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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국익, 매국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 파시즘이 걱정되는 논객이라면 엄한 나꼼수 깔 것이 아니라 FTA 이야기를 해야 한다. 돌 맞을 각오를 하고 몇 마디 적어 본다.

지금 한미 FTA 때문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금 당장 한미 FTA를 하면 엄청난 장미빛 미래가 기다리고, 하지 않으면 경제가 망가질 것 처럼 말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한미 FTA를 을사늑약에 비유하면서 여기에 찬성하면 나라 팔아먹는 것 처럼 말하고 있다.

2007년 당시 한미 FTA반대 목소리보다 훨씬 더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바로 이 "나라 팔아먹는"이라는 선정적인 구호가 2007년 당시의 "신자유주의" 보다 훨씬 선동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도 신자유주의 말고 나라에 손해기 때문에 FTA를 반대했던 정태인 등의 주장이 있었지만, 조목조목 손익계산을 따지는 방식은 별로 흥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래칫 조항이나 ISD조항 등을 예로 들면서 "주권이 침해된다"는 외침은 한국의 전통적인 민족주의(때로는 국수주의)에 매우 강하게 호소하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할 의무가 있다.

1) 만약 손익계산서를 철저히 계산해 보았을때 한국측이 더 이익이 많으면 당신들은 FTA를 찬성할 것인가?

2) 한미 FTA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이걸 계기로 미국 빽을 얻어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약소국들에게 강합적인 FTA를 체결해서 제국주의의 중간뽀스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당신들은 FTA에 찬성할 것인가?


따져보자. 물론 무역을 하다 보면 한국과 미국의 이익은 어느 쪽이 조금은 적자가 될지 모르지만 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무역수지는 어차피 딱 맞기 어렵고, 적자와 흑자를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역흑자가 늘어나면 흑자 본 달러를 원화로 바꿀 것이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 점점 흑자폭이 줄어든다. 그게 싫으면 흑자로 들어온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말고 나라 밖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본수지에서 적자가 되며 국제수지는 균형을 맞추게 된다. 적자인 경우에는 정 반대의 경우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한국이 이익이다, 미국이 이익이다 가지고 따지는 것은 핀트가 빗나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누구가 이익이며, 미국의 누구가 이익인가 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한국이 이익, 혹은 미국이 이익인 FTA따위는 있을 수 없다. 한국의 누군가가 이익 보는 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보며, 그건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두 나라는 필경 정부가 더 보호해주고 싶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이익을 포기했을 것이다. 이 점을 망각하고 나라의 이익 관점에서 접근하면 "한국의 400만 농민이 모두 400억의 손해를 보지만, 덕분에 10명의 자본가가 600억의 이익을 보니까 나라 전체로는 이익, 그러니 국익을 위해 찬성", 혹은 "미국에게는 100억 손해를 보지만, 그 대신 베트남, 태국에게 400억 얻을 입지를 확보했다. 국익을 위해 찬성"이라는 결론을 막을 수 없다.

"주권의 침해"라는 주장도 그렇다. 북한, 중국, 시리아 등이 만행을 저지르고 여기에 대해 국제사회가 압력을 행사하면 항상 나오는 대답이 "주권에 대한 간섭을 용서할 수 없다"다. 그러니 이번 FTA에 반대하는 논거로 주권의 침해를 드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으나, 이 용어를 사용할때는 신중해야 한다. 정작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주권이 아니라 민중들의 생존권이며, 이 생존권을 거스르는 주권은 정당성을 상실한 주권이니 더 이상 주권이 아닌 것이다. 그럴때 민중은 주권을 회수할 수 있다고 수백년 전 자유주의자인 존 로크가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주권의 불가침성"을 논거로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주권은 언제든지 침해당할 수 있고 회수될 수 있는 다만 위임된 권리에 불과한데, 이를 반석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론: 아직은 잠정적인 생각.)
그럼 미국은 왜 이렇게 FTA에 적극적인가? 그건 미국이 그 동안 엄청난 무역 적자를 누적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견딜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경제의 불황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야 한다. (조금 불친절한 설명을 양해하기 바란다.) 간단하다. 돈(통화량이 생산된 가치에 비해)이 모자라서다. 화폐는 경제의 혈액과 같아서 아무리 근육이 잘 발달해 있어도 혈액이 모자라면 쥐가 나고 현기증이 나듯이, 아무리 생산능력이 뛰어나도 화폐가 부족하면 비틀거린다.
그럼 왜 돈이 모자랄까? 한계 소비성향이 1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소득이 1 증가할때 1을 다 쓰지 않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은 기업의 생산으로부터 분배되는데, 만약 기업이 100을 생산했고 이게 각 경제주체에게 임금, 이자, 지대로 분배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한계소비성향이 0.6이라면 결국 60만큼의 돈만 사용되며 40만큼의 돈이 증발한다(소비되지 않고 시장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런 나라는 아무래도 미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득의 상당부분을 꿍쳐두는 것을 선호하며, 또 이런 나라는 자본주의 국가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초기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가가 앞장서서 저축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정희 시절 우리나라 은행 이자는 요즘 펀드 수익률과 맞먹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은 소득을 쓰지 않고 저축, 그것도 장기저축들을 했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기업은 40만큼의 재고를 감당 못하고 퍼지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세가지인데, 정부가 40만큼을 지출하여 이것을 구입해 주거나, 시장에 40만큼의 화폐가 더 돌게 하거나, 아니면 다른나라에 40을 팔아 치우는 것이다. 그런데 개도국들 정부가 넉넉할 턱이 없고, 또 사람들의 저축성향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를 웬만큼 매만져서는 통화량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답은? "수출만이 살 길"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수출 해야 할까? 당연히 시장이 크고, 소비자들의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나라, 미국이다. 미국인들이 저축을 잘 안하고 버는 족족 써대는 것은 욕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 사람들이 자기 나라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번 일자리 짤리면 즉사나 다름없는 한국인들과 처지가 다른 것이다. 일단 오늘 번 건 오늘 쓰고, 내일 쓸 건, 내일 벌지 뭐, 이거다. 그러니 미국은 오히려 돈이 남아 돈다. 그게 1970년대 미국이며, 이를 이용해 일본, 독일, 그리고 나아가서 아시아의 4룡이 미국을 상대로 "수출만이 살 길"을 구현했다. 또 실제로 미국은 뽀스 나라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세계대전 후 복구가 끝날때 까지 일본과 유럽에게 기꺼이 적자를 감수해 주었으며, 냉전의 최전선에 해당되는 아시아 4룡들에게도 기꺼이 적자를 감수해 줌으로써 이들의 경제를 급성장 시켜주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흡혈귀다.

그럼 미국이 너무 손해 많이 본것 아니냐고? 원 천만에. 여기서 또 미국이란 나라가 미국인 모두의 이익을 위한 나라가 아님을 잊으면 안된다. 어째서? 한국이 미국에 수출해서 엄청나게 많은 딸러를 벌어들였다고 하자. 이걸 원화로 바꿔서 한국에 뿌려야 이게 실질적인 한국 민중의 이득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수출만이 살길이 된 기업은 한국에 돈이 잘 풀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들 상품을 구입해줄 미국에 돈이 잘 돌아야 한다. 따라서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딸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풀린다. 뭐 미국 입장에서는 빚잔치긴 하지만 어쨌든 돈이 풀리니까 경제는 잘 돌아간다. 이게 아주 웃긴 시스템인데, 100원어치 물건을 샀는데, 그 물건 판 사람이 그 100원을 도로 주는 꼴이다. 그럼 그걸로 이자 10원 빼고 90원어치 사고, 그럼 90원이 또 오고, 이 짓을 무한히 반복하면 엄청난 돈이 펑펑도는 것이다. 이게 미국경제의 역설인데, 적자를 보면 볼수록 엄청난 딸러가 미국을 적시는 것이다.
이 와중에 또 엄청나게 돈이 불어난다.(물론 이 모든게 다 빚이다). 이 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미국의 빚잔치가 부풀어지는 만큼 개도국은 더 많이 수출할 수 있겠지만, 이게 지속가능하지 않음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여기에 덜컥 중국까지 숟가락을 얹는 순간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더 이상 빚잔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이게 자동차, 전자 등 산업에 투자되지 않고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돈 놀이꾼)이나 부동산 투기에 투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 되돌아오긴 했는데, 이게 뭔가를 만드는데 쓰이지 않고 계속 돈으로만 도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불어난 돈은 노동자들의 손에는 도달하지 않는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에서 45000불까지 증가할 동안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거의 제자리를 걸었다. 결국 아주 거칠게 아시아의 경제기적은 아시아의 산업자본과 미국의 금융자본이 짝짜꿍을 맞춰 미국의 노동자들을 털어먹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성난 미국의 청년과 노동자가 월스트리트에서 "오큐파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며, 미국에 좌파정부만 들어섰다 하면 아시아를 향해 "수출 그만해!" 하며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더 이상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에게 지배당하는 미국을 거부한다면, 이는 돈이 금융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생산적인 산업에 투자되게 하여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쪽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정부는 지금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으며, 연방준비위는 그린스펀 시절부터 엄청난 저금리를 계속 유지해 온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는 유동성 함정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면 미국 역시 "수출만이 살길" 상황이 된 것이며, 따라서 더 이상 아시아 국가들에게 대규모 적자를 보는 상황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 정부는 자기들 나라에서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인지 정확히 알고 FTA에 임한 것이다. 산업노동자와 농민은 이익이고, 월스트리트의 금융귀족들은 손해다. 오바마가 FTA가 마무리 되자 이명박을 데리고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을 한게 다 이유가 있는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도 기립박수를 쳤다. 공화당이 노동자들을 위해 박수를 쳤을 턱은 없고, 그렇다면 노동자 말고 이득 본 집단이 더 있단 뜻이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파헤쳐야 할 지점이다. 미국에 이익들 보는 집단이 더 있다는 뜻은 한국에 손해를 보는 집단이 더 있다는 뜻과 동의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에 "누구를 위한 FTA인가?" 물어야 한다. 분명 우리 나라에서도 이걸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게 누군지 밝혀야 한다. 누구라도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어야지 아무도 덕 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딴 협상을 왜 했겠는가?
(보론 끝)

결론은? "1%를 위한 FTA 반대한다"는 공식 슬로건이 매우 훌륭하다. 이제 그 1%가 누구며 어떻게 이득을 보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규명하자. GM도 1%고 모건스탠리도 1%다. 하지만 미국은 FTA로 GM이 더 큰 이득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1% 중에서 정확히 누가 수혜집단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99%가 어떻게 손해를 보는지 규명하자. 이 큰 틀 안에서 각론을 펼쳐나가며, 쓸데없이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선동적인 주장들을 하지 말자.

하지만 이런 잡설들 풀기 전에 먼저 이 말부터 해야 한다.

"뭔 내용인지 좀 보자! 뭔지 알아야 찬성이고 반대고 할 것 아닌가?"

그리스에서 독일이 돈을 대준다는데도 넙죽 안받고 국민투표에 붙인다고 한다. 그 덕에 유럽 사태가 진정되었다고 판단하고 다시 재테크를 시작한 나는 돈을 또 날렸다. 씨바. 이건 정말 예상 못한 일이다. 돈 준다는데도 국민투표를 하는 나라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는 분명 손해보는 사람들이 있을수 밖에 없고, 그 사람들이 다수일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불구하고 국민투표는 고사하고 뭔지 내용도 안 보여주고, 뭔 내용인지 알아볼 시간도 안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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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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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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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