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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넬 모차르트 - 그 기막힌 여자의 길

나넬 모차르트는 결코 음악 영화가 아니다. 이점이 유명한 남자 음악가에 가려진 여성 음악가를 다룬 또 다른 영화 "클라라"와 이 영화를 구별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지루하다, 보기 힘들다고 평한 원인이다. 실제로 로베르트 슈만의 3번 교향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클라라와 달리 <나넬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이라 봐여 k.28번의 바이얼린 소나타가 잠시 나올 뿐. 게다가 나넬 모차르트의 작품은 전해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으로 등장하는 음악은 다 가공의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음악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18세기의 궁정사회를 보여주는 일종의 역사 판타지 물도 아니다. 베르사이유 궁이 나오긴 하지만 태자의 내밀한 사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화려한 궁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여성영화이며, 성장이 좌절되는 한 천재 여성에 대한 레퀴엠이다. 사실 이 주제는 나도 꼭 한 번 다루고 싶었던 것이었다. "신동 모차르트"와 관련된 기록이나 그림을 보면 항상 함께 연주하는 누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누나 역시 대단한 음악가였을 것이다. 실제 모차르트나 아버지의 기록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넬의 클라비어(건반악기의 독일어 통칭) 연주에 감탄했으며, 모차르트조차 자신이 누나보다 탁월한 음악가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웬만한 음악가는 전부 조롱하고 비웃는 말을 서슴치 않았던 모차르트가 누나의 음악에 대해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기록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언제나 예찬 일색이다. 심지어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악보를 누나에게 보내면서 "누나에게는 별 거 아니겠지만, 웬만한 피아니스트는 이걸 연주하려면 땀 깨나 흘려야 할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서한 곳곳에 "나와 누나만이 할수 있는..."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비인에 정착한 이후 음악가로서 나넬 모차르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피아노 레슨 교사로 몇년간 일하다가 나이 많은 귀족의 후처로 들어가 자작부인이 되었다는 것 정도가 다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넬 모차르트라는 음악가는 어디로 갔는가? 이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답은 간단하다. 나넬 모차르트가 초경을 하면서, 즉 여자가 되면서 음악의 신동의 삶은 끝났다. 신동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여자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건 이 영화에서 나넬과 친교했던 프랑스 공주의 삶, 프랑스 태자의 삶도 사실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자기 삶, 자기 재능에 맞는 삶은 없다. 단지 그들의 배역만 강제될 뿐이다. 공주와 태자는 자유로이 예술을 하며 유럽을 순회하는 나넬을 부러워하지만 조만간 새장속에 갖혀야만 할 나넬의 처지를 알지 못한다.


물론 천재인 나넬이 이런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넬은 아버지가 바이얼린이나 작곡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당시 여성에게 허용된 악기는 건반악기와 하프였다. 이들 악기는 실내용 악기이기 때문에 가족음악회 등에 사용되었다. 바이얼린은 오케스트라 등 공적인 연주를 위한 악기이며 지휘자나 악장이 되기 위한 악기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딸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은 건반악기라도 공적인 악기인 오르간은 역시 여자에게 금지되었다), 어깨너머로 바이얼린이나 작곡을 수준급으로 익힌다. 아버지는 그런 나넬을 걱정한다. 여자에게 허용되지 않은 길, 관례가 금지하고 있는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시 딸의 재능이 출중함을 "그걸 의심하나?" 하며 인정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침내 나넬은 가출을 감행하고 여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자립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은 음악가이기 이전에 여자로 취급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태자는 음악적 후원자가 될 것 같아 보였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가가 아니라 그의 정부가 되어야 했다. 나넬은 그 길을 거부한다. 결국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부턴 여자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식사가 끝난 뒤 수북히 쌓인 설겆이 거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나넬의 모습은 눈시울이 붉어질정도로 슬프고 한스럽다. 이제 나넬은 어머니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저 여러 귀족과 왕족들의 모임에 초대받는 것이 즐겁고, 그런 남편 만난 것이 마냥 행복한, 그리고 살림 잘하는 천상 여자인 어머니 말이다. 이제 나넬은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 자기 어머니의 삶을 살아야 한다.이제부터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은 그런 것이다. 천재소녀나 평범한 소녀나 결국 스무살 되면 똑 같아지는 것, 단지 여자로만 취급받는 것, 그게 여자의 삶이었던 것이다.

재능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 재능을 펼칠수 있는 사회적인 영역과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려받은 재능은 크면 클수록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그리고 나넬 모차르트는 저주앞에 쓰러지며, 결국 여자의 삶을 살며, 단지 동생의 그림자로 남는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남자라는 특권 덕분에 재능이 꺾이지 않고 꽃필수 있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땠을까? 이 영화에서 소년 모차르트는 나넬과 대립적 관계에 있지 않다. 둘은 서로 끔찍히 아끼며 음악을 공유한다. 이건 상당히 긴 복선인데, 먼 훗날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역시 관례적인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재능이 발휘될 필드를 찾지 못해 비참하게 쓰러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기획한 두 자녀의 삶은 이런거다. 누나 나넬은 소녀시절 뛰어난 클라비어 연주자로, 처녀시절 음악선생으로, 그리고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귀부인으로 키우는 것이다. 당시 클라비어 연주는 숙녀의 기본 소양이니 그러기에 유리하다. 결국 나넬은 좀 이상한 모양새긴 하지만 이 순서대로 살아가고 만다. 동생 볼프강은 유망한 직업 음악가로 성장하고, 높은 귀족, 더 나아가 왕실의 전속 음악가가 되어 귀족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볼프강은 이 코스를 거부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음악가의 길을 선택한다. 영화속의 나넬처럼 볼프강 역시 가출을 통해 이 길을 선택한다. 심지어 볼프강은 누나에게도 빨리 가출해서 둘이서 음악계를 평정하자는 편지를 몇차례 보낸다. 하지만 나넬은 연로한 부친을 모셔야 한다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볼프강은 쓰러졌고, 나넬은 장수했다. 하지만 장수한 나넬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거세된 삶, 혼이 억눌린 삶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는 나넬이 진정 참으로 살아있었던 나날, 즉 천재로 살았던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고, 살아도 산것이 아닌 그런 삶, 즉 여자의 삶의 시작지점을 포착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모든 재능있는 여성을 위한 레퀴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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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