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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파시즘 타령이니 한번 따져 보자

요즘 나꼼수 때문에 좌우 진영이 모두 어지럽다. 우파진영에서는 감히 자기들을 향해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다면서 저질방송이라고 부르며 분개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진영에서는 나꼼수 뿐 아니라 나꼼수에 열광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반지성주의" "노빠현상의 재현" "파시즘"이라는 담론이 난무하고 있다. 진중권은 "닥치고 정치"를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비유하고 있는듯 하다. 이제 김어준은 FROM좌빨 TO파시즘 이라는 좌우 정치 스펙트럼의 양 극단을 총 망라하는 정치이념의 전체집합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일단의 좌파지식인들은 사회과학을 모르는 어리석은 대중들을 닭이라 부르며, 그 대중들의 열광에게 "파시즘"이라는 사회과학 용어를 붙여주었다.
그런데 저 지식인들은 실제 사회과학자들은 파시즘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매우 꺼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파시즘을 정의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파시즘을 정의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번 살펴보자.

우선 파시즘의 기원에 대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담론은 비합리주의, 반이성주의, 반지성주의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게오르크 루카치가 "이성의 파괴"라는 저작을 통해 반동적인 낭만주의 사상이 어떻게 파괴적인 파시즘의 단초가 되었는지 역설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와 모더니즘(합리성에 기초한)적 질서의 답답함이 경제 위기 등과 맞물려 낭만적인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이성에 반감을 가지는 일단의 폭민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강한 반이성주의, 비합리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본능과 감정의 해방을 갈구한다. 따라서 이들은감정을 움직이는 적절한 상징과 이미지 조작을 통해 쉽게 정치적으로 집단동원된다. 이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이때 가장 잘 사용되는 상징조작의 소재는 국가나 민족이다. 그러고 보면 박정희도 국가와 민족을 어지간히 강조했다.
그러나 이 관점은 파시즘의 초동단계인 광범위한 대중운동(나치 돌격대로 대표되는)에 대해서는 그런데로 설명할 수 있으나, 이후 사회를 철저한 수용소 사회로 재구조화한(돌격대에서 ss로)과정이나 홀로코스트의 고도의 치밀함, 그리고 실제 파시즘 정권들은 한결같이 복고적이라기 보다는 기술지향적이었다는 점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즉 반지성주의, 반이성주의로 파시즘을 설명하는 것은 피상적이며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

파시즘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은 정신분석적 관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빌헬름 라이히다. 라히히는 파시즘 자체보다는 파시즘에 동원되는 사람들의 인성 형성에 촛점을 맞춘다. 그러한 권위주의적 인성은 바로 가부장적인 리비도의 억압을 통해 형성된다. 억압을 통해 형성된 권위추종적 대중들이 형성되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가부장의 역할을 하는 지도자에게, 더 넓은 권위인 국가나 민족에게 복종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허버트 마르쿠제나 에리히 프롬도 일부 수용하여 리비도의 억압과 강박증적 인성이 어떻게 권위에 굴종하는 1차원적 인간을 무더기로 양산하는지 비판한 바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파시즘을 자본의 비상관리체제로 바라본다. 대공황이 심화되면서 자본의 약한고리에 해당되는 국가들(식민지 부족국들)에서는 노동계급의 폭발을 억제하기 위해 이들에게 한면으로는 민족과 국가라는 열광의 대상을 주어 그 폭발적 에너지를 돌리며, 집단적인 희생양을 제공하여 그들의 불만을 전가시키며, 다른 면에서는 폭압적인 기구를 이용하여 소수화된 저항하는 노동계급을 분쇄하는 체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오늘날 실제 사료에 의해 거의 부정당하고 있다.

반면 하이에크는 파시즘을 철저히 독일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영국의 개인주의, 자연주의의 전통이 부족한 독일인들의 뿌리깊은 집산주의가 결국 파시즘으로(국가사회주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에게 사실상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질적 차이는 없다.

내기 취하고 있는 관점은 파시즘을 모더니티의 극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더니 일단의 사회학도들(학자는 아직 아닌)이 루카치, 만하임, 하이에크 등이 나치의 비이성적 광기를 비판했던 사례를 들먹이며 도대체 내가 학위를 어떻게 땄는지 신기하다며 입방정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입장은 나 혼자 생각이 아니라 아도르도,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아렌트가 가지고 있는 파시즘에 대한 관점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은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이다. 도구적 이성은 어떤 대상을 목적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조작해야 할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합리적인 추론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구적 이성은 대상을 표준화하며, 이는 결국 세계를 합리적 사고에 종속시키는 동일화로 발전하게 된다. 세계는 목적들의 관계가 아니라 무엇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사고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이를 위해 표준화된다. 특수성은 소멸된다. 그리고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모든 사람들은 아렌트의 용어로 표현하면 다만 "견본"으로 간주된다.

이 도구적 이성은 파시즘의 창안물이 아니다. 오히려 파시즘은 이 도구적 이성이 도달하게 될 종점이다. 도구적 이성은 사회가 조직되는 원리이며, 계몽의 소산이다. 각각의 인간들을 사회구성원이라는 하나의 견본으로 동일화 한다. 따라서 그 사회의 이름으로 개별 인간들이 조금 손상되어도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세계가 '관리된 세계'이며, 이 관리가 총체적이고 전면적으로 이루어질떄 그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아렌트 역시 이를 "개별성"의 소멸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개별적인 것들을 범주아래 환원시키는 사고방식은 철저히 계몽적인 사고방식이다. "유태인"이라고 범주화된 이상 아렌트와 아도르노 혹은 로스차일드의 차이는 의미가 없어진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나치의 수용소는 유태인들을 모두 벌거벗기고 삭발시켜 아무런 차별성 없는 한 무더기의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파시즘의 하수인들은 이들 개개인들의 차별성을 알 수 없었다. 그러자면 상상력과 감수성이 발동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도르노나 아렌트가 바라본 파시즘은 막스베버가 말한 "영혼없는 전문가"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그 외에도 파시즘을 규명하려는 관점들은 많다. 예컨대 빌프레도 파레토의 관점에서 파시즘은 엘리트 순환 주기 중에서 사자형 엘리트가 권력을 잡는 시기다. 역사는 파시즘과 자유주의를 오가는 시계추다. 하지만 이들 관점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제들이 있다. 따라서 이 공통의 전제들을 통해 우리는 파시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할 수 있다.

1) 일단의 불만에 가득한 조직되지 않은 대중들(모여는 있으나 고독한)

2) 이들이 동일성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상상된 공동체

3) 이들이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약속된 미래

4) 그 미래를 설명해주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론(그러나 합리적일 뿐 실증적이지는 않은)과 그 이론을 표현하는 미적 수단

이 중 핵심은 동일성을 느낄 공동체와 약속된 미래다. 이 두가지가 바로 대규모의 대중동원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동원된 대중들은 동일화 되기 때문에 개별성을 상실하며, 개별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자기들 반대편의 개개인들을 마구 공격할 수 있게된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다만 사악한 반대집단이라는 동일체의 부분들로만 간주되기 때문이다.

나는 파시즘 관련 이론들을 아무리 리뷰해 보아도 나꼼수를 통해 파시즘의 전조를 읽어낸다는 건 오버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꼼수는 기본적으로 어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철학은 "좌든 우든 좋은데, 적어도 기본은 된 지도자를 뽑자"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의 추악함을 폭로하자, 폭로하되 비분강개 하지 말고 조롱하자" 정도다. 그들이 어떤 환상적인 미래와 그 로드맵을 제시한 적이 있는가? 물론 나중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온 팩트만 보자.

또 어느 트위터리안 말대로 나꼼수가 환빠처럼 위대한 민족을 내세우길 했나, 아니면 일본인 중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기를 했나? 혹은 그들이 어떤 동일성의 위험을 보여준 적 있는가? 물론 우리편이니까 봐주자 논리를 가지고 그렇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철저히 대의제의 틀 안에서 그럴 뿐이다. 뭉치자, 몰려가자 청와대로 우리난 하나다 아니다. 그들의 주장의 최대한은 항상 투표하자다. 투표 외의 나머지 영역은 김어준 말대로 "댁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 나는 나꼼수 팀에게서 하나된 단결에 대한 강조 따위를 들어본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김어준의 성격과 행동방식 자체가 파시즘적 인간형과는 상극에 가깝다.진중권 말대로 막장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적 인간은 뭔가 고결한 이상에 사로잡혀있다. 그래서 그 이상을 가로막는 자는 누구나 적으로 간주하여 무참히 파괴한다. 고결한 이상과 나꼼수? 영 거리가 멀다.

차라리 나꼼수보다는 월드컵 응원전이 파시즘의 전조를 더 잘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 나는 월드컵 응원전의 파시즘적 위험성을 경고하다가 블로그가 폭파될뻔 한 적도 있다. 저 용감한 반 파시즘 전사들은 그럴떈 꼭 침묵들을 지키거나 같이 축구얘기 했다. 그래서 파시즘이 무서운거다.

물론 나꼼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에 대해서는 누구나 문제제기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제기는 그 이야기들에 대한 반대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루어져야지, 저 말을 믿는 너희들은 저질, 이러면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하물며 이렇게 정의내리기 어렵고 뜻도 많은 파시즘이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할 일은 더욱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파시즘은 계몽의 변증법이 도달한 정점이기 때문에 "계몽"을 내세워서 "감정"을 폄하하는 논객들이 도리어 파시즘에 한 발 더 다가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급히 작성한 글이라 인용이나 내용이 다소 부정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파시즘을 정의내리기 어렵다. 누구를 파시즘으로 몰아붙이는건 따라서 더욱 위험하다. 나꼼수 현상을 파시즘으로 보기는 어렵다. " 정도로 요약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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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