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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빠가 아니면서도 주류 논객을 공격한 이유

최근 2개월간의 글을 보니 "무슨 놈의 교육창고에 교육얘기보다 진보 논객 까는 글이 더 많은가? 이건 비정상이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무래도 너무 흥분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보논객들의 그 냉소적인 태도가 하필 곽노현 교육감과 연결되어서 교육운동가로서 많이 격앙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제하겠습니다. 다만 그 격앙의 원인을 좀 성찰해 보겠습니다.

1. 곽노현 기자회견 직후 스프링처럼 취어나온 인기 논객 두사람의 논평

"선의로 2억을 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좆이라도 빨겠다." 이걸 비판이라고 하는 걸까요? 이런 식의 말을 무상급식 주민투표때까지만 해도 오세훈 사퇴때 까지만 해도 곽노현 만세를 불렀을 사람의 입에서 듣는다는 것이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하지만 이자는 뭐, 원래 자기는 대단한 줄 알지만 그다지 지성적인 인물로 평가는 못 받는 자니 그렇다 치고, 그 다음은 유명한 진중권의 논평들. 나는 곽감을 까대는 이 논평들 속에 교육에 대한 고려는 일언반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아, 서울시장 선거 좆망했다. 곽노현 빨리 꺼져." 이런 초조함만 느껴졌을 뿐입니다. 심지어 "진보의 무기는 도덕성인데..." 운운하는 진중권의 논리에서 "도구적 이성"의 폭거를 느꼈습니다. 파시즘의 필수조건이죠. "Die Gedanken sind frei"를 자기 주제가라며 부르던 사람의 말 같지가 않았습니다.

2. 나꼼수의 선동 때문에 곽감을 까던 언론이 돌아섰다는 주장

곽교육감 기자회견이 있었던 것은 8월 28일이며, 나꼼수 곽노현편이 릴리즈된것은 8월 30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8월 28일 심야-29일 새벽 사이에 네티즌들의 마음은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거대한 역풍이 들이 닥쳤습니다. 심지어 이 국면은 "곽노현이 아니라 진보논객, 민주당, 한겨레, 경향의 위기"라고 지적한 내 포스팅이 올라간 것도 8월29일입니다. 이 흐름에는 위대한 파워 블로거인 나, 그리고 YoToNews, 서영석씨, 노루귀, 김빙삼 등의 파워 트위터리안들, 위키트리의 기자들, 아고라 논객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8월 29일에는 곽감 구하기에 나서지 않는 민주당과 요실검 빨대짓에 동참하고 있는 한겨레, 경향에 대한 불만이 끓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눈치 빠른 조국교수는 재빨리 사퇴요구에서 관망쪽으로 포지션을 바꾸었습니다.
한겨레 경향마저 편을 들어주지 않으니 열받은 대중들이 나꼼수에 몰려든 것입니다. 나꼼수가 대중을 선동해서 곽감 지지로 돌려 세운것이 아니고요. 그런데 나꼼수 때문에 대중들이 선동되어서 확 바뀌었다는 진중권의 주장에는 자기, 그리고 적어도 김어준 정도 외에는 여론을 조성할 수 없다는 지독한 오만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팍 돌았습니다.

3. 교육자로서 간과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의 상처

이게 제일 결정적입니다. 사실 나는 나꼼수 빠가 아닙니다. 나는 애당초 빠하고는 거리가 먼 삐딱하고 오만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꼼수 출연진들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여기 출연한 사람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지금 시점이 이들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것을 직감하고 우려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이제 권력이 되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그런만큼 이들을 진보진영에서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권력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이들은 한나라당과 현정부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터이니, 굳이 진보진영이 나서서 견제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현정권이 나서서 잔인하고 야비하게 견제할 겁니다. 이건 나도 알고 열광하는 대중들도 알며, 나꼼수 4인방도 압니다. 나꼼수는 절대 가카 퇴임때까지 방송되지 못하며, 4인방의 마지막은 구치소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진보진영에서 그들에게 해야 할 것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의 보위이며, 그들이 폭로를 하면서 슬기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꼼수를 가르쳐주고, 때로는 조금 자제시키는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주류 진보논객들이 견제랍시고 던진 말들은 그 수준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정권이 탄압하기 전에 내가 먼저 너희를 부셔주마 하고 던진 비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비수에 맞고 피흘리며 상처받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교사이며 또 대학교 비정규교원입니다(나는 누구처럼 굳이 교수라는 칭호에 집착 안합니다). 그리고 자조적으로 나는 실업자 제조기라고 말합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결국 몇년 뒤에 실업자가 되니 말입니다. 영민하고 발측한 사고력을 가졌던 제자가 결국 대학 졸업할때 되면 7급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슬픈 일입니다. 심지어 서울대학에서 가르쳤던 제자들도 예외없이 졸업하면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때 나의 무력함과 억하심정을 적었던 포스팅이 여기 있습니다. http://hagi87.egloos.com/1798196

그런데 나꼼수가 나왔고, 젊은이들이 즐거워했고 통쾌해 했습니다. 내가 감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 것입니다. "찌질하게 짜지 말고, 그럼 세상을 바꿔! 정치에 관심 좀 가지란 말이야. 처세술 책만 보지 말고." 이 말은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들에게 진보진영이 수없이 반복했던 교훈입니다. 하지만 이 교훈을 이렇게 통쾌하고 즐겁게 직설적으로 내던진 그리고 성공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우리 젊은이들이 개인의 삶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라도 공동체의 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이보다 효과적으로 깨우쳐 주었나요? 교육자로서 이 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었을까요?

그런데 저 진보 논객들은 무슨 짓을 했나요? "무식한 너희들"이라 불렀고 "닭"이라 불렀고, 심지어는 "파시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이명박과 이 정권 그리고 1%에게 핍박당하고 무시당한 우리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들 편이라고 믿었던 자들에게 닭이라 불리고 파시스트라 불려야 합니까? 나는 젊은이들이 깊이 상처받았음을 느꼈습니다. 정말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억울한데 하소연이 안되는, 저 소위 인문학 공부한 것들의 현란한 글발, 말발에 눌려 뭐라 대꾸도 못하는 억울함.
나는 이것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나꼼수 콘서트에 가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객들의 대부분이 젊은이였다는 것, 특히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 소위 골수 운동권, 혹은 깃발들고 집회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처음 세상일에 관심을 가졌고, 뭔가 해 보고 싶었고, 자기들을 위해 말해주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냄으로써 그 일을 시작한 그런 여린 영혼들이었습니다. 비록 내가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지만(어쩌면 그 중에 직접 가르쳤던 젊은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나의 제자들과 같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저 진보라 불리는 자들은 적들에게도 던져보지 않은 무시무시한 말의 펀치와 비수를 융단처럼 퍼부었습니다. 나꼼수 듣고 세상의 부당함에 분노를 느껴 처음으로 투표를 했다며 나꼼수를 옹호하는 젊은이에게 "네, 그래 겨우 투표요? 입진보도 투표는 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진보논객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네, 이번에는 나꼼수 듣고 투표지만, 다음에는 스스로 판단해서 투표도 하고 더 큰 참여도 하세요" 이렇게 말해야 진보이며, 논객이며, 더군다나 나이 한참 더 많은 선배이며 어른이 아닐까요?

그래서 나는 상처받고 당혹스러워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닭도 아니고 파시스트도 아니고, 그들은 어리석지도 않음을,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음을 저 잔인한 진보 꼰대들을 대신해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최근 논객과 나꼼수 관련 포스팅을 한 까닭이니, 공연히 내 글을 진중권 등에게 리트윗하는 행동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읽고 위안을 받았으면 그걸로 족하니까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물론 그러지는 않겠지만 나꼼수라는 하나의 빨대에 의존하는 위험한 일은 하지 마시고, 널리 보고 두루 읽으면서 다양한 정보를 스스로 수집하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꼼수가 정말 "아닌 말"을 하면 그것을 비판하고 교정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물론 냉소와 비웃음이 아니라 존중하는 말로요. 그래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정보를 해석하고 스스로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되면 나꼼수는 소멸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나꼼수가 없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이제 나의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날선 글은 자제하고, 다시 교육, 음악, 예술에 대한 포스팅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너무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논객들은 어떻게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분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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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