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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노리는 파시즘의 음험한 눈초리


한때 진중권과 허지웅이 나꼼수를 들어 파시즘을 우려하는 한바탕의 코메디를 펼친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틀리다. 파시즘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은 옳았지만, 그 대상이 틀렸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이 좌파를 지향한 경우는 찾기 어렵고, 또 웃음을 지향한 경우는 더욱 없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완전 헛다리 짚었다. 파시즘은 통상 위대한 전체를 지향하며, 항상 숭고함과 비장미를 드러내어 대중을 압도시킨다. 바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가카와 퍼런당이 동반 침몰하려는 상황에서 위기감을 넘어 비장감마저 감도는 조중동이 바로 예상되는 주역들이다.

파시즘은 물리적 폭압이 아니라 대중의 일체화된 정신을 통한 자발적인 열광과 복종을 획책한다. 폭력으로 몸은 지배하나 정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은 파시즘의 파 축에도 못낀다. 그건 그냥 전제정이다. 정신을 지배하고자 하는 파시즘은 당연히 언론과 교육을 틀어쥐려고 한다. 이 정권이 집권 초기부터 집요하게 언론을 틀어쥐고, 전교조를 탄압한 것은 이들이 적어도 좌파 지식인들보다는 파시즘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말기가 되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파시즘을 갈망하더라도 불가능한 이유들이 있다. 그건 별개의 주제고)

그들은 언론을 철저히 틀어쥐는데는 성공했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방송사 사장 하나 바뀌자 방송국 기조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기자들은 전부 정신분열자인가? 하지만 교육은 쉽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전교조는 언론노조보다 훨씬 완강하고 집요했다. 물론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데스크만 틀어잡으면 되는 언론사와 달리 통제하기가 쉽지도 않다. 아무리 교육과정을 바꾸고 교장들을 쪼아도,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하지 않는 다음에야 교사들이 뭘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최근 나꼼수는 그들이 틀어쥔 언론망 전체를 볍진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요일간지와 방송사를 다 움켜쥐었는데, 이걸 다 긁어 모아도 해적방송 하나만큼의 위력도 안되는 지경이니 정말 한심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남은것은 교육이다. 그런데 어떻게 학교를 숨쉴틈 없이 통제하겠는가? 아, 이들이 묘수를 찾아내었다. 나꼼수가 가카의 치부를 들춰낸다면, 학생들의 몰래녹취로 교사들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들은 성공했다. 몇몇 교사들이 다소 편향된 수업을 진행한 부분이 있었고, 이걸 언론사는 재빨리 받아서 대서특필했고, 그러자 보수단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교사들의 발언을 통제해야 한다고 나섰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하는 교사들은 정신질환자일지 모르니 정신병 검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셸푸코가 정신병원=감옥=학교 의 동형성에 집착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기사 몇 개 인용해 보겠다.

"조선일보|김연주 기자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정치인 등에게 심한 욕설을 하고 비교육적 막말을 하는 교사가 속출하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런 교사들은 평소에 정치·사회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표출을 못하다가 본인이 어떤 말을 하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말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훌륭하다. 기껏 교육관료 나부랭이가 이제 정신분석까지 하고, 그걸 또 기사라고 인용한다).... 실제 K고 H 교사는 "평소에도 학생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또 화를 참지 못해 하게 된다"고 했다(이거 완전 미친 사람으로 몰고 있다.) 윤대현 서울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교사는 사회규범과 일치해 행동하도록 훈련된 사람들인데, 규범적으로 억압당하다 보니 일부 교사에게서 막말이나 심한 욕설 등이 터져나오는 것이라며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교사는 충동 조절이 안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총 “교육청에 처벌 요청” [중앙일보 김민상]
수업시간에 교사들이 특정인을 비방하고 편향된 이념을 강조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수업을 들은 학생이 문제 발언을 녹음해 인터넷에 폭로하고 있지만 교사들의 편향된 발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교육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청에 진상을 파악해 책임을 묻도록 요구했다. 교육청도 실태 파악에 나섰다."

나도 처음에는 그 교사가 무리한 짓을 했고, 학생이 듣다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녹음을 해서 알렸나 보다 했다. 사실 나는 교사가 수업시간에 정치적으로 치우친 발언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충분히 반론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사정이 다르다고 본다. 다만 한국 실정과 문화상 그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을 권장했다"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인지는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 김정일 추모하라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대통령 추모하러 가라 한 건데? 그걸 문제삼는 것 자체가 매우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이 아닐까? 하여간 그렇다 치자.

그리고 내가 우려한 것은 그 녹취를 한 학생이 법을 오해할 가능성이었다. 몰래 수업 내용을 녹음해서 인터넷에 돌렸다면 이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10년이하의 징역에 해당된다. 면책특권 있는 노회찬 의원조차 이걸로 유죄 받은 항목이다. 하물며 학생이야! 그 학생을 영웅처럼 떠받드는 보수단체와 언론은 이 사실에 대해서는 경고하지 않는데 이건 너무 무책임한 모습이며 어린 학생을 정치적으로 편향되게 이용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기사 다음 부분을 보니 그 학생이 순진한 보통 학생이며 언론이나 보수단체에 이용당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소재 K고교 학생이 윤리 교사가 수업시간에 밝힌 정치 발언을 편집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 녹음 파일은 삭제된 상태다.....녹음 파일을 올린 학생은 전교조 소속이라고 밝힌 교사의 수업 내용을 녹음한 것이라며 사상을 주입시키는 전교조의 선동 수업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자 섬뜩하지 아니한가? 이 학생은 장난삼아 혹은 듣다보니 너무 심해 녹음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전교조라 판단한 교사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불법녹취를 한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렸다. 이건 아주 중범죄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나는 SNS가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는 부분이 수상했다. 어떤 조직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통상 학생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SNS로 돌리거나 유튜브나 다음팟을 이용하지 특정한 사이트에 올리는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 말미에 가자 " 교사들의 육성이 연일 공개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수업시간에 흔히 보는 장면이라며 선동 내용을 계속 올리겠다는 댓글이 이어져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이거 가관이 아닌가?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통비법을 무더기로 위반하는 것을 조장하는 특정 사이트가 있단 뜻이다. 이게 학생들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보이는가? 대체 어떤 사이트란 말인가? 이럴때 항상 허술한 뒷마무리로 팀킬을 하는 신문이 있다. 바로 동아일보다. 그래서 즉시 동아일보 기사를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동아일보] 교사가 수업시간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내용의 녹음 파일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한청련)이 만든 '에듀리크스(Edu Leaks)' 코너에 고교 시절의 경험이라며 대학생이 보낸 내용이다. 청소년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한청련은 정치 편향적 교육을 바로잡자며 학생들의 사이트를 4월에 만들었다. 지금까지 약 20건의 제보가 들어왔다."

이제 그 사이트의 정체가 드러났다. 결국 배후에 단체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이트에 가 보았다. 명목상으로는 18세 청소년이 대표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단체의 설립 이념을 보니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의 설립 이념 우리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은
1. 민주주의,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을 지지합니다.
2.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는 이승만정부에 의해 건국된 대한민국임을 인정합니다.
3.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한 점진적인 한반도 통일을 지지합니다.
4. 튼튼한 국가안보와 국방력을 요구합니다.
5. 정치색에 물든 교원단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국가발전을 지지하는 청소년 NGO입니다.


오, 장하기도 해라.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단체가 아닌가? 저런 이념을 가지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겠다고 나서는 저 단체가 정말 청소년들 단체로 보이나? 그리고 저 5개 강령이 중립적으로 보이나? 아니라고? 그럼 그 단체의 연혁을 살펴보자.
2011년 1월에 우파의 미래전략이란 세미나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단다. 와! 청소년 NGO가 도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참여연대에서도 쉽게 못 빌리는 프레스센터의 세미나를, 게다가 우파의 미래전략까지! 이 정도면 이 단체가 순수 청소년 단체도 아님을 또 정치적으로 우향우 치우친 단체임을 너무 쉽게 알수 있다. 그리고 이 단체를 통해 곳곳에서 교사 수업에 대한 불법 녹취와 악의적인 편집이 이루어지고, 그 녹취물이 인터넷으로 유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단체 대표가 만약 그런 행위를 조장 내지 교사했다면 이건 10년짜리 법정 최고형 감이 아닌가?

동아일보는 계속 말한다. "중고교생 자녀를 둔 조연우 씨는 "정치적 성향이 아직 성립되지 않은 학생들은 스펀지 같아서 교사의 말 한마디에 큰 영향을 받는데, 교사의 편향적인 수업은 아주 위험하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교육이 편향되면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치우친 의견은 불법 행위를 하고도 이렇게 빵빠레를 받고, 왼쪽으로 치우친 의견은 정신병취급을 받아야 하나? 그게 과연 균형잡힌 교육인가?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최미숙 상임대표는 "자신의 절대적 영향력을 기반으로 반대되는 건 모두 악이라고 교사들이 강요하는 건 학생들의 가치관을 훼손한다"며 "교육의 중립성과 학생의 학습권을 훼손하는 교사들은 수업권을 박탈하고 교단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아직 가치관이 여물지 않은 청소년들을 오른쪽으로 이우친 이념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불법행위를 야단을 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대서특필해서 조장하고 교육계에 풍파를 일으켜 이념싸움을 붙여보려고 조장하는 보수교육단체와 조중동은 퇴출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거짓말까지 하며 국민들을 호구로 보며 선동을 한다. "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사무총장도 교사는 수업시간에 자기 생각을 주입시킬 수 없다고 법에 명시돼 있지만, 어겨도 처벌을 받지 않으니까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 반드시 징계를 내려 일정 기간이라도 수업을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내 평생 저런 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면 교사는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하면 안된다는 규정은 있다. 교사가 수업시간에 어떤 정책에 대한 의견을 말하면 안된다는 규정은 전혀 없으며, 다만 자기 정견의 도구로 학생을 이용하면 안된다는 정도의 규정이 있을 뿐이다. 즉 "엄마한테 한나라당 후보 찍으라고 말한 다음 도장받아오면 상점 10점" 이따구 짓 하지 말라는 뜻이다. 수업시간에 닥치고 교과서만 읽으란 뜻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 역사, 윤리 시간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견해가 나올수 밖에 없다. 단 이때 교사가 이것은 자기의견일 뿐이며 반론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밝히면 그만인 것이다. 더군다나 고등학교라면.

어쨌든 이번의 일부교사 정치발언 문제는 다소 조심성이 부족한 몇몇 교사의 언행, 이런 언행들을 매처럼 노리면서 걸릴때까지 계속 녹취한 조직적인 학생들의 불법행위, 그리고 이 불법행위의 결과물을 빨대처럼 침소봉대해서 여론화한 보수언론, 이걸 근거로 교육계의 반대정파를 공격할 빌미로 삼은 우익교육단체들의 합작품이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 학생들이 녹취할지 모르니 다들 입닥치고 시키는대로 앵무새 수업을 하라는 것이다. 하필이면 이때 장제원 의원이 SNS규제 법안을 발의한다고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따로 움직이는 별개의 사건들일까?

생각을 얽어매고, 언제 어디서 감시가 이루어질지 몰라서 스스로 복종하고 자기검열하게 만드는것. 그리고 그것으 특정한 집단(주로 좌파집단)에 대한 마타도어로 귀결되는 것. 이게 바로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길이다. 그러니 자유민주주의자들이여, 그리고 반파시스트 전사인 진중권 선생 등이여. 파시즘과 싸워야 할 전선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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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