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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감이나 박변 재산 가지고 뭐라 그러지 말자

요즘 갑자기 곽감이랑 박변 재산 가지고 뭐라 뭐라 말이 많네. 곽감 용산 아파트가 17억이네 뭐네 하면서. 아마 보석 가능성이 있으니까 조중동이 미리 약치는 것이겠지. 그래서 돈 많은 범털은 역시 절대 빵에 안간다니까 어쩌구 하는 분위기 퍼뜨리고, 이걸 역시 압구정동 사는 박변하고 연결시켜서 "친서민 개뿔, 진보 개뿔, 다 부자야! 그러니까 기왕 부자 찍을거 10억대 부자 말고 100억대 부자 찍어!" 이런식으로 초치려고 하는거겠지. 그런데 이게 소위 대중들한테는 의외로 잘 먹힌다. 이게 왜 잘 먹히냐 하면 진보진영에서 쉴드를 안 치니까 먹히는거다.

만약 누가 정몽준이 왜 이렇게 돈이 많냐고 따지면 퍼런당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정당한 사업의 댓가를 가지고 시비걸어? 너 빨갱이야?" 이렇게 나올거다. 그런데 만약 누가 진보진영의 누구한테 돈 많다고 시비걸면 소위 진보지식인들은 어떻게 나올까? 아마 "어 생각보다 많네?" 이러고 말거다. 나는 이런 문제제기 나왔을때 "정당한 재산이다. 부정축재분은 한 푼도 없다. 뭐가 문제인가?" 이렇게 나오는 진보지식인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우리나라 진보는 다 수도사의 도덕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이가 환갑이 다 되어가는 대학교수와 개업의사 부부가 20여억 재산 가지고 있는게 뭐가 그리 신기한가? 한 동안 엄청 잘 나가던 변호사가 그만 시민운동에 빠져서 130평짜리 집도 처분하고 이제 월세신세가 된건데, 그 월세가 좀 비싸기로서니 뭐가 문젠가? 이렇게 당당하게 쉴드 왜 못쳐주는가? 이게 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움찔하면서 쫄아버리는 80년대 운동권 근성 때문에 그렇다.

이게 뿌리가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프롤레타리아가 추앙받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운동권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여기에 따라 일종의 암묵적인 골품이 있지 않았나 싶다. 예컨대 빈곤층이면서 출신이 호남이면 이건 성골이다. 빈곤하면서 비호남이면 진골이고, 중산층 호남은 6두품, 그리고 중산층 기타지역은 5두품, 중산층 영남권은 4두품... 나는 부유층 자제인데다가 TK출신이라서 말하자면 천민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오래 살아서 집 밖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한 등급 상승했고, 또 아주 검소하고 소박(거의 지저분하게)하게 입고 다녔기 때문에 다들 컨트리 출신으로 알았으니 또 한 등급 상승했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이게 마치 서울대 남학생들한테 고등학교 시절 물어보면 저마다 경쟁적으로 "공부 졸라 안했다. 거의 양아치였다." 이렇게 말하는거랑 비슷하다.

어쨌든 그때는 돈을 금기시했다. 졸업후 전망을 이야기할때도 가능하면 돈과 관련된 계획을 말하면 경멸받았다. 나는 사범대 출신이면서도 교사가 되면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노동자 농민들에게 미안해서 말이다. 요즘 세대에겐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80년대 운동권 정서였다.

그런데 사실 이게 졸라 위선인거다. 그때 대학생들, 운동권이라도 다 과외로 돈 벌었다. 심지어 운동권들 사이에서도 약속 잡을때 "과외 시간" 만큼은 철저히 보장해 주었다. 당시 일주일에 두시간씩 두번, 즉 한달에 여덟시간 수업하고 받는 돈이 20만원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 700원이던 시절의 20만원이다. 자취방이 보증금 30에 월세 6만원이던 시절의 20만원이다. 그 무렵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이 하루 여덟시간 이상 한달에 200시간 일하고 받는 돈이 17만원이었다. 그러니 가난은 개뿔, 민중에 대한 부채의식은 개뿔인거다.

이 개뿔 정신이 아직도 살아남아있으니 기가막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편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의외로 돈이 많으면 그 순간 쫄아버리면서 그 사람이 뭐 큰 문제라도 있는 것 처럼 생각한다. 소위 대중들이 "서민의 벗 좋아하네" 이런식으로 나올때 설득하기 보다는 같이 포기해 버린다. 개뿔!

아니, 그런데 꼭 가난한 사람만 진보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아니면 진보하면 꼭 가난해져야 하나? 그럼 태어날때 부터 부자였고, 죽을때 까지 부자였던(마르크스에게 요즘 돈으로 연봉 3500만원 정도를 해마다 그냥 줄 정도니) 엥겔스는 그런 기준으로는 졸라 위선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겠네. 왜 "난 돈 많다. 하지만 진보다. 그래서 돈 많으니 세금 왕창 내라고 하면 낼거고, 나한테 세금 왕창 뜯겠다는 정당에게 투표하겠다."라고 말 못하나?

진보는 돈이 많다 적다의 문제가 아니다.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에 찬성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비록 지금 돈이 많아도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에 의해 그 재산이 감소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심지어 그런 정책을 주창한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진보적이다. 반면 재산이 거의 없어도, 그 재산을 지키겠다고 발발거리면 그 사람은 충분히 보수적이다.

그래서 나도 노무현 정부때 부동산 세가 해마다 1000만원이나 징수되었지만 군말없이 납부했고, 계속 지지했었다. 또 이명박 정부가 나에게 엄청난 감세혜택을 주었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보적이다. 반면 영세자영업자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그 정도의 재산에도 강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며 결국 보수적이다.

진보는 가난뱅이도 아니고, 또 돈관리에 잼병인 호갱도 아니다. 하는 일에 따라 돈을 많이 벌수도 있으며, 검소하고 착실하게 생활하다 보면 꽤 많은 재산이 축적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진보적인 부자는 자신의 그런 부유한 상태가 사회에도 빚진것임을 인정하며, 그 재산의 일부에 대한 사회의 요구에 응할 뿐이다. 또 부유한 진보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1000만원을 기부하는 것 보다는 자기, 또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에게 세금 1000만원을 징수하는 법안에 찬성하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기부는 부자가 주인공이 되는 행위지만 누진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는 자신의 부를 특권의 원천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튼 곽감이나 박변의 재산가지고 뭐라고 하지 말자. 그 사람들 정도 위치에서 그 정도 재산은 정상이다. 아니, 그 정도 보다 더 많으면 또 어떤가? 이걸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괜히 시샘하는 무리들이거나, 진보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제대로된 노동도 해 본적이 없어서 땀흘려 모은 재산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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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