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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10 -교사가 되면 좋은점 5

여가와 일의 만남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이성이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실천이성과 이론이성. 물론 실천이성과 이론이성은 완전히 분리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둘이 상호 조화를 이룸으로써 이성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생각은 훗날 칸트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명령하는 실천이성이 실제로는 이론적 지식에 관여하는 순수이성과 한 뿌리임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이성이 상호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두 이성에서 비롯되는 행위들이 치우침 없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치우침 없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가 바로 선한 상태이며, 인간은 선해지면 행복해집니다. 따라서 인간은 행복해지려면 실천이성에서 비롯되는 행위와 이론이성에서 비롯되는 행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인생은 고달픕니다.

그럼 어떤 균형이 필요한 것일까요? 사적인: 공공의 삶, 여가생활: 노동, 실용적인 삶: 고상한 삶 간의 균형입니다. 조금 우스운 표현이 되겠지만 정치·경제: 사회·문화 의 균형이라고 고등학교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정치·경제 축으로 치우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매우 몰취미하고 매력없는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자신도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진 것은 많고 지위는 높을지 몰라도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자신이 보다 고결한 존재로 진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후자에 치우친 사람은 얼른 보면 고상하고 멋진 삶을 사는 것 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최소한의 생계문제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답답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자가 말한 대로 곳간이 비어서는 예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삶이란 노동과 취미, 일과 여가가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계급의 분리, 그리고 계급 착취의 역사는 이런 삶의 균형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결과 여가를 즐기고, 창조적인 삶을 즐기는 것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 되었고, 단순하고 지루한 노동은 피지배계급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 고대시대부터의 악습은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동을 인간의 결정적인 본질로 파악하고 있는 마르크스조차 그가 꿈꾸는 이상향을 묘사할 때는 하루 종일 여가생활 하는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저 유명한 낚시꾼, 사냥꾼, 문학비평가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상향이 실제로 놀기만 하는 세상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보는것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마치 노동자로 가득한 나라를 세우려는 것으로 착각하는 만큼이나 크나큰 오해입니다. 마르크스의 이상향은 여가생활과 노동이 하나가 되는, 즉 여가로서 노동을 하는 그런 삶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사회 혁명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다는, 더더군다나 생산수단의 공유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무리 보아도 별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공장이 사장의 소유든 혹은 국가의 소유든 간에 그것이 공장인 한 노동 그 자체의 성격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종류, 노동이 수행되는 방식입니다. 노동이 수행되는 방식이란 그 일 전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의 문제이지 일터의 주인이 사유인가 공유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굳이 주인을 따진다면 일터,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니라 노동 그 자체의 통제권의 문제입니다. 즉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을 통제하는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일에게 종속되어 끌려다니기만 합니다.

자신의 일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그 일이 즐겁고 기쁨을 주고, 또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치있다고 여기기에 그 일을 합니다. 이러한 순수한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다면 대학로 소극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벌이도 안 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연극인들의 삶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일의 주인이 되는 대신, 안정된 임금을 기회비용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사는 자신의 일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대단히 드문 직업입니다. 물론 이것이 교사에게 당연한 특권으로서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연한 틈새입니다. 사실 서류상으로 한국의 교사는 이런 자율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제도 하나하나는 마치 콘베이어 벨트처럼 교사의 일을 세세하게 규제하고자 합니다. 애초에 공교육의 교사란 학생들을 현 체제의 순종적인 종으로 키우기 위한 거대한 체계, 재생산 체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체계를 지배하는 집단은 교사를 스스로 기획하고, 구상하고, 집행할 수 있는 독자적인 지식인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사는 소단원 단위까지 상세하게 규정된 교육과정, 그리고 그 보다 더 상세한 세부사항까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교과서, 그리고 교사가 이 교과서의 내용을 절대 넘어서지 못하게 서로를 얽어매게 만드는 일제식 정기고사, 표준화 학력 검사 등을 통해 거미줄처럼 매여있는 존재입니다. 이 거미줄 속에서 교사는 이미 만들어지고 구조화된 교육내용을 이민 만들어지고 훈련된 교수-학습 방법 패키지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단순 노동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사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 즉 교실입니다. 교실은 지극히 자유로운 공간이며 교사에게 전적으로 주어진 공간입니다. 국가 교육과정이 무엇이 되었든, 그리고 행정 규제가 무엇이 되었든 최종적으로 교육이 행해지는 곳은 교실이며 그곳에서 학생과 교사는 재료와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만납니다. 이 인간대 인간의 만남은 자유의 시간일 수 밖에 없으며,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시간이며, 간섭한다 해서 간섭한 자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되지도 않는 시간입니다.

실제로 교육에 대한 그 어떠한 행정적 규제나 교육개혁도 -그것이 진보적이든 반동적이든 간에- 성공한 사례가 드문 까닭은, 결국 교육과정의 최종 단계는 살아있는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 관계 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문서상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실제의 교육과정이 따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교사가 모두 n명이라고 합시다. 또 학생이 모두 k명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교육과정이 고려해야 하는 교육 상황은 모두 n×k 개가 됩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엄청난 숫자일지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상황에 맞는 엄청나게 많은 교육과정을 국가나 지방 교육청이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또 개발한다 할지라도 그게 그렇게 집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통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어쩔수 없이 이 부분을 교사의 재량으로 맡겨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교사는 문서상으로는 교육과정의 최 말단 행위자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교육과정의 창조자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야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개발한 뒤 그게 전국 모든 교실에서 똑 같이 행해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한대로 교사가 수행하고 있는지 각종 행정보고, 장학 등을 통해서 통제하려 할 겁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행정보고야 서류만 갖춰서 내면 그만입니다. 장학이야 1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결국 교육활동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부분인 교실에서의 실제 상황은 매우 드넓은 재량 영역으로 남게 됩니다. 문서상으로는 구상자가 아니라 단순 집행자에 불과한, 즉 노동자에 불과한 교사가 실제로는 구상과 실행을 모두 감당하는 독립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교사는 교육과정, 교과서를 정확하게 따라가면서 단순 노동을 할 것인지, 아니면 교실 사정에 따라 이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나름의 수업을 기획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 중 전자가 훨씬 쉽습니다. 하지만 후자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쉬운 쪽과 재미있는 쪽 중 어느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은 쉬운쪽이 아니라 재미있는 쪽을 선호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이징하는 인간을 유희하는 동물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만약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여러분도 필경 역시 쉬운쪽 보다는 어렵더라도 재미있는 쪽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쉬운 쪽을 선택했다면 명심하십시오. 쉽게 가는 수업을 선택한 여러분은 반드시 교실 밖에서, 교육활동이 아닌 곳에서라도 뭔가 재미있는 거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너무 길고, 지겹고,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실 밖에서 재밋거리를 찾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활동이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에서의 시간을 단지 쉽게 돈 버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그런 인생이 즐거울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장 이상적인 선택은 역시 힘들고 어렵더라도 교실에서 재미있는 삶을 꾸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오히려 두려워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홀로 교실에 던져진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학생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사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인위적인 갑옷을 뒤집어 씁니다. 그 갑옷에는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신의 성격(퍼스널리티)이라는 갑옷도 있겠지만, 이 보다는 교육과정, 교과서, 각종 규정과 절차, 문화적·인습적 도구 등이 총동원됩니다. 이것들은 교사의 인간적인 참모습과 학생들 사이를 갈라놓는 아주 높고 단단한 장벽이 됩니다.

사실 그 두려움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는 교사도 학생들 하나 하나와 눈을 맞추는 것을 어려워 합니다. 학생들과 눈을 맞추지 않고서 다양한 수업을 나름대로 만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만들어진 수업, 이미 만들어진 패키지를 재생하는 것, 즉 스스로 수업 기계가 되어버리는 것, 수업 기계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자신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불안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학생들과 인간대 인간으로 소통하는 것 처럼 어렵고 두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렵냐고요? 세계적인 대안학교 모델로 불리는 프레네 학교의 교수법이 별 특별한 것 없이 그저 학생들과 개별적으로 인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게 그 증거입니다. 요즘 너도 나도 부러워하는 핀란드의 교육도 별거 없습니다. 교사와 학생의 면대면 관계가 강화된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과 내면과 내면으로 마주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으로서 서는 것이 두렵다 하여 특별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교육자도 교육받아야 하며”, 만약 우리 나라 교육에 문제가 많다면, 여러분 역시 영락없이 그 문제 많은 교육의 소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수줍고 문제 많은 교사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런 여러분을 바꾸어 나가야 하며, 그러면서 문제 많은 교육을 바람직한 교육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가 되어 있는 교사는 교실 안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성장을 즐기는 그런 시간이 될 것입니다. 힘들지만 재미있는 그런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그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교사는 교실 밖에서도 그런 시간과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런 교사들이라면 교실 밖에서는 같은 교육적 고민을 가진 교육자들과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이며, 또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과 지식을 교류하면서 자신의 공통성을 확장시켜나갈 것입니다. 이런 일들 역시 그 시작은 두렵고, 수줍음의 벽은 두텁습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고 나서면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될 것이며, 이런 즐거움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주색잡기나 수다떨기 따위에 허비되는 시간이 아까워서 몸서리를 치게 될 것입니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이런 경험을 표현하기에 참으로 적절한 FLOW라는 개념을 소개하였습니다. 이미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시피 FLOW를 많이 느끼는 사람은 행복해질 가능성, 즉 최적경험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 FLOW는 편안하고 쉬운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닙니다. 칙센트미하이는 FLOW를 다음과 같은 그래프로 표현하였습니다. 즉 이는 쉽게 도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그런 과제를 지속적으로 이행하면서 느끼는 재미요 행복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을 자주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더더군다나 일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직업은 정말 몇 개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일이 끝난 다음부터야 비로소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별도의 활동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노동자들에게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한 시간은 너무 부족하며, 또 일 끝난 다음에는 그런 활동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지쳐 있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TV, 게임, 음주, 노래방, 수다 따위의 노력없이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활동에 그 나마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체력을 소진하면서 점점 퇴행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런 퇴행적인 활동을 하면 할수록 그들은 능동적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감퇴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영역도 축소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급한 오락물이 아니면 아예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무의미하고, 한탄스러우며, 짧습니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능동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할 능력이 있으며, 이런 능력을 발휘하면 발휘할수록 인생은 풍성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엄청난 부를 누림에도 불구하고 허무감과 고독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자신을 망치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또 반면에 평생 한 평 반의 방속에서만 살았던 스피노자가 같은 시간 베르사이유 궁전에 살았던 루이 14세보다 결코 더 가난하게 살지 않았다는 말도 듣습니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교사라는 자리는 능동적으로 즐기는 재미있는 삶과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상당히 귀한 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여가와 일이 하나가 되는 그런 직업입니다. 게다가 그야말로 자기 나름으로 쓸 수 있는 절대적인 여가시간마저 많습니다. 교사들은 이런 여가시간과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간동안 자신의 지성과 감수성을 계속해서 계발하여 즐거움을 산출하는 능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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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