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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 보석 기각에 절망하지 맙시다

저는 논객이 아니라 생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블로그 글에 많은 시간을 쓰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포스팅은 어쩌다 3,40분 짬이 나면 그냥 즉흥적으로 씁니다. 그러다 보니 허술할 경우도 있고, 오류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진중권 선생같은 정교한 글은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진중권 교수란 표현을 절대 쓰지 않는 이유는 http://hagi87.egloos.com/1509151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곽노현 교육감의 보석이 기각된것에 대해 큰 실망을 하고 있는 것은 저도 어쩔수 없습니다. 보석되어 나오실 때를 대비해서 전해드릴 A4 11쪽의 제안서를 어젯밤에 급히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무죄판결보다 보석쪽이 확률이 더 높다고 보았습니다. 유/무죄는 저마다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에 신중하게 판단하는게 옳지만, 보석의 경우는 필요적 보석을 채택한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거부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보석 결정과 재판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하겠다"는 김형두 판사의 말을 믿어 봅니다. 과연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분이 공판중심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음과 같은 추론은 가능합니다.

1) 증인들의 증언을 하나도 들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에 대한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다 2) 현재 증언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상태이며, 증언을 아직 듣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적인 증거도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3) 그런데 피고자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고위직이며, 몇번의 심리과정에서 보았듯 대단한 달변가이기 때문에 증인들에게 유무언의 정치적 압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여 증언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4) 따라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

공판주의에 따르면 공판이 진행되기 전까지 판사는 사건에 대한 어떤 증거도 정보도 관점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보석신청이 들어왔을때 순전히 보석여건만 놓고 따져야 하며, 증언이 시작되지 않은 이상 여전히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점(말 맞추기)만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김형두 판사가 딱 이렇게만 했으리라 일단 믿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가정이지만 만약 11월 17일 이후에 모든 증인 증언이 끝나고 난 뒤 "상황변경"을 이유로 보석을 다시 청구할 경우 이를 인용하는지 보고 싶습니다(재청구가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검찰 조서와 달리 법정 증언은 번복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으니 일단 증언이 끝났다면 더 이상 인멸할 증거는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모든 증언을 다 받은 다음 판사 재량으로 구속집행정지나 보석을 명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거기까지는 기대도 안합니다.

사실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무죄보다 보석이 더 중요합니다. 12월 중에 모든 2012학년도 예산안, 사업 계획안이 시의회에 제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보석으로라도 나와서 그 일을 곽교육감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설사 실형을 선고받아 다시 법정구속이 되더라도 2012년까지는 교육 혁신의 맥이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 2012년 말 대선, 교육감 재보선을 통해 그 흐름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저도 이렇게까지 읽어내는데 꼼꼼하신 분들이야 당연히 이런생각하시겠죠. 그래서 설사 나중에 무죄로 방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구속만은 계속 유지시켜서 일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벌써부터 각종 혁신사업에 대한 예산이 닥치는대로 삭감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 아침 오마이뉴스의 진중권 선생의 칼럼은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진중권 칼럼쓰자, 판사는 보석 기각. 이렇게 말하면 무척 억울하겠죠? 그러니 진중권 선생만 억울한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여하튼 서울의 교육은 당분간 빅엿을 먹게 되었고, 뜻 있는 학부모님들은 자녀를 경기도로 전학보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름 애는 써 보겠습니다만, 법적으로 학교장이 멋대로 할 수 있는 한국 학교의 특성상(도가니 영화 보세요), 교장보다 더 높은 교육감 빽이 없으면 아주 사소한 개혁 하나도 진이 빠지도록 싸워야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그토록 곽교육감의 석방을 외쳤던 분들은 황빠, 심빠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사태를 우려했던 교육자들이었음을 진선생도 잘 새겨두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쓰는데 딱 25분 걸렸습니다. 시간 또 나면 틈틈이 고쳐보거나 보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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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