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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중앙대 겸임교수 해임되었을 때 썼던 위로글

이제는 진중권과 완전히 결별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09년 8월, 진중권이 이 학교, 저 학교에서 강의 자리 상실할때 나름 위로한다고 썼던 글을 다시 들쳐 보았습니다. 나는 나름 상당히 공들여 쓴 글이고, 또 내 지위가 진중권이 무시할만한 지위가 아닌데(사실 학위는 내가 더 높고, 논문 편수도 더 많습니다), 아무 답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그떄 중앙대학에서 진중권의 겸임교수 자격이 없다고 한 것은 법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진중권은 그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항변했고, 물론 저도 거기에 동의했고, 많은 사람들도 거기 동의했습니다. 진중권이 닭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이 말입니다. 게다가 날림의 증거가 명백했던 그래서 황지우 총장의 징계 빌미가 된 소위 통섭프로젝트 부분도 정치적 의도를 들먹이며 반발했었고, 물론 닭들은 그런 그를 옹호했었죠.

이하 2009년에 제가 나름 진중권을 위로하며 썼던 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요건 정규직),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요건 비정규직) 사람입니다. 사회적인 처지(겸임)나 정치적 성향이나 대략 선생님과는 비슷하고 그래서 작금의 사태가 전혀 남의 일 같지 않아 이렇게 글자 날립니다. 제가 뭐 유명 인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변듣보 보다는 가방끈이나 지적 용량이나 모두 좀 나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으니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 나는 애초에 진교수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중앙대 겸임교수 해촉되었다는 소식에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같은 이유 때문에 해촉이 가능한 그 사실은 정말 *같은 일이지만, 선생님 개인에게는 또 진보적인 사회운동 전체를 위해서는 오히려 플러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선생님께서 촛불을 계기로 거의 대중 스타(?)로 떠오를때도 칼라TV리포터 진중권, 혹은 진보신당 진중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면 했습니다면 시종일관 언론에서 붙여주는 타이들은 진중권 중앙대교수였습니다. 저는 그 명명법에서 어떤 권력의 지도를 읽었습니다. 정부에 빌붙던, 정부에 대들던 건에 적어도 "대학 교수"는 되어야 한다는, 겸임교수라도 교수가 정부를 비판해야 대중들이 듣는 척이라도 할 것이라는 미시권력의 작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경석이가 선생님께 수모를 당하면서도 꼬박꼬박 "진교수께서~" 이런 식으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투쟁은 될지언정, 이런 정부를 계속 생산, 재생산하는 지배의 구조와의 투쟁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철저히 재야인사(!)가 된 진중권 선생님은 어쩌면 제 자리를 찾으신 것입니다.

2. 이제 지식을 독점하고 담론을 조작하는 대학 시스템과의 투쟁입니다.

대학은 이미 지식의 해방과 자유의 기지였던 그 출생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자본의 R&D기관이자 지식인들을 양순하게 만들기 위한 권력기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전교조 활동가인 저는 과거 전교조 맹렬활동가였다가 사범대, 교대 교수가 되면서 정 반대의 길을 가게 된 사람들을 몇 알고 있습니다. 주사파식으로 사람의 문제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체제의 문제이며 대학의 문제입니다. 저는 몇 차례 교수가 될 기회를 날렸습니다. 그 내부의 교묘한 권력구조에 동화될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은사님은 "일단 동화된 척이라도 하고, 들어와서 대학을 개혁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게 안되는데 도리 없더군요. 그리고 대학에 어플라이를 넣고 심사를 받는 기간동안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쁜 의미에서 정치적이 되더군요. 그러면서 이 시스템이 사람 잡을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진선생님 세대까지는 "동화된 척"하고 들어가서 본색을 드러낼수나 있었지만, 이제는 "동화된 척"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동화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식과 담론을 독점하고 연구자들을 위계적으로 통치하는 권력의 중심으로서 대학은 자연히 자본과 공모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태생상 자본과 공모하기 어려운 학문분과는 이른바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대학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밀려나가게 되는 연구자, 연구분과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 테두리 안에 남기 위해 투쟁할 것인가, 아니면 그 테두리 밖에서 새로운 지식의 권력을 세우고 거점을 마련할 것인가? 즉 대학 시스템과 투쟁할 것인가?


3. 기존의 대학 학과들이 더 센지, 대학 밖의 진중권이 더 센지 보여 주십시오.

개인적으로 저는 기존의 미학과, 문학과보다 야인 진중권의 파워가 더 강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그것을 대학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이 아니라 선생님의 주전공인 문학비평과 미학에서 말입니다. 기존 미학과 문학과 교수들, 학회들의 천마디 보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실제 문학도, 미학도들에게 더 강한 임팩트를 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구자들의 조직, 학회, 네트워크,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습공동체가 형성되어 대학들을 무색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즉, 수도원에 대항하여 자유로운 지식공동체 대학이 세워졌듯이 이제는 대학에 대항하여 자유로운 새로운 지식공동체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그럴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감히 판단합니다.

4. 짐멜이나 루카치를 대신하여 교수가 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학자들은 대개 대학 밖에서 활동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학 안에서 활동하더라도 뒤르껨이나 베버처럼 자기 학문분야의 정당성을 지켜내기 위해 고된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순풍에 돛단듯 대학에 진출해서 학장도 하고 했던 그런 교수들은 거의 우리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게오르크 짐멜은 수 많은 대학에 지원했지만 번번히 미끄러지고 거의 평생을 사강사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짐멜을 떨어뜨리고 교수가 된 사람이 누군지는 아무도 관심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루카치를 대신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가 된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다만 그 시절 루카치가 쓴 하이델베르크 미학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진선생님께서 이렇게 대학 시스템에게 통쾌하게 엿을 먹일수 있는 그런 활동을 하셨으면 합니다. 독설이 아니라 학문적 성과로!

그럼 건승하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추신: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까간의 미학에 대한 입장이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스스로 좀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을 몇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아, 이 깔대기). 그리고 내가 진중권 입장이라면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대략 몇가지 눈에 거슬렸을 것 같습니다. 인신공격 같아 보여서 좀 주저되지만, 저 정도 위치면 거의 공인이라 할 수 있으니 일종의 공익적인 알권리 차원에서 그냥 써 봅니다. 그리고 솔직히 몹시 화가난 상태고요. 눈 앞에 있으면 한대 쳤을 거라고요.

1) 저는 저 글에서 교수라는 칭호를 기꺼이 털어버리라고 했는데 그게 듣기 싫었을지 모릅니다. 가만 보면 이 분 교수라는 말 듣는 거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일전에 진보신당 게시판에서도 진중권 교수라 부르지 말고 진중권 당원이라 불러야 한다. 우린 모두 당원이다 어쩌구 하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거긴 절대 댓글 안달더라고요. 그런데 솔까말 진중권이 중앙대 교수면, 나는 서울대 교수입니다. 현직교사니 겸임에 정말 해당되고 정식 학위도 있는. 하지만 견강부회죠. 그래서 전 그런 칭호 결코 쓰지 않았습니다. 아, 그나마 지금은 비정규직법 때문에 짤렸습니다.

2) 교수라는 칭호에 애착을 가진 사람에게 그만 대학 밖에서 대학체제와 싸우고, 대학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라고 했으니, 한마디로 투쟁을 요구했으니 싫을만도 했을 것 같습니다. 논평과 투쟁은 별개의 일이죠. 게다가 투쟁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3) 독설이 아니라 학문적 성과로 엿을 먹이기를 희망했으니 정말 싫었을 것 같습니다. 학문적 성과를 내라고 하다니! 그 어려운 것을! 논문검색 사이트 http://kiss.kstudy.com 에 가서 진중권이라고 쳐 보세요. 논문 몇 편 나오나. 그리고 혹시 제 실명 아시는 분은 같은 사이트에서 제 이름 쳐 보세요. 아, 단행본이 있다고요? 단행본이야 출판사 편집자하고만 이야기 잘 되면 나가는거죠. 하지만 학술지 논문은 전문연구자들의 동료평가를 통과해야 게재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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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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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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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