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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대 바보들

원래대로라면 단풍이 다 떨어졌어야 하는 11월 이지만 올해는 아직도 푸르름이 가득합니다. 원래 오늘은 콜로키움(소규모 학회)을 해야 하는 날이지만 이 샌님들이 가는 가을이 아쉽다고 나들이를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일기예보는 토요일 비. 원래 노는 것 싫어하고 공부를 더 좋아하는 저는 잘되었다 하고 대학으로 가서 은사님도 뵙고, 일도 봤는데, 기어코 이 사람들이 한성대 입구에 모였다고 연락합니다. 성곽길 걸은 뒤 삼청동 나들이를 한다나요?

도리없이 다시 먼 먼 길을 떠나 삼청동 쪽으로 가서 북악산을 걸어 올라가 숙정문 입구에서 접선합니다. 가을이 지나가는 북악산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풍경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내려와서 삼청공원을 거닐었습니다. 명산들에서는 맛이 간 올 단풍, 그나마 삼청공원은 그럭저럭 봐줄만 했습니다. 어쨌든 책읽고 세미나를 하지 못해 우울해 하는 나를 제외한 다른 동학들은 모두 즐거워 합니다.

전체적으로 준비된 프로그램대로 착착 진행됩니다. 한성대 입구- 간송미술관- 성곽길- 숙정문입구-삼청공원 하산 - 삼청동 보리밥집.

이제 마지막 프로그램인 삼청동 보리밥집으로 의기양양하게 행진해 갑니다. 어딘지도 정확하게 좌표 찍고 갑니다. 그렇게 보리밥집 앞에 도달한 일행이 당황합니다. "자리가 없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어긋납니다. 안타깝게도 플랜B는 준비된 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지?" 다들 멀뚱 멀뚱 얼굴만 처다봅니다.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날은 저물어갑니다. 인파로 미어 터지는 삼청동 길에 중장년 10여명이 마치 미아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얼굴만 쳐다 봅니다. 그 면면을 보자면 S대 교수도 한 분, S대 박사가 여섯분, 그리고 S대 박사과정생 세분.... 하지만 이렇게 모여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 "어디 가서 밥먹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누가 나서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습니다. 가히 패닉이 따로 없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오직 "준비된 플랜이 어긋났고, 또다른 플랜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득 김용민 씨가 "S출신들은 모든 길이 꽃가마 타고 가는 탄탄대로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소한 좌절에 쉽게 자빠진다"라고 어디선가 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계획은 완벽하고, 모든 일은 착착 진행되어야만 하는데, 사소하게 어긋나기 시작하자 일의 경중을 떠나 계획이 어긋난 사실에 당황하면서 사고가 정지되는 딱 그런 꼴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나중에 합류하기로 한 다른 선생님이 더 좋은 식당을 오면서 잡았으니 그리 오라고 연락합니다. 간신히 살았다는 표정으로 버적버적 밥먹으로 가는 7박들. 문득 한 사람이 말합니다. " S대생들은 실천지능이 형편없기 때문에 머리 좋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구만." 다들 박장 대소합니다.

이렇게 힘겹게 자리잡고 홍합밥으로 배를 채우고 동동주를 마시며 결국 교육이야기를 합니다. 교육혁신? 결국 "어떻게 이론적 지능과 실천지능이 고루 균형잡힌 인간을 기르느냐?" "어떻게 이론지능만 발달하고 실천지능은 잼병인 정신적 불구(?)만 양산하는 교육을 바꾸느냐?"의 문제라는데 다들 동의하고, 그 열쇠가 문예체 교육에 있음에 동의합니다. 이렇게 가을의 마지막 주말이 저물어 가고, 어이없이 미아아닌 미아처럼 삼청동을 헤매었던 나름 자칭 최고 엘리트 교사들과 교수의 깨우침도 깊어갑니다. 우리들이 바로 우리 교육의 혁신이 절실하다는 산 증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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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