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혁신학교 기반 닦기 (1)

이건 제가 준비하고 있는 저서의 기본 얼개를 일단 차례차례 던저보고 반응을 보려는 것입니다. 제 논리 대로라면 여기는 제가 본격적으로 논객질 할 수 있는 홈 그라운드입니다^^

서론: 혁신학교의 꿈과 우려: 어디로 가야 하나?

2008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2010년 전국 6개 시도에 진보교육감들이 당선되면서 교육의 일대 혁신이 시작되었다. 이 혁신은 무엇보다도 6개 시도에 들불처럼 확산되는 혁신학교를 통해 구현되기 시작되었다. 이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면서 또한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교육이 억압과 통제의 식민지 교육, 군사 독재 교육의 잔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학생들의 성장을 돕기는커녕 이들을 편협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어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공교육의 핵심기관인 학교부터 이런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학교혁신의 요구는 1980년대부터 거세게 솟구쳐왔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학교만큼은 민주화의 무풍지대였다. 오랫동안 학교를 지배해왔던 교육관료와 사학재벌 집단은 거대한 마피아처럼 뭉쳐서 자기들의 지배체제를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일부 교사들은 아예 제도권 밖의 각종 대안학교를 통해서만 미약하게나마 그 꿈을 실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제도권 학교에서는 아주 작은 혁신이라도 관철시키려면 거의 전쟁에 가까운 충돌과 갈등을 거쳐야만 했고, 심한 경에는 해직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전국교직원 노동조합, 2011).

그런데 경기도, 서울을 필두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혁신 시도마저 강압적으로 억압하며 해직으로 위협했던 시도 교육청이 앞장서서 혁신학교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낡은 교육의 혁신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징계했던 교육감이 앞장서서 혁신학교를 장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탄압을 각오해야 했던 교육혁신을 이제는 교육청의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박수 받아가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는 이미 2년 이상, 서울에서도 벌써 1년가량 혁신학교가 교육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었다.

그러나 교육혁신의 모범이 될 만한 모형을 제시하고, 여러 교육자와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받아 모든 학교에 널리 확산되게 만든다는 혁신학교의 목표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도리어 잡음이 먼저 들리기 시작한다. 혁신학교가 바른 길로 가고 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격론이 벌어지는가 하면, 혁신학교를 빙자하여 예산만 털어먹는 짝퉁 혁신학교가 속출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들려오고 있다. 또 혁신학교 안에서도 자발적으로 혁신학교를 운영하려는 혁신적인 교사와, 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었기에 할 수 없이 따라가는 중도 혹은 보수적인 교사들 간의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혁신학교의 주력을 담당하고 있는 경기도의 전교조 지부장이 진보교육감의 원조 격인 경기도 교육감에게 혁신학교의 80%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라고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혁신학교가 시작된 것은 길게 잡아 2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벌써부터 실패나 성공을 논하기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갖은 탄압과 어려움과 맞서며 일구어 나간 혁신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의 전폭적인 지지와 막대한 예산지원을 받아가며 추진해 나간 혁신학교라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첫째, 혁신학교가 여기에 쏟아 붓고 있는 교사들의 노력과 열정에 비해 기대만큼의 교육적 성과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설사 성과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것이 일부 교사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내하기 위한 각오와 결단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학교는 혁신적으로 교사들을 죽인다.”라는 살벌한 농담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며, 이 말이 어필하여 혁신학교 신청 안이 교무회의에서 부결된 사례까지 나타난다.

물론 몇몇 혁신학교에서 눈에 뜨일만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광 뒤에는 교사들의 엄청난 헌신과 희생이 숨어있다. 물론 이 헌신과 희생은 자발적이며, 이런 헌신과 희생을 한 교사들을 폄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이는 좋게 말해 열정적인 헌신, 나쁘게 말하면 초과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교사들에게 도덕적인 질타를 가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혁신학교는 확산되기 어렵다. 이건 마치 모든 병사들이 위대한 용사가 된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새로운 전술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혁신학교가 확산되고, 마침내 낡은 교육을 일신할 수 있으려면 특별한 각오와 초인적인 헌신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며, 건전한 이성을 갖춘 교사들이 상식적인 수준의 노동만으로도 이를 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혁신 학교진보 교육을 연결할 수 있는 지점과 방향이 불분명하다. 만약 진보교육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혁신적인 입시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역시 혁신학교라 불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극찬했던 덕성여중 같은 학교에서는 혁신적인 입시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던가? 또 학교에서 학원 수업까지 흡수해서 밤 10시까지 학생들을 붙잡아둔다는 발상 역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이런 학교를 혁신학교라 부를 수 없다. 이건 혁신학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혁신학교는 진보적이라야 한다. 즉 사회의 개선과 발전에 기여해야 하며, 학생과 교사들의 가능성과 관심의 확장에 기여하여야 하며, 그 개선과 발전의 과실이 특권층이 아니라 사회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해야 하며, 그 사회의 일체의 억압과 차별이 사라지게 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즉 혁신학교는 이 사회가 더욱 살기 좋으면서 민주적인 세상이 되도록 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각종 혁신학교 실천 사례들이나 제안들을 살펴보면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연결이 부족하다. 단지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여 다루고 평등한 나눔을 강조하여 가르친다고 해서 진보적인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나는 북한보다 미국이 더 좋아요혹은 삼성을 욕할 것이 아니라 삼성만큼 성공하는 기업을 세우면 될 것 아닌가요?” 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분노의 따귀를 날리는 교사를 진보적이라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진보교육은 민주주의를 구태여 목 놓아 외치지 않아도, 평등이니 나눔이니 하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일상적인 교육내용을 학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떤 특권도 거부하는 평등관과 협동관이 형성되도록 해야한다. 즉 진보교육은 교육 내용에 직설적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교의 관계, 즉 삶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셋째, 혁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어떤 학생관,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는지 그 과학적 정당성이 불분명하다. 혁신학교를 주장하는 교육자들이 지금까지의 교육을 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교육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지금까지의 교육이 인간의 혹은 아동·청소년의 본성에 어긋나는 교육임을 과학적인 근거와 함께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비판은 다만 지금까지 이루어져왔던 교육에 대한 단순한 편견이나 반감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새롭고 진보적인 교육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학습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혁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그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과의 관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사실 이 부분이야 말로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혁신학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혁신학교들은 청소년 유락시설이 아니라 엄연한 공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사회적 자원을 투입하는 만큼의 사회적 산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제 아무리 학생들이 행복하고 즐겁다 할지라도 그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 기여할 능력을 기르는 것, 즉 노동과 아무 관련이 없다면 그것은 다만 유한계급의 장식물에 불과한 것이며, 그런 일에 땀흘려 노동한 사람들로부터 걷은 세금을 투입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이 네 가지를 종합해 보면 현재 혁신학교가 봉착한 문제는 혁신학교의 교육철학”, “혁신학교의 교육학의 부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 혁신학교는 무엇을 혁신하며, 2) 혁신함으로써 무엇을 지향하며, 3) 그 혁신의 내용은 어떤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4) 그것을 통해 어떻게 진보에 기여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혁신학교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교사들의 책임도, 또 그렇다고 진보교육감의 책임도 아니다. 진보교육감의 탄생과 혁신학교의 확산은 분명 박수칠만한 일이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경기도 한 군데서 김상곤 교육감이 외롭게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처럼 느껴졌었는데, 무려 6개시도(인구로는 전국의 절반 이상에 서울까지!)에 한꺼번에 진보교육감이 등장할 것이라고는 미처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진보교육감들이 등장하고 그 동안 교육혁신을 꿈꾸었던 교육자들에게 그 동안 꾸었던 꿈을 현실로 옮기라며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학교 하나가 통째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이들 혁신적 교육자들은 학교에서 작은 변화 하나라도 관철시키려고 학교 관리자 심지어는 교육관료 전체와 격렬하게 싸워야 했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작은 변화 하나 하나에 대한 아이디어들은 풍부하게 가지고 있지만 , 학교 전체를 더 나아가 교육체제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호한 기대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꿈조차 꾸지 못했던 것이다. 교사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집단지성을 꾸려보려 하여도, 학문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의 집단지성은 계속 그들의 상식과 통념의 범위만을 맴돌 뿐이다. 새로운 체제에 대한 조망은 굳이 레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너머를 사유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통해 너머로부터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학문적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혁신학교가 주어졌다. 이렇게 급하게 과제가 던져질 경우 사람들이 가장 쉽게 의존하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매뉴얼이다. 결국 핀란드 학교, 프레네 학교, 그리고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 같은 모형들이 매뉴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런 혁신학교들의 혁신의 배경과 목적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와 토론은 생략되고, 속성으로 이 학교 모델들을 이해하고 적용하고 제도화하는 작업이 개시되었다. 그 동안 주입식 교육에 쩔어 있던 한국의 학교는 혁신마저도 주입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혁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전체적인 교육혁신의 비전 없이, 이런 저런 모델에서 따온 각종 아이디어들을 적용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혁신학교에서는 참으로 다양하고 참신한 활동들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활동들이 어떤 공통의 지향점으로 모이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들은 힘은 힘대로 들지만 자신들의 활동이 무엇을 이루는데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확신과 신념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는 설명하기 어려운상황에 처한 것이다.

차근 차근 살펴보자. 혁신학교 운동은 혁신의 대상을 전제한다.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지향하는 만큼, 이는 일단 현재 한국 공교육이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공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는 문제의식에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 학부모들은 사교육의 늪에 빠져 엄청난 초과노동을 강요당하며, 학생들은 끝도 보이지 않고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엄청난 입시교육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을 상하고 있다. 신뢰를 잃어버린 공교육과 교사들은 거의 공공의 적이 되어 온 국민의 질타를 받고 권위마저 상실해 심지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구타당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혁신학교 운동은 다른 종류의 한국 공교육 문제 해결책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있다. 혁신학교 외에도 꽤 많은 문제 해결책들이 제시되었지만, 그것들은 결국 사교육 대책, 입시제도 개혁, 공교육 강화 방안 등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대책들은 이른바 대증 요법이나 눈가리고 아웅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사교육’, ‘입시과열’, ‘공교육의 신뢰 상실등은 교육 위기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의 위기는 이미 대증요법으로 해결될 수준을 넘었다. 위기의 증상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원인을 찾고, 해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 운동은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떤 것이라야 하는가?”, “학교란 무엇이며 여기에서는 어떤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대증요법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혁신학교의 성공은 여타의 잡다한 교육 개혁 정책의 성공과는 그 격이 다르다. 이것은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새로운 교육의 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근본적인 것에 대한 성찰과 이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 혁신학교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원도 더 많은 인력도 아니다. 목적지가 부산인지 목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운전자에게 수만 가지 자동차 조작법을 알려준다 한들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혁신학교 활동들을 하나로 아우르며 이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총제적인 전망과 이를 정당화할 학문적 기반이 필요한 것이다.

이 학문적 기반은 철학, 정치학, 학습심리학, 인간과학, 사회학, 경제학을 망라하여 기존의 교육학과 교육체제가 낡고 퇴행적인 것임을 입증해 내고, 장차 학교와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나가야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며,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토론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바탕이다. 즉 혁신학교는 교육제도와 교육학 전반에 대한 혁신과 함께 일어날 때 비로소 제 갈 길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외국에 다녀옵니다. 목요일부터 재집필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