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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재개발에 또 속으면 머리가 장식품이란 뜻

아주 간단하게 쓰겠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꼭 나오는 메뉴가 재건축, 도시개발 하여간 뭐 그런 것들입니다. 그럼 꼭 돈 번것 같고, 돈 벌것 같고, 그래서 몰표를 받아가죠. 돈 벌게 해준다는 후보를 찍는 것은 민주주의를 망치는 길이라는 도덕 설교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땅 파헤쳐서 돈 벌게 해준다는 후보를 찍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 것만은 분명히 말해야겠습니다.

우리 지역이 졸라 후진 동네라고 합시다(음. 난 송파 살지만...뉴또라이들은 또 내가 송파 산다고 좌빨 자격 없네 어쩌네 하겠지...). 그런데 가카 혹은 가카의 빙의가 나타나서 우리 동네를 뉴타운으로 고쳤습니다. 중간 과정 생략하고 좌우가 삐까번쩍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2억짜리 우리집 7억 되었습니다. 와, 5억 벌었다???? 원 천만에요. 한 푼도 번 거 없습니다.
왜냐하면 2억짜리 집이 7억이 되어도 그 돈이 번것이 되려면 집을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을 팔기 전에는 그냥 부동산 시세표상의 수치만 바뀐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집을 팔면, 노숙을 할 수는 없으니 집을 사야 합니다. 그런데 일단 집을 팔면 살던 동네에선 다시 살 수 없습니다. 모두 올라서 7억이 되어 있을테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7억이 된 집을 팔고 2,3억짜리 집을 사서 들어가야 돈을 번게 될텐데, 그 동안 우리 동네만 뉴타운 한게 아니라 그 정도로 저렴한 집은 정말 정말 후진 동네나 경기 외곽 아니면 찾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아주 부동산 꾼이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역고착성이 강해서 그 지역을 잘 떠나지 않습니다(저만 해도 1977년 잠실동, 1979년 역삼동, 1982년 도곡동, 1989년 가락동 이렇게 맴돌고 있습니다. 반경 5kM에서 맴맴)

그러니 결국 집값은 7억이 되었지만 그건 그냥 기분만 좋을 뿐입니다. 사실은 손해입니다. 공연히 세금이나 의료보험료 더 내고, 재개발 되는 동안의 전세비용, 건축비 까먹고 하니 말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자산이 2억이라고 생각할때 보다 7억이라고 생각할 때 씀씀이가 커지는 법이니 이래저래 손해일 뿐입니다.

그럼 재건축, 뉴타운 하면 누가 돈 버나요? 돈을 버니까 자꾸 일을 벌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사는 집 외에 집 한채 더 있는 사람이 법니다. 혹은 자산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2/3 이하인 사람이 법니다. 예컨대 내가 송파에 5억짜리 집에 살고 있는데, 여윳돈이 2억이 남아서 그걸로 졸라 후진동네 아파트를 또 한 채 샀습니다. 그런데 뉴타운 개발되서 7억되었습니다. 그럼 난 가차없이 그 집을 팔던가(아, 그럼 양도세가...), 그걸 담보로 돈을 빌려서 또 굴릴 겁니다.

그러니 사는 집 외에 집이 더 있는 사람은 재건축, 뉴타운 해 준다는 후보 찍으십시오. 누가 말리겠습니까? 정치학자들도 그걸 계급투표라 해서 당연한 결과로 봅니다. 하지만 집 한채 있거나 혹은 전세 사시는 분들은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덕분에 당선되었으니까 여러분 생각해 주는 정책 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는 거 보는 것도 정말 짜증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국영수 말고 사회공부 열심히 시키십시오. 지금 고등학교 1학년에서 사회과목이 사라집니다. 균형을 맞추느라 과학과목도 사라지죠. 원래 목적은 사회 퇴출일 겁니다. 가카가 왜 이렇게 사회과목 퇴출에 목을 매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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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