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진보 명망가들, 어르신 대접 받으려면 한나라당으로 가시라

망가져 가고 있던 박원순 측의 선거운동을 네티즌이 살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아마 또 그 과실은 정치권이 챙겨 갈 것이다. 한나라당이야 애초에 네티즌과 민중의 세몰이에 기대고 있지 않으니 상관 없지만 소위 진보진영의 묻어가기 혹은 손안대고 코풀기, 그러면서 어른 행세하기는 정말 도가 지나치다.

박원순 후보 선대위 발족하는 날 부터 민주노동당은 초를 쳤다. 박원순 선대위서 민노당 빠진다(한겨레) 도대체 이유가 원가 살펴 봤더니, 정말 가당치도 않게 "의전 문제"였다. 그러니까 손학규가 제일 높은 위원장이고, 이정희는 여러 위원장 중 하나라는 거다. 그러면서 선대위 대변인은 "명망가, 매머드급 인사들이 많아서 조정하는게 어렵다"고 한다. 나는 이 한마디를 통해, 그리고 그 결과가 22명의 공동 위원장, 그리고 20명의 이런 저런 본부장이라는 것을 통해 그들이 진보도 뭐도 아님을 직감했다.

정말 그들이 진보이며, 정말 그들이 진보적인 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은 명망가라면 "직책"과 "직위"를 놓고 그렇게 조정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서로 실무적인 일을 맡고, "장"자리 안 맡을려고 밀고 댕겼어야 했다. 그런데 그 조정의 결과는 수십명의 "장"이다. 그리고 정작 이런 저런 실무적인 일들은 죄다 젊은 사람들이, 그리고 여자들이 한다. 자신들은 다만 큰 그림만 그리고 나가서 사진만 찍는다. 이게 부르주아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한시적인 선대위에서조차 이런데 정말 시장이 당선되기라도 하면 얼마나 더하겠는가?

특히 이정희 의원의 발상은 기가 막히다. 한 마디로 박원순, 박영선, 최규엽 후보가 동등 자격으로 경선 한 것인데 왜 후보는 박원순, 선대위는 민주당 몫이냐는 거다. 이게 억지라는 건 말하는 자신도 잘 알 것이다. 과연 당시 최규엽 후보가 존재감이나 있었나?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민주당만큼 박원순 후보에게 도움이 될 활동을 할 수 있는가? 그 위상이 이정희 의원보다 크면 크지 작다 할 수 없는 유시민씨도 묵묵히 아랫줄을 감수하고 있는데 의전을 요구하고 지분을 요구하는게 가당키나 하나? 혹시 당시 지지율이 너무 차이가 나서 이미 당선을 기정사실화하고 미리 논공행상이라도 한 것인가?

그들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아래 사진을 보기 바란다.

이건 내가 촛불 포획 사건이라고 불렀던 그 장면이다. 자세한 내용은 당시 내가 썼던 포스팅을 참고하기 바란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거다.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봉기였던 2008년 촛불이 좀 되는 것 같자 소위 진보진영이 달라 붙었다. 각종 단체들이 모여서 공동 본부를 만들었고, 그때부터 지도부가 생겼다. 저 질서 정연한 의자들을 보라. 그리고 누가 제일 앞열에 있나 보라. 저 자리 배치할때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얼마나 신경전이 오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촛불의 상징은 촛불소녀, 유모차부대, 그리고 예비군이었다. 즉 청소년, 주부, 청년이었단 뜻이다. 그런데 멋대로 저 꼰대들이 지도부로 들고 나섰다. 그리고 "잠좀 자자, 밥좀 먹자"라며 학살적인 경쟁교육에 대해 항의하던 청소년들의 외침은 순식간에 "미국(!) 소 수입반대" 더 나아가 "미국 반대"로 바뀌고 말았다. 이게 바로 촛불포획 사건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누가 의자에 앉고, 누가 서고, 누가 앞열에 앉고 가지고 조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더럽다.

이 사진은 이번 박원순 선대본처럼 역시 진보진영의 공동추대로 출마한 곽노현 당시 교육감 후보의 선대본 출범식이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1) 전원 남자, 2)전원 원로, 3) 나이순 좌석 배치. 여기서 무슨 진보를 읽을 수 있는가? 이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선거, 정책과 관련해서 실무를 대부분 담당했던 사람은 정작 제일 뒷열에 얼굴 겨우 보일 정도로 밀려나 있다.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은 이름을 빌려준거다. 아니, 그 이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리 위세란 말인가? 설사 이렇게 자리를 누가 배치하려 하더라도 "탈근대까지 말하는 진보가 장유유서가 뭐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말하니 일 많이 할 사람이 앞에 서야지" 이렇게 말하는게 진정 진보다운 발상이 아닐까?

경험많고 명망 높은 어르신들이 저렇게 많이 모여서, 그래 단일화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박명기 후보 하나 어떻게 해 주지 못하고, 결국 교육감이 직접 해결하게 만들어서 지금 이 모양을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저 자리값이 뭔지 몰랐단 말인가? 교육감은 교육혁신에만 신경쓰고, 나머지 정치적인 것들은 알아서 해결하고 조정해 달라고 실무자들보다도 앞에 앉혀 놓은 것이다. 그 이름이 무슨 득표력이 엄청 있어서 거기 앉힌줄 아는가? 그럴거면 차라리 소녀시대를 거기 앉히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진보진영이라 불리는 어르신들. 그만 물러나시라. 그리고 그 자리를 젊은이들, 그리고 묵묵히 실무에 헌신해온 여성들에게 양보하라. 다만 뭔가 책임질 일이 생겼을때, 정리하고 처리해야 할 중대한 일이 생겼을때, 곽교육감 같은 소중한 인적자원 대신 누군가가 똥맞아야 할 일 생겼을때 그때 나서라. 그게 어르신이고 그게 원로고, 그게 진보다운 태도다.

그게 티꺼운가? 새파란 운동권 후배가(이 새파한 후배라는 사람들조차 이미 40대 중반이다) 앞열에 서고 자기 말에 토달고 자리 차지하는게 티꺼운가? 계속 어르신 대접 받고 싶으신가? 그럼 한나라당으로 가시라. 제발 진보타령 하지 말라. 남자들로 드글대고, 너도 나도 "장"자를 달아야 하고, 서로 자기 소속단체의 지분과 의전을 따지고, 나이순으로 자리가 배치되는 그런 상황에선 진보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수꼴이 존재할 뿐이다. 정말 더럽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다중들, 진보적인 대중들은 먼저 그대들 부터 정리해 버릴 것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