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진보교육감들은 주변에서 술꾼들을 축출하라.

곽노현 교육감의 신상에 변동이 생기면서 서울의 교육혁신에 계속해서 교묘한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 이렇게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그 동안 교육감의 후광에 힘입어 나름 큰 목소리를 내었던 소위 진보교육인사들(교육시민운동가 혹은 전교조 출신들)의 됨됨이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대략 네 종류다.

1) 더욱 전의를 불태우며, 곽교육감의 구명과 진보교육의 구심점 회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우는 사람들. 촛불을 들거나, 트윗이나 블로그에서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고 탄원서 서명을 받고, 교육관료들이 교육혁신을 뒤집으로는 것을 필마단기로 막아세우는 등 눈물겨운 노력들이 있다. 이들을 "투사"라고 불러주자.

2) 보수세력들의 교육혁신 역행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교육감이 돌아오면 질풍같이 교육혁신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최악의 경우 곽교육감이 물러나고 보수교육감이 들어설 경우를 대비하여 싸움에 동참할 세력을 다지는 작업까지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책사"라고 불러주자.

3) 교육감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과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혁신에 한 발, 교육관료쪽에 한 발을 걸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당연히 "기회주의자"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정적으로는 교육감과 혁신의 편이나 막상 교육감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떤 대책도 아이디어도 싸움의 방향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진보진영에서 나름 인물 대접을 받아온 까닭은 이들이 술자리를 잘 챙기기 때문이다. 이들을 "술꾼"이라고 부르겠다.

이들 중 누구를 발탁해야 할지는 답이 뻔하다. 이른 바 진보교육 일꾼들을 철저히 검증해서 이 넷중 1)과 2)에 해당되는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발탁 등용해야 하며, 3)에 해당되는 자들은 철저히 몰아내야 하며, 4)에 해당되는 자들은 책임있는 일을 주지 말아야 한다.

곽감이 구속되고 나서 진보교육진영의 사람들의 면면이 드러났다. 그 동안 갖가지 감언이설과 위장을 통해 1)과 2) 행세를 하였으나 실은 3)이나 4)였던 자들이 위기가 되자 본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위기가 되자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 1)이나 2)에 해당되는 분들 중 진보교육단체, 전교조, 시민운동 단체를 통해 곽교육감에게 추천된 인물들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교조 등의 단체나 조직에서 추천한 인물을은 대부분 3)이나 4)로 판명났다. 1) 즉 투사인줄 알았더니 3)기회주의자였고, 2) 책사인줄 알았더니 4) 술자리에서 말만 번지르르한 인물이었다.

시야를 넓혀서 교육관료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호소하는 기회주의자가 전교조 강경파 출신 행세를 하고 있었고, 사사건건 혁신교사들의 발목을 붙잡고 결과적으로 보수교육관료들의 프레임의 손을 들어주는 인물이 전교조의 저명이론가 행세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저명한 문화예술인들이 교육감의 석방을 위해 작성한 탄원서를 마치 자기가 쓴 글인양 자기 이름으로 버젓이 신문에다 게재하는 파렴치한 표절범까지 문예체 교육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곪디 곪은 환부는 교육감이 구속에 이르는 위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곽교육감은 귀환하면 제일 먼저 적들 보다 아군 속에 도사린 이 환부들 부터 도려 내어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곽감의 구속이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고도 볼수 있으니 떡검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들 짝퉁 투사, 짝퉁 책사들이 서울시교육청에 진입한 통로가 한결같이 전교조 혹은 그 언저리라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교육감 측근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그 전에는 거의 연락을 않다가) 전교조 시절의 인연을 들먹이며 줄을 댄 인물도 있다. 이렇게 한심한 짝퉁들이 지난 1년간 교육감 주변에서 진보교육의 핵심 인사 행세를 하고 있었으니 교육감의 갑갑함이 어느정도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렇게 훌륭하다 추천해서 혹은 명성이 높아서 모셔왔는데 이게 뭔 꼴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그렇다고 그 단체들의 영향력이 있으니 대놓고 뭐라 하지도 못하고.
하지만 교육감이 위기에 처하자 위력을 발휘한 사람들은 이 명성높으신 분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드러나기 시작한 진정한 투사, 진정한 책사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 사람들은 그런 명성, 조직의 연줄 없이 현장에서 교육혁신을 위해 분투하던 교사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그런 분투 과정에서 곽노현 교육감과 짧은 조우를 했고, 그 짧은 조우만으로도 서로의 진정성을 공감했다. 그들과 교육감 사이에는 일종의 우정 같은 감정도 느껴진다. 또 다른 일부는 그들의 글이나 책을 보고 교육감이 직접 만남을 청해 이야기를 들었던사람들이다. 물론 이들도 교육감과 1-2회 정도 만났을 뿐이며, 교육감 못지않게 결벽스런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교육감과의 사적인 만남을 가능하면 회피하는 편이라 측근이 되지는 않았다. 이들과 교육감 사이에는 일종의 존경심이 공유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곽노현 교육감이 영광의 절정을 이루었던 7-8월 사이에는 그저 무대 뒤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교육감이 고난과 수난을 겪었던 9-10월에야 어쩔수 없이 비장하게 무대 전면에 튀어나와 교육감이 취임시에 예견했던 "온몸에 쏟아질 화살"을 예리한 전투력으로 막아내었다. 아마 예상키로 곽교육감이 이 위기를 탈출해서 다시 부활한다면 이들은 다시 무대뒤로 돌아가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것이다. 그리고 저 짝퉁투사, 짝퉁책사들이 다시 튀어나와서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랜 진보 운동의 보루라고 자처하는 거대조직인 전교조 등의 인재발탁 시스템이 혹은 진보진영의 명성획득 시스템(?)을 문제삼아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짝퉁 투사, 짝퉁 책사들이 진보교육운동의 중요한 인물로 명성을 쌓고 또 천거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코믹하다. 바로 "술"이다. 저 짝퉁들의 공통점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잘 챙긴다는 것이다. 물론 소위 말하는 술자리 매너도 멋지기 한량없다. 이렇게 술자리를 많이 가지면 사적으로 호감을 갖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이렇게 저렇게 마당발이 되면서 결국 명성을 얻어가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사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술자리에서야 중요한 비즈니스 대화를 하는 부르주아들의 썩은 관습이 소위 진보진영에서도 만연해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운동가들은 아주 효과적으로 배제되었고 마초들끼리만 모여 앉아서 술자리의 호기를 이용하여 공허한 100년대계 1000년대계를 논하면서 그것을 그만 능력으로 착각해 버린 것이다.

80년대에 젊음을 보냈던 활동가들은 기억하리라. 술자리에서 꼬부라진 목소리로 외쳐대었던 그 수많은 투쟁방향, 전략, 전술, 조직구성방침들을. 그 중 몇개나 과연 실행에 옮겨졌는지, 그리고 술자리에서 외쳐대던 사람들 중 몇이나 실제 구체적인 작업을 했는지를. 결국 술자리가 파하면 남는 것은 "그 사람, 사람 좋아."라는 평판, 뭔진 모르지만 하여간 멋진 말을 많이 했으니 "그 사람 샤프하고 영리해"라는 평판인 것이다.

그리고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녀양육과 가정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여성활동가들은 이 술자리 담론에서 점점 소외되고, 결국 평판도 얻지 못하면서 평가 절하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요하고 어려운 사업을 하나 완수했다고 치자. 한국인들은 맨정신으로는 모두 겸손하다. 항상 평가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그놈의 뒷풀이 장소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뒷풀이 2차부터 여성들은 거의 가고 없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서로 정신이 많이 풀려서 공치사들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 사업은 모두 몇몇 남성활동가들의 공적이 된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번이었는가?

그러니 돌아올 곽교육감뿐 아니라 진보교육감들, 그리고 앞으로 혁신을 꿈꾸는 진보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이들 술꾼들을 몰아내야 한다. 물론 술꾼들도 필요하다. 조직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술자리 명망이 공식적 명망으로 둔갑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평가하는 위치에까지 올라가서는 안될 것이다. 불행히도 진보진영에서는 그런 일이 무척 자주 일어난다. 차라리 술자리에 자주 빠져서 "싸가지 없고, 사람냄세 안나는" 그런 인물들이 필요하다. 이들 중 1)이나 2)가 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니 우리에게 시간이 풍덩거리며 남는것도 아니고 혁신의 길은 멀고도 험한데 하룻밤, 그 후윳증으로 다음날 오전까지 홀랑 술로 까먹고도 느낌이 없는 자라면 골목대장 이상의 그릇은 아닌 것이다.

아,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이 들린다. 나는 1)+2)다. 2)로서의 내 모습은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책사로 안다. 하지만 나는 싸움을 잘한다. 마주보고 논쟁도 잘하고, 글로 지상논쟁, 여론 싸움도 잘하고, 키보드배틀도 마다하지 않으며, 트윗 싸움도 잘한다. 심지어 주먹으로 맞짱을 뜨자고 해도 절대 마다하지 않으며, 여느 범털들과 달리 진흙탕 개싸움을 유도해도 마다하지 않고, 한 번 앙심을 품으면 뒤끝이 평생가기 때문에 아주 독하게 싸운다. 그리고 당분간 내 싸움은 수구꼴통보다는 먼저 우리편을 가장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팀킬을 하고 있는 기회주의자와 술꾼들을 향하게 될 것이다. 물론 대놓고 들이박는 미련한 짓은 안한다. 서서히 그들의 영향력을 축소시켜 나갈 것이다. 만약 돌아온 곽감이 도리어 그들을 옹호하거나 보위한다면, 뭐, 그건 그 분의 그릇을 잘못 판단한 내 잘못일테니 깨끗이 때려 치우고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