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곽감도 진중권도 소재로선 식상하지만

이 블로그 방문자 통계를 보니 벌써 20만명이 눈앞이다. 올해 2월에 처음 오픈했는데, 그것도 이글루스처럼 사람 많은 곳이 아니라 적막한 블로거닷컴인데 8달만에 20만이라. 이글루스에서 1년 반만에 거두었던 히트수라 깜짝 놀랐다. 그런데 조회수 많은 글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 곽감 관련 포스팅이었다. 그래서 균형을 위해 당분간 곽감관련 포스팅은 안 할 생각이지만 진중권의 10월 3일 칼럼 "정의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두 글자 적는다.

그 칼럼의 내용을 상세히 논박할 이유는 느끼지 못한다. 다만 몇 가지 잘못된 전제가 있어서 이건 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진중권의 그 칼럼은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성립되어야만 타당성을 가진다.

1. 곽노현 구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곽빠(팬덤)질을 하고 있으며, 빠질 때문에 정의의 문제까지 혼동하고 있다.(눈치를 보느라 빠질이라고는 차마 못하고 존경이 지나쳐라고 표현했지만 같은 말)

2. 이 빠질에 편승한 지식인들은 공정택 등의 보수 인사때는 적용하지 않던 무죄추정원칙, 불구속수사 원칙을 강변하고 있다.

3. 또 일부 진영논리에 빠진 지식인들은 우리편이 하는 일은 설사 부도덕한 일이라도 선이라는 패거리 도덕을 주장할 정도로 타락하고 있다.

4. 김어준은 항상 다수 대중에 편승했지만(황빠, 심빠) 계속 틀렸고, 졸라 고결한 진중권은 항상 소수의 진리편에 섰고, 그래서 이겼다. 이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피자.

먼저 1이다. 실제로 왕년의 황빠를 보는 듯한 분들이 곽노현 구명운동 하는 분들 가운데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구명운동 하는 분들은 지난 몇개월간 정말 교육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새 희망을 지피다가 실망한 교사들이다.(특히 초등 교사들) 탄원서 서명 부스 한번이라도 진중권이 방문해 봤다면 저런 용감한 주장은 하지 못할것이다. 이들은 교육혁신이라는 중요한 사업을 올스톱시킨 경솔한 선행에 대해 분명히 비판할 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시민운동 진영과 함께 처리했어야 할 박명기 구호문제를 다소 어리숙한 강교수에게 일임한 것이 현명하지 못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매수행위가 일어난 적이 없음"은 의심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진중권은 "실제로 매수행위를 했지만 단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다음은 2. 나를 포함한 곽감의 옹호자들은 제작년 공정택 사건이 터졌을때 공정택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하 적이 없다. 적어도 이들은 구속이 처벌이 아니라 수사 기법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공정택이 그 무수한 비리의 목록을 흘리고 다닐때 전교조 등등이 공정택을 구속하라는 주장을 한번이라도 했는가? 다만 재판이 빨리 끝나서 공정택 아웃되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심지어 김상곤 교육감조차 공정택의 불구속 수사를 촉구한다는 성명서에 동참했었다.
무죄추정 원칙? 당시 공정택은 "범행"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고, 다만 형량만 다투는 상태였다. 무죄추정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도 한참 빵에 살만한 혐의는 검찰들이 죄다 무혐의 처리하고, 당선 무효형 안 나올것 같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 형식적으로 기소한 상태였다. 이런 최상의 검찰 서비스를 받은 공정택과 온갖 언론 빨대질에 부당한 구속까지 당한 곽노현에 대한 태도를 단순 비교한 다음에 두 태도가 서로 다르니 정의롭지 못하다, 이중잣대다?
"댓가성을 졸라 처절할 정도로 입증하지 못했으니 몇억짜리 그림이라 하더라도 뇌물이라 할 수 없다"는 환상적인 판결 끝에 무죄로 나온 한상률, 직원들이 회장을 너무 사랑해서 수천억의 회사돈을 스스로 삥땅쳐 준 것이지 회장님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3류 소설에 근거해서 무죄받은 이건희와 어떤 합의나 약속을 했다는 증거도 없이 다만 한참 뒤에 2억을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댓가성을 주장하며 구속시킨 곽노현을 단순비교해서 똑 같이 엄정한 법의 잣대를 논하는 것이 정의라고? 이건 궤변이다.

3. 글쎄. 이건 여기에 해당되는 주장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말 못하겠다. 박동천 교수의 글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 진선생이 오독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는 도덕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보의 도덕관 자체가 보수의 도덕관이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였으니까.
4. 이게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곽감 사건이 처음 발발했을때 안타깝게도 곽감의 사퇴를 촉구하던 목소리가 다수였고, 곽감의 결백을 옹호하던 목소리는 극소수였다. 자칫 잘못 옹호했다가는 거의 욕설에 가까운 댓글이 주루룩 붙어버릴 정도였고, "선의로 2억 줄 친구 있으면 그 좃이라도 빨겠다"는 정말 주옥같은 글을 극장뎐이라는 글을 연재하는 인기 블로거란 작자가 써 발길 정도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진중권이 고결한 소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재빨리 다수의 포지션에서 제일 먼저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위대한 교육학자인 내가 폭풍 rt된 글을 써서 곽감에 대한 무차별적인 마타도어를 식히면서 상황이 급반전하고, 나꼼수 17회가 나오면서 소수가 다수가 되고 다수가 소수가 되었을 뿐이다. 이건 진중권이 청중을 빼앗긴 것이지, 소수 목소리에 스스로 선 것이 아니다. 그리고 8월26일 그날 심야의 SNS혈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당시 곽감을 옹호하는 글들이 차분하고 논리적이었으며, 사퇴를 촉구하는 글들이 오히려 흥분해 있고 선동적이었음에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동안 진중권과 같은 포지션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황우석의 최전성기때 이미 그 사람이 뭔가 석연치 않다며 비판하기 시작했고, 심형래가 용가리, D-WAR 만들었을때 예고편만 보고 이건 영화가 아니라 쓰레기라며 비판조차 아꼈었다. 김규항을 B급은 커녕 C급 좌파라고 보는 점도 일치하고, 또 칼라TV에 돈도 꽤 많이 기부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동안의 내가 잘못본 것인지, 아니면 진선생이 잠깐 실수 한건지 헷갈린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