당히 맛깔스러운 자리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서울사대와 함께 교육계 메이저인서울교대 교수이며 자문위원보다 훠얼씬 높은 서울시교육위원을 3선이나 했던 박명기 교수에게는 어땠을까? 비록 지금은 꽤 이미지가 망가졌지만, 진보교육계의 총아이며, 또 체육교육계의 실세였던 박명기 교수는 곽노현 교육감이 아니라 누가 교육감이 되더라도 어떤 이름의 자문위원이나 자문위원장 한 자리는 당연히 꿰어 찰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하찮은 미관말직, 아니 순 이름뿐인 자리가 매수댓가라? 정말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이거 교수들은 물론 교사들로도 자리 채우기 어려워서 결국은 이른바 "유지들"로 자리 차는 그런 자리다.

당장 나만해도 "교원업무정상화 전문위원", "연구시범학교 선정위원", "교육감1주년 사업 준비위원" 등등 온갖가지 위원질 하느라 지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이거 처음 한 두번은 교감, 교장이 눈치보는 맛이나 있지, 좀 지나면 걸핏하면 출장달고 회의 참석하라는 공문만 날아와서 귀찮기만 하다. 그래서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최근에 이런 저런 위원으로 위촉하겠다는 요청을 거절하고 말았다.
그러니 검찰에게 정중하게 요청한다. 2억에 대해서는 알아서 최선을 다해 범죄사실을 소명해라. 단 당신들의 억측, 경험칙(! 기소장에 이 단어 나오는 건 처음 봤다) 말고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하지만 교육청 자문위원, 이건 제발 기소장에서 빼라. 이건 매수 댓가라고 내어 놓기에는 너무 쪽팔린다. 교육감은 커녕 학교장 공모에서도 안 통할 자리다. 만약 교장 공모중 경쟁자에게 "너 교장자리 양보하면 교육청 자문위원 시켜줄게" 이러면 그 말 들은 상대방은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글빙글 돌릴 거다. 아니 교장이 아니라 학교 주무관이나 행정실 직원, 심지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교육청 자문위원을 댓가로 그 자리를 양보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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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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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