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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유리병 속의 행복? 한국은 우물안 전쟁터?

나는 아시아 여행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유럽이나 미국보다 편안하고, 또 안전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복작대는 것이 좋은 관찰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식문화가 발달한 것도 매력적이다. 특히 추위를 타는 나에게 따뜻한 남쪽에 있는 선진 중화권(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은 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다. 중국 본토는 웬지 정감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지역 여행을 다닌 한국인들 중 며칠간 입맛이 안 맞아서 거의 굶다시피 했다는 사람들을 제법 많이 보는데, 언어, 인터넷에 이어서 입맛까지도 갈라파고스가 되어서야 어쩔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이 지역의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이다. 입맛 짧은 것을 자랑하지 말고, 그 동안 진한 양념과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을 정화하고 볼 일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4룡의 일원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 4룡은 두루두루 꿰고 있어야 할텐데, 홍콩, 대만은 수차례 방문했지만 싱가포르르를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강제로 가는 연수지만 그걸로 위안을 삼고 일단 싱가포르로 고고싱 했다.

일단 싱가포르에 대한 기본 정보(이하 CIA 월드팩트 참조)는 1인당 국민소득이 41000달러로 과거 이들을 지배했던 식민 종주국인 영국, 일본과 맞먹는다. 게다가 소득수준에 비해 물가도 싸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는 우리나라 두배나 되지만 물가는 겨우 10% 정도 비싼 수준이니 엄청나게 싼 편이다. 그래서 구매력환산 국민소득(PPP)으로는 62000달러에 달해서 세계 5위다. 인구 수천, 수만명 짜리 극소국가를 제외하면 노르웨이, 룩셈부르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에 속한다(참고로 PPP기준 대만은 34000달러, 일본 33000달러, 우리나라는 29000달러).
각종 국가경쟁력 순위, GDP뿐 아니라 이런저런 것들을 통틀어 따져보는 삶의 질 지수에서도 항상 최상위권에 랭크된다. 예컨대 평균 기대수명은 81.9세로 세계 최 장수국 중 하나이며, 실업율은 2.2%로 완전고용을 넘어 거의 초과고용 수준이다. 수치상으로 일단 확인한 바는 거의 환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늘 모델 역할을 했으며, 특히 "아시아인에게는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가 적합하다"는 담론의 발상지라는 것 정도.

물론 정신승리의 대가들인 일반 한국인들은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의 소국으로 여겨서 까불어 봤자 동남아에서 좀 잘사는 거지 뭐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 뿐이며, 제3국의 눈으로 봤을때 우리와 싱가포르의 격차보다 우리와 말레이지아의 격차가 훨씬 적다. 이건 접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이 강제연수의 제목이 선진국 탐방인데, 왜 싱가포르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사회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사람이다.

일단 방문한 첫 느낌은 부유한 선진국이 맞기는 맞다는 것. 멀라이언 파크에서 싱가포르 강 건너편에 보이는 싱가포르 시청 일대의 풍경은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웠다.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공항부터 남달랐다. 공항 곳곳이 수목원처럼 꾸며져 있었으며(심지어 화장실에조차), 그윽한 음악이 흐르고 배색도 세련되었다. 환승 터미널에는 정말 공짜로 앉아도 될까 싶은 카페형 소파들이 있엇고, 심지어 누워 잘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시내로 들어서자 도시는 더욱 력셔리해졌다. 사실 싱가포르에 갔다 서울에 왔을때 서울의 도심 풍경이 상당히 누추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정도다. 아래 사진 두 장은 싱가포르에서 도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멀라이언파크에서 찍은 도심 풍경이다.


그리고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되는 오차드 로드 일대 역시 세련되고 우아했다. 거리마다 빌딩만한 가로수들이 우거져 있었으며, 서울 같았으면 자동차들이 버젓이 주차되었을 넓직한 인도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 강남에서 볼 수 있는 그 천박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디가나 도시는 우아하고 깔끔했으며 품위있었다. 사람들도 조용했고, 무례하지 않았으며, 까딱하면 한 대 처 맞을 것 같은 삭막한 얼굴의 남자들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 화려한 빌딩들의 뒷면으로 들어서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눈치 빠른 람들은 사진만 보고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뭔가 활기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지루하다고 할까? 도대체가 번화가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이 없다. 아래 사진은 우리나라로 치면 종각역에 해당되는 래이플스 역 광장이다. 오전 11시 현재, 사람이 겨우 이렇다. 이런 풍경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다. 화려하고 멋들어진 초현대식 빌딩 사이에 몇 안되는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 완전고용을 달성한 나라의 위엄인가? 다들 일 하러 갔나? 아니면 너무 더운 나라라서 밖에 나오지 않는것인가? 그렇다면 다른 열대지방의 대도시인 홍콩의 템플스트릿이나 침사초이, 타이페이의 스린이나 시문처럼 야시장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야시장 문화도 찾기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홍콩이나 타이페이에선 지천으로 널려 있는 노점상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지저분한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싱가포르와 여러가지 여건이 매우 흡사한 홍콩을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홍콩 역시 중국계가 인구의 대부분이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중계무역과 금융산업의 중심지이며, 1인당 국민소득도 33000달러로 당당한 선진국이며 물가도 싸서 PPP가 47000달러니, 여러모로 싱가포르와 경제수준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홍콩은 수없이 방문했고, 앞으로도 틈만나면 방문할 것이지만, 싱가포르는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매력이 없다. 이 두나라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음 사진은 홍콩의 중심부인 애드미럴티 일대다.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서울을 누추해 보이게 만드는 엄청난 빌딩 숲이다. 빌딩들이 높을 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훌륭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홍콩의 진짜 매력은 이런 으리으리한 빌딩들이 아니라 그 뒷면이다.


그 뒷면으로 가면... 이런 풍경이 나온다. 우리의 꼬깔콘 시장의 천박한 미학이라면 당장 때려 부수고 위의 빌딩처럼 꾸미고 싶었을 그런 낡은 동네. 하지만 이 선명한 대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가 보지 않으면 모른다. 게다가 이렇게 당당히 버티고 있는 낡은 풍경은 결코 누추하지 않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심지어 이런 풍경까지 나온다. 여기는 결코 빈민굴이 아니다. 홍콩의 최대 쇼핑가라 할 수 있는 코스웨이 베이의 한 골목이다. 물론 여기서 몇 발짝 나가면 타임스퀘어, 리가든 같은 세계적인 쇼핑몰들이 하늘을 찌르며 서 있다. 싱가포르에서 좀체 찾기 힘들거나, 찾았다면 진짜 지저분한 빈민굴인 그래서 결코 당당하지 않았던 그런 풍경이다. 이런 낡고 지저분해 보이는 건물들은 홍콩 뿐 아니라 타이페이, 까오슝 같은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까지 낡고 지저분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싱가포르의 속은 어떨까? 다음의 사진은 싱가포르의 어느 사립학교의 교무실 풍경이다. 이 학교는 일년 학비가 우리 돈 700만원에 달하는(식비, 교재비 별도) 그런 학교다. 이게 국민소득 6만불짜리 나라의 학교로 보이는가? 이게 저 위의 환상적인 도시 풍경에 어울리는 교무실로 보이는가? 이럴때 쓰는 말이 아마도 외화내빈이 아닐까?


결국 싱가포르에서 느낀 것은 한국이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공관원은 싱가포르가 동남아에서나 선진국이지 한국보다 못하다라고 정신승리성 발언을 하며, 그 근거로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해서 겉보기는 깔끔하고 아름답지만, 답답하고 지루한 삶을 들었다. 어떤 작가가 이것을 가리켜서 유리병 속의 행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리병 안에서 모든 것이 안전하고 좋으니 그 밖의 세상을 모르고, 자기들이 최고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홍콩과 같은 중화권인데도(중국 정부는 싱가포르에게도 홍콩, 대만과 같은 일국주의를 적용한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애초에 출발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홍콩은 자유인들의 도시였고, 싱가포르는 회초리맞아가며 훈육되는 신민들의 도시였다. 영국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바위섬에 불과한 홍콩을 조차하여 여기에 무역 거점을 삼았고, 그러자 돈냄새 잘 맡는 광동인, 객가인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홍콩이라는 도시가 점점 확장되었다. 이들 광동인, 객가인들은 원래부터 정부말 안 듣기로 유명한 종족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정부나 공권력을 불신하며 오직 자기들의 신용을 통해 맺어진 가족(혈연보다 넓은 개념)만을 믿는다. 영국 식민당국도 구태여 이들을 통제할 이유가 없고, 중국으로 반환된 다음에는 이들을 통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도시가 되었다.(물론 이걸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개방의 증거로 채택하기도 한다)
반면 싱가포르는 범죄자와 해적의 소굴인 타락한 도시를 자애롭고 정의로운(?) 래이플스 경이 와서 계도하고 훈육하여 타락에서 구한(?) 도시다. 애시당초 이 도시는 영국인들의 훈육과 계도를 받았으며, 영국이 물러가자 자연스레 리콴유의 훈육과 계도를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한국인들이 싱가포르가 답답하다고 여기는 것은 한국이 기본적으로 홍콩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정자들이 늘 싱가포르를 모범적인 대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이상향이 싱가포르이기 때문이다. 즉 다스리는 자는 싱가포르를 꿈꾸는데 실제 사람들은 홍콩적으로 사는 괴리가 발생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따라서 이건 엄밀히 말해서 홍콩적인 자유가 아니다. 언제든지 훈육과 계도가 국가로부터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훈육과 계도가 성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리콴유를 비롯한 싱가포르의 지도자들은 엄격하게 훈육과 계도를 했지만 동시에 자신들도 그렇게 살았고, 철저하게 백성들에게 혜택을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권위를 획득했고, 세계적인 훈육국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는 그러라 하고 자기들은 엄격하게 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혜택을 자기들끼라 나누어 먹었다. 그러니 권위가 서지 않고 훈육이 먹히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몽둥이로 두드려 패서 훈육하는 것이다. 물론 백성들은 몽둥이가 보이지 않으면 당장 법을 어긴다. 그러니 한국적인 분방함을 홍콩적인 분방함과 혼동하면 안된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개방이 아니라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거나 편법을 쓰는 것, 한 마디로 무법천지에 불과하다. 이게 개방과 자유가 아니라는 증거는 한국인들이 가정에 돌아가서 아이나 부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당장에 답이 나온다. 홍콩이나 대만 사람들은 가정에서도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자유롭기는 하지만 일종의 전쟁터로서의 자유이며, 약탈의 자유다. 그 결과는 빈곤선 이하 인구가 15%라는 세계적(!)인 결과다. 참고로 중국은 10%, 말레이지아 5%, 대만은 1.2%다(대만과 우리의 국민소득이 거의 같기 때문에 빈곤층 인구비중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는 대만 하층보다 못사는 사람들이 열명에 하나라는 뜻).
그런데 왜 주재 교민들은 싱가포르가 답답하고, 한국이 그립다고 했을까?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은 대체로 금융계 종사자, 정유업계 종사자, IT종사자, 그리고 외교관들이다. 즉 한국은 이들에게는 자유롭고 재미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돈이 많아도 제약이 있는 싱가포르와 돈이 많아지면 그 제약을 무시해도 되는 한국, 그 차이인 것이다.

싱가포르는 유리병속의 행복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나라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들판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을 표현할 가장 적당한 말은 유리병속의 전쟁일 것이다. 싱가포르식 계도, 훈육 국가 모델을 고수하고 있는 이 나라는 유리병만 가져오고 행복은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유리병 속에서 죽기살기로 싸워서 경쟁해야 행복해진다고 하면서 유리병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었고, 빈부차를 확대시킨것,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들판위의 경쟁이었다. 경쟁은 경쟁대로 둔채로 국민을 다시 유리병속으로 몰아넣는 이 정부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투표가 던져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니, 교과부에 제출할 해외탐방 보고서 써야 하는데 내용이 왜 이래? 다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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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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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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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