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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관련 주요 외신 보도 분석

앵무새 한국 방송들과 소설가 조중동을 아무리 읽어 봐야 제대로 된 사정을 알 수 없으니 외신을 통해 한미 FTA의 득실을 따져 봅니다.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한미 FTA는 미국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으며, 또 그래야 한다입니다. 그러니 정부는 솔직하게 국제 경제 균형과 무역판의 유지를 위해 미국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음을 밝히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위해 지혜를 모으자고 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지, 한미 FTA덕분에 대박납니다 하고 사기 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 물론 대박 날 한국인이 있기는 합니다만....(이하 기사는 해럴드 경제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먼저 월스트리트 저널입니다.
South Korea has far higher tariffs than the U.S. and, as a result, will see bigger changes in the variety and cost of goods after the trade deal takes effect. South Korea also has long had a surplus in the trade relationship with the U.S., a cushion that, over the past five years, amounted to an average of $12 billion annually. Analysts estimate that the South Korea's surplus will continue but will become smaller, chiefly because it is likely to sharply increase its imports of U.S. agricultural products.

"한국은 그 동안 미국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해 왔다. 그 결과 이 협정이 효력을 발휘하면 상품의 가격이나 종류에서 미국보다 더 많은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은 그 동안 미국과의 교역에서 어마어마한 흑자를 봐 왔으며(5년간  평균 120억 달러/년), 분석가들은 한국의 흑자가 당분간 지속되기는 하겠지만 미국으로부터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면서 흑자 규모가 줄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이 그 동안 미국에 수출하던 자동차, 섬유 등은 이미 made in Korea가 아니고, 섬유는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자동차는 현지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애시당초 무역장벽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한미 FTA로 딱히 더 팔릴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산 농축산물이나 미국의 금융기업들, 그리고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지적재산권은 바야흐로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죠.
그래서 “그 동안 한국의 관세가 미국에 비해 훨씬 높았으며, 내년 초 협정 발효 후 한국은 결과적으로 상품의 다양성과 가격에서 미국에 비해 더 큰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점잖게 지적하는 것 아닐까요? 즉 상품의 다양성은 미국 상품들이 들어온다는 것이며, 가격의 변화는 미국산의 가격이 아주 저렴하게 된다는 것이죠. 반면 미국에서의 한국산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고.

다음은 블룸버그통신. "미국 농산물의 3분의 2가 무관세로 한국에 수출되고 5년 이내에 공산품 관세의 95% 이상이 없어질 것". 그럼 한국산의 미국에서의 변화는? 블룸버그는 아예 그 점은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각국 장관들의 호언장담들만 주절주절 나열하고 마네요. 하긴 블룸버그의 관심사는 주식값이니까. 한국의 자동차, 화학, 섬유주를 주목하라 뭐 이정도?

물론 한국산 자동차에 붙던 관세 2.5% 삭감되는것 마저도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이 불안해 하기는 하지만 이거야 "미국 수출용 자동차는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겠다" 한 마디면 쫑입니다. 그래 놓고 정작 임금 싼 멕시코에서 생산하겠죠. 한국이나 미국이나 노동자는 속여먹여야 맛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니.

자, 이러니 한미 FTA로 한국의 시장이 넓어졌다, 수출길이 열린다,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겠죠? 시장이 넓어지긴 합니다. 미국 시장이요. 수출길도 열리죠. 미국의 수출이요. 거듭말하지만 저는 이거 자체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왜 아닌 척 하냐는 거죠.

참, 표정관리하고 있는 재벌들. 미국 기업들이 몰려와서 진검승부할까봐 두려워 할까요?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될까요? 긴장하고 있을까요? 원 천만에요. 우린 여기서 만고 불변의 진리 하나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만 떠올리면 됩니다. 그 동안 보호무역 덕분에 한국 자본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게 유리했습니다. 만약 한미 FTA로 미국이 유리해지면? 간단합니다. 미국 자본이 되면 됩니다. 예를 들면 대만 최대의 자동차 회사는 폭스바겐타이완입니다. 그게 독일회사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명백히 타이완 국적 회사입니다. "양안 협정"으로 중국이 타이완 기업에게 특혜를 주니까 독일 자본이 타이완에다가 그런 회사를 세운겁니다.

그러니 우리 재벌들은 오히려 쾌재쾌재 할 것입니다. 미국 기업들이 몰려와서 귀찮은 한국 정부의 규제를 ISD칼로 날려버릴테니까요. ISD로 미국 기업이 재판에 이겨 규제가 사라지면 그 기업만 규제가 해제되는 게 아니라 모든 기업이 다 자유(자본의 자유, 탐욕의 자유)의 과실을 누리게 되니까요. 게다가 미국 기업들도 한국에 직접 법인을 세우기 보다는 한국 자본들과 이래저래 합작법인을 세울 가능성이 많아질테니 미국에게 넓어진 한국시장은 한국 재벌에게도 넓어지는 겁니다.

다음은 여당의 강행 처리와 ‘최루탄 소동’에 대한 BBC의 보도..

“여당인 한나라당이 모여 비준안을 151대 7로 가결했다. 야당 의원 대부분이 기권한 가운데 한 야당의원은 표결 전에 최루가스를 터뜨렸고 다른 야당 의원들은 강행 처리에 야유를 퍼부었다....한국의 농민들과 일부 노동자들이 생계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협정에 반대하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번 법안의 강행처리가 무모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방송, 신문과는 자뭇 논조가 다릅니다. 김선동 의원을 깡패, 테러리스트로 몰지 않고, 도리어 그 책임을 퍼런당의 강행처리에 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무모한 카드였다고 하면서 후폭풍까지 예고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이 다루지 않는 노동자와 농민의 생계 위협까지 꼼꼼하게 다루어 주네요.

AFP통신도 “한국 집권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통과시키려고 돌발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소집, 한 야당 의원의 최루탄 사건을 유발했다”고 부연설명했다고 합니다. "유발했다"라는 표현에 유의합시다. 즉 김선동 의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책임은 돌발적인 본회의에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한미 FTA 발효로 수출 주도형 나라인 한국에서 많은 실직자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로 2015년까지 양국간 교역이 50%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라고 하네요.  대단한 각하의 호연지기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0% 증가를 말하는데 각하는 50% 증가를 말씀하십니다.수출이 느는건지 수입이 느는건지도 말씀 안하시네요... 마치 빚이 50% 늘어나는데 "금융 거래가 50%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격. 하긴 월 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이 2030년이나 되어야 40000불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지만 각하는 임기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명단은 서비스.... 한미FTA찬성 의원 명단(엠군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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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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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