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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기반 닦기(3) 한국 교육의 구조를 이루는 낡은 교육 모형: 근대성

 
한국 교육의 구조를 이루는 낡은 교육 모형: 근대성
 
혁신학교, 진보학교
지금까지 한국 공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교육 패러다임의 혼란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혼란을 정리하면 한국의 공교육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그래서 혁신학교는 이 혼란을 정리하고 입신양명주의를 제거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가 않다. 이런 한국적 교육 패러다임의 혼란을 정리하고 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교육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즉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으로 직면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입신양명주의가 강해 한 겹의 문제를 더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자칫 혁신학교= 학교 정상화로 오인하기 쉬우며 혁신학교= 유럽 등 선진국 학교라는 심각한 오해에 빠지기 쉽다. 실제 혁신학교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본, 유럽에서 각종 교육혁신 모델을 가져다가 무분별하게 적용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과 이명박 정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교육 선진화가 무엇이 다른지 애매하다.
성열관과 이순철(2011)이 혁신학교를 버전 1.0-3.0의 단계로 나눈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버전 1.0은 엄밀히 말해 혁신학교, 학교혁신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정상적인 학교, 학교 정상화에 다름 아니다.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하고 행정 잡무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는 엄청난 혁신이 되고, 학교장이 단지 행정가로서의 기능만을 가지고 교사들의 수업 자율권이 보장되며, 시험점수가 아니라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는 거의 교육 혁명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모두 단지 정상적인 학교에 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짜 혁신학교는 여기서부터 출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혁신학교, 교육혁신이라는 이름이 잘못되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학교의 몇몇 요소를 바꾸거나 활용방식을 바꾸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혹은 우리보다 발전된 나라의 학교와 비슷해짐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물론 이른바 선진국 학교까지 포괄하여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학교의 위기라는 말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우리 나라가 벤치마킹하려는 나라에서조차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핀란드에서 일어났던 일은 학교를 일부 개조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이루어진 교육혁명이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미 20세기 초반의 존 듀이를 필두로 등장했던 새교육 운동이 내걸었던 것이 혁신이 아니라 진보였음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혁신학교 운동은 현 상황을 혁신하고 난 결과물 역시 낡은 것임을, 그러나 정상적으로 낡은 것임을 인지하고 있을 때 성공할 수 있다. 버전 1.0이 소위 선진국 수준의 낡은 학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버전 2.0은 선진국과 같은 라인에 서서 낡은 학교를 일소하는 학교가 되는 것이며 버전 3.0은 이 시대의 한계 너머를 바라보며 진보에 기여하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버전 1.0은 혁신학교 운동이라기 보다는 교육정상화로 불러야 하며 버전 2.0이 혁신학교이며, 버전 3.0은 진보학교다.
이런 정도의 비전까지 갖추려면 혁신학교운동은 학교운영 방식이나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혁신 아이디어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혁신학교 운동은 위해서는 지금까지 교육의 바탕에 서 있던 교육학, 교육철학의 전제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들이 바뀌어야 마땅한 낡은 것들임을 입증하고 어떤 면에서 낡았는지를 적시해야 한다. 또 혁신학교가 진보교육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교육학, 교육철학의 전제가 기존의 질서를 공고화 하고 소외계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음을 밝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기존의 교육철학과 교육학을 거부하고, 새로운 교육철학과 교육학을 수립할 정당성을 확보하며, 이 교육학을 진보교육학이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진보교육학에 기반한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혁신학교다.
 
낡은 교육은 근대 교육
 
다소 가치편향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나라 공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어왔던 문제들을 해소하더라도 그래서 소위 선진국 수준의 학교가 되더라도 그 학교는 낡은 학교고 그 교육은 낡은 교육이라고 하였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서는 낡은이라는 용어가 거슬릴 수 있겠지만 이것은 늙음에 대한 사회전반적인 멸시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 여기서는 단지 시간적으로 오래되었다는 냉정한 의미 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된 교육을 말하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낡은 교육은 모든 오래된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8세기-19세기에 산업 자본주의와 함께 형성되어 중세 봉건사회를 일소한 뒤 이제는 오히려 삶의 질곡과 억압이 되어가고 있는 근대성에 기반한 교육을 지칭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학교 교육은 사실 18-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18-19세기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최적화된 모델이다. 흔히 한국 학교를 비아냥 거릴떄 자주 나오는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실에서 19세기 교사가 가르친다는 말이 단지 비유가 아니라 실제인 셈이며, 그것도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이른바 선진 제국들을 포함하여 실제인 것이다.

근대 교육이라는 말 대신 굳이 낡은 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까닭은 복잡하게 왜곡된 한국의 공교육 체제 때문이다. 한국의 공교육 체제에는 근대적 억압 뿐 아니라 중세·봉건적 억압의 요소도 매우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학교에 온존하고 있는 중세·봉건적 잔재를 근대화하는 것 역시 혁신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자연히 근대낡은 봉건적 잔재에 대립하는 말로 받아들여져 왔고, 낡은 교육의 혁파라는 말은 교육의 근대화로 받아들여졌다.
예컨대 제왕적이고 자의적인 학교장의 권력은 분명 낡은 요소다. 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명문화된 규정과 세밀하게 지정된 권한의 한계 속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근대적 억압이다. 그런데 이 근대적 억압으로도 학교장의 권력은 분명히 통제하고 축소시킬 수 있다. 그래서 교육당국이 학교장의 권한을 명문화된 규정들 범위 내로 제한하고자 하는 당연한 근대적 합리화과정도 학교장들의 심한 반발을 샀으며 심지어 좌파정책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 없이 능력있는 교사를 학교장으로 공모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방식이다. 그런데 층층시하의 봉건적 위계질서로 짜인 한국의 교육관료 시스템에게 이것은 좌파적 정책이 된다. 이것이 바로 1992년부터 20년 가까이 신자유주의의 도입을 교육혁신, 교육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원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근대화, 합리화도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근대화의 모순까지 극복하고 그 너머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미국 월가를 비롯해 90여개국에 확산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항의는 근대성의 시대가 이제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성의 부작용이 분출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여전히 봉건적 잔재들이 남아 많은 교육자들과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근대의 합리적인 체제로 대체하는 것을 교육혁신이라 부를 수 없다. 이미 이 두 요소가 모두 섞여서 끊임없이 모순을 일궈내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 둘을 한꺼번에 묶어서 일소해버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혁파해야 할 대상은 낡은 봉건적 잔재를 포함한 근대교육 체제 전반이며, 근대적 사유 전반인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낡은 교육이라는 말을 통해 고도로 합리화된 근대 교육체제를 지지칭하는 까닭이다. 우리 교육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근대성을 혁파해 낼 수 있다면 봉건적 잔재는 구태여 따로 혁파할 까닭이 없다. 지금 근대 민주정치의 핵심적인 제도인 대의제, 선거제도의 한계를 지적하고 아예 시민들의 직접 참여하는 참여주권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시민참여주권이 실현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라면 아직도 남아있는 봉건적인 세습체제의 잔재를 굳이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기본 모형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 공교육의 기본 모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여기서 모형이라는 말은 어떤 학교를 세우고 운영할 때, 또 교육제도를 세우고 개선할 때 항상 참조의 대상이 되는 하나의 전범을 뜻한다. 이 모형을 먼저 세워 보고, 이 속에 숨어있는 근대성의 흔적을 하나하나 추적해 내는 것이 이 책의 전반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 나라 공교육은 그 동안 교육적이고 학술적인 바탕 보다는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온 경향이 강해서 어떤 튼튼한 이론적 모형에 바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교육과정 총론을 작성하고 학제를 편성할 때 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참조하는 학설들을 통해서 이 모형을 추론해 볼 수 는 있다. 그렇다면 비록 지금은 그 위세가 예전같지 않지만 타일러-테이바 모델과 김종서 모형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기본 모형을 이루어 왔다라고 할 수 있다(이홍우, 1992). 타일러-테이바 모형은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교육제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주로 적용되고, 김종서 모형은 학교단위의 교육활동을 구성할 때 주로 활용되어 왔다.
물론 최근에는 공식적인 교육학자들이 이들 모형을 아직까지도 되 뇌이고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고시된 교육과정 해설서나 여타의 고시된 문서에서 아무리 다르게 말하더라도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천착된 이들 모형은 학교에서 사라지지 않고 일종의 문화 수준으로 고착되어 있다. 따라서 낡은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모형들의 특성을 살펴보고, 이 모형들의 배경이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이론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타일러 모형부터 살펴보자. 타일러는 교육목표를 설정할 때 다섯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다섯 가지는 1)학습자에 관한 사실, 2) 사회에 관한 사실, 3) 교과전문가의 견해, 4) 철학, 5) 학습심리학이다(이홍우, 1992, p. 45) . 이 다섯 가지는 결국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어떻게 가르치느냐를 결정하는 체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타일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를 교육철학, 사회적 요구, 교과전문가에게 떠넘긴다. 결국 교육전문가가 고민해야 할 일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다. 즉 교육전문가의 역할은 학습심리학을 바탕으로 학습자의 심리와 상태를 파악한 뒤 주어진 교육 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배치와 교수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축소되며, 학습 내용은 철학이나 사회적 요구(사실 교육철학이 당대의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에서 이 둘이 별개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에 의해 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2단계의 소외가 발생한다. 첫 번째 소외는 학습자와 교육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무엇을 배울지에 대한 선택권이 이들에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교육자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일종의 숙련공이다. 여기에 더하여 학습자는 교육자로부터도 소외된다. 학습자는 외적으로 결정된 학습내용을 배워야 할 빈 그릇으로 간주되며, 이 그릇의 모양 역시 학습자가 아니라 학습심리학자, 교과전문가 등의 과학적 방법에 의해 파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습자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내용을 배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학습전략 역시 원하는대로 할 수 없다. 무엇을 배울지는 교육당국이 결정하며, 어떻게 배울지는 교육자가 결정한다. 학습자는 그저 조작 대상으로 남는다
이런 종류의 교육관을 부르는 또 다른 명칭으로 브루너(1996)가 지칭했던 전수 모형’(transmission model)이 있다. 문자 그대로 교사, 교육자에게 있는 지식이 학생에게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를 프레이리(1991)는 은행저금식 교육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것은 교사, 교육자에게 마치 은행 저금처럼 축적된 지식을 학생들이 인출해간다는 뜻의 비유다. 그 밖에 교육은 학생 행동의 의도된 변화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의식적인 작용이라는 김종서의 교육관도 있다(이홍우, ). 이 모든 관점들을 관통하고 있는 공통의 아이디어는 교육은 어떤 지식이나 가치가 학생에게 전수되고 새겨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교사는 독자적인 지식의 생산자라기 보다는 이 전수과정의 매개체 역할을 하며, 이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보유한 일종의 숙련공이다.

이제 이러한 교육모형을 제도 수준으로 정리해 보자. 위의 모형에서 교사 대신 교사들이 근무하는 기관인 학교를 도입하면 된다. 그리고 계획된 교육 프로그램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한 부분은 한 부분은 교육목적과 교육내용을 결정하는 부분이며, 다른 부분은 그 목적과 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할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타일러-테이바 모형이 따르면 교육전문가는 교육목적과 교육내용을 결정할 수 없다. 교육 목적과 내용을 결정하는 부분은 교육자가 아니라 그 사회를 대표하는 정부, 즉 교육당국(교육관료집단)이다. 교육당국이 교육목적과 내용을 결정하면 교육전문가들(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과정평가원, 교육개발원 등)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것을 학교에 내려보내게 된다.
예컨대 교육 당국이 “A라는 학생에게 B라는 내용을 가르쳐서 K라는 변화가 일어나게 하라.”라는 명령을 내리면 교육전문가들은 이것을 일련의 단원과 교수-학습 패키지로 만들어서 학교로 학교에 내린다. 이 패키지가 바로 우리가 교육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교육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과정이 일선 학교에 내려지면, 학교는 이 교육과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찾아서 실행에 옮긴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과정도 더 세밀하게 분업화되어있다. 실행 방법을 연구하는 집단과 방법을 적용하는 집단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는 이 연결고리의 최말단인 적용 집단에 자리 잡게 된다.
한편 정부는 이 명령이 전달되는 연결고리가 지나치게 길어짐에다라 발생할 수 있는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었는지를 각종 시험의 형태를 통해 평가를 실시한다. 시험 결과는 학생 혹은 학교에 다시 피드백 된다. 이런 세분화된 과정을 거치면서 A 학생은 K의 변화가 반영된 AK라는 학생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를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공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작동 모형이다. 보기에도 답답한 이 교육모형은 매우 단순화 시킨 것으로 실제로는 이 보다 더 세밀하게 분업화되어 있어서 여러 종류의 학교, 여러 종류의 시험들을 거쳐가게 되어 있고, 이 학교들과 시험들은 모두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체제에서 벗어나기란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모형의 작동에 다소 교란을 불러일으킨 두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990년대까지는 정부가 학교에 내린 명령(국가 공동체 구성원의 양성 및 적재적소에 배치할 노동력의 양성)과 비공식적으로 학부모가 학교에 내린 명령(입시교육 강화를 통한 대입실적 향상)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바로 이 틈새시장을 노리고 사교육 시장이 비대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틈새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축소되고 있다. 1998년 이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노골화되면서 정부가 교육의 공동체적 관점을 포기하고 단지 교육수요자로 격상된 학부모가 요구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서비스 사업자의 관점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학부모의 비공식적인 명령은 교육당국의 공식적인 명령으로 승격되었다. 이제 학교는 노골적인 입시교육을 해야 하며, 사교육기관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학교는 점차 입시 사교육기관과 차별성이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조치는 학부모를 수요자로 상정하는 시장논리를 통해 정당화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근대 공교육의 형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교육이 반공교육이건, 입시교육이건 간에 이 모형은 달라지지 않는다. 즉 학생들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체계적인 조작에 의해 반공투사로 변신하건 아니면 입시기계로 변신하건 간에 외부 조작에 의한 변화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운동이다. 교육운동은 크게 전교조 운동으로 대표되는 교사운동과, 이 모형 외부에서 새로운 교육을 하려 했던 각종 대안교육운동으로 대별된다. 교사운동은 이 모형에서 교육노동자의 역할을 하고 있던 교사들 중 일부가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할 것을 거부하면서 이 모형의 핵심적인 과정들에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사운동은 처음에는 몇몇 개혁적인 교사들의 움직임이었다가 점차 이들이 결집하면서 마침내 전교조 같은 교사운동조직의 결성에 이르게 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교사 수준이 아니라 몇몇 교육감들까지 이 운동에 가세함으로써 기존의 교육체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대안교육운동은 이 교육기계를 거부하는 학생, 학부모, 그리고 개혁적 교육전문가와 교사들이 결합하여 이 기계 외부에 별도의 교육기관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 역시 최근 몇몇 교육감들이 이 별도의 교육기관을 모델로 하여 이 기계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기존 교육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교육당국의 대응은 탄압과 포섭으로 대별된다. 탄압은 개혁을 요구하는 교사들이나 학교 밖 교육기관을 공격하여 이들을 제거하거나 좌절시키는 것이다. 포섭은 이들의 요구들 중 체제에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들을 협조적으로 만들어 체제내로 포섭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포섭보다는 노골적인 탄압이 두드러지며, 심지어 이 탄압의 대상에는 교육감들도 예외없이 포함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은 낡은 교육모형이 작동하고 있는 모습을 현상적으로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 현상 속에 깊이 숨어 있는 본질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육운동은 학생을 바꾸는 계획의 종류를 바꾼다거나 시험의 방식을 바꾼다거나 하는 식으로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 몇 개를 고치는 대증적인 개혁에 그치고 만다. 본질을 포착하지 못하고 이렇게 현상들의 개혁에만 머무를 경우에는 성과도 쉽게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작은 탄압에도 쉽게 그 동안의 성과가 원상 복귀되기 쉽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교육운동은 낡은 교육을 그 본질까지 깊이 공격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학교에서는 이런 저런 움직임들이 있지만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의 교육내용은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즉 낡은 교육의 기반은 여전히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 운동이 그 성과를 계속 축적하여 마침내 낡은 교육 모형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면 그 외부 현상만 공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작동하게 만드는 여러 전제조건들, 이론적 기반들을 완전히 허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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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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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