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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바탕 세우기 (4)

낡은 교육의 철학적 바탕
 
그렇다면 이 낡은 교육의 이론적 기반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통상적으로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은 교육철학, 교육심리, 교육사회, 교육방법으로 구성되고 있다. 따라서 이 순서에 따라 먼저 낡은 교육의 철학적인 바탕을 진리관, 세계관, 그리고 인식론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낡은 교육의 진리관: 진리 객관주의
 
진리관이란 진리에 대한 관점으로 크게 객관적(절대적) 진리관과 상대적 진리관으로 대별된다. 객관적 진리관은 진리란 그것을 인식하는 우리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단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반면 상대적 진리관은 진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속에서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불변의 유일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에서 진리관이 중요한 까닭은 이 두 진리관들 중 어느 것에 입각하느냐에 따라 학생에게 가르치는 내용, 교사, 학교의 권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라면 학습자가 진리에 개입할 여지는 차단된다. 따라서 학습자는 그저 주어지는 진리를 열심히 익힐 뿐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가 부정된다면 학습자는 진리에 개입할 권리를 획득한다. 학습자는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낡은 교육은 이 중 철저하게 진리의 객관성, 절대성의 입장에 서 있다. 설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완전하지 않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불완전함 때문이지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것은 자연=신의 섭리=영원한 진리라는 고대적 사유에서부터 끊임없이 내려온 보수주의의 원천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관에 서게 되면 불변의 진리에 학생보다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고 이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과학자나 교사는 학생과 비대칭적인 권위를 가지게 된다. 보수주의자들이 고전을 강조하는 것도 오랜 세월동안 잊혀지지 않고 전승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러한 고전을 배워야 하며, 이런 고전들을 중심으로 편찬된 교과서를 배워야 한다. 고전과 교과서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동시에 교사의 권위도 절대적이다.


 이러한 보수주의적 교육관은 학생들이 이성이라는 집에 들어서려면 먼저 전통이라는 뜨락을 지나야 한다”(Peters, )는 말로 대표된다. 또한 허치슨 등의 이른바 항존주의 교육학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피터즈, 허치슨 같은 보수적인 교육철학자들이 문학과 예술 교육을 강조했다 하여 이들의 주장을 혁신학교에 끌어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들이 문학과 예술을 강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만들어져 전승되어 온 고전을 강조하는 것이지 학생들이 자유로이 창조하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낡은 교육에서 인식의 주체문제: 의식 철학
 
절대적, 객관적 진리관 만으로는 근대를 지배해온 교육학의 바탕을 이루기에는 부족하다. 진리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가 상대적이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와 함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주체의 이론도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데까르트 이후 서양 철학을 지배해온 의식철학이다.
 
의식철학의 개요
 
의식철학은 인간을 신체와 의식으로 분리한다. 이 중 신체는 주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의식철학에서 주체의 주인은 철두철미하게 의식이다. 신체는 단지 의식이 부리는 운동하는 기계이며 대상이다. 의식이 이러한 주체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성을 중심으로 의식이 스스로를 인식함으로써 자아가 완성된다. 이후 이 자아가 자신의 외부세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면서 모든 지식의 인식과정이 일어나게 된다(Dewey, 1920).





 그런데 의식철학에 따르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인식의 주체가 의식을 가진 개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인식은 개인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지식의 객관성을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또 하나는 감각기관을 통해 획득한 정보의 신뢰성 문제다. 감각기관은 신체에 해당되기 때문에 실제 세계를 왜곡해서 전달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객관적이고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이 지점이 데까르트가 명석(clear)하고 판명(ditinct)한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지점이다.

데까르트의 대답은 명백하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을 다 배제하는 회의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 이런 회의를 하고 있는, 즉 사유하고 있는 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게 유명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인데, 이로써 인식의 주체인 자아의 존재가 증명되며, 그 존재는 바로 생각함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하는 주체 이외의 신체 등등은 모두 자아 외부의 것이나 도구이다. 그렇다면 명석판명한 지식은 이런 신체와 그 부속기관이 아니라 확실한 존재인 생각하는 자아로부터 추론되어야 한다. 이 생각은 곧 이성이며, 따라서 외부 세계나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적인 의식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는 철저한 추론과 논증의 절차를 세울 수 있다면, 이미 확립된 지식으로부터 이 절차에 따라 추론해 나감으로써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철저히 논리적 구성물을 통해서만 정리들을 도출하고 증명하는 수학적 방법이 지식의 확실성을 보장한다. 이러한 이성주의의 장점은 이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확실성이지만, 문제는 이 지식이 과연 무엇에 대한 지식인가 하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 대한 지식인데, 이런 이성주의의 방법은 이미 우리가 의식속에 가지고 있던 것으로부터 모든 지식을 연역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더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방법대로는 우리 외부의 지식은 얻을 수 없고, 얻어도 확실한 지식이라고는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 존 로크, 데이비드 흄 등은 이런 이성주의를 거부한다. 이들은 이성주의의 방법이 결국 애초에 타고난 본유관념간의 관계만 정교하게 만들 뿐, 실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하나도 얻지 못하는 공리공담이라고 비판했다. 만약 우리가 세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세계와 우리를 연결하는 통로인 감각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세에서나 통할 영적 계시라는 지식획득 방법이 정당화되기 어려운 이상 감각이 지식의 유일한 원천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을 길이 없다. 감각기관을 통해 우리 의식에 들어온 세계에 대한 정보가 바로 여러 가지 관념을 만들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개념과 이론들은 이 관념들이 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신체의 한 부분인 감각기관이 과연 세계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경험론자들의 대답은 여러차례 반복 경험해도 계속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세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사람들에 동일하게 지각된다면 역시 그것도 세계에 대한 믿을만한 사실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따라서 경험론에서 지식의 확실성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번 반복하고, 여러 사람에게 시연하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 추론보다는 실험이 더 중요한 지식 확립의 방법이 된다(Davis, ).
문제는 도대체 몇 번을 시연하고, 몇 사람에게 보여 주어야 그 지식이 확증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경험론은 뚜렷한 답을 줄 수 없었으며 결국 흄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지식은 모두 개연성 혹은 우리 의식의 습관의 결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누적된 경험은 믿을만한 것이라는 어정쩡한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지식의 확실성은 보장할 수 있으나 현실성이 없는 이성주의, 현실적인 지식은 얻을 수 있으나 확실성은 보장할 수 없는 경험주의를 결합하여 의식철학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칸트다. 복잡하고 난해한 칸트의 인식론을 도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지만 일단 시도해 보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칸트는 인간의 감각이 객관적 세계를 모두 포착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베이컨, 로크의 경험론을 비켜간다. 그러나 인간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은 감각지각 외에는 없음을 분명히 하여, 감각지각을 거치지 않고 순수 논리적 연역에만 의존할 경우에는 지성(오성)’이 만들어내는 각종 허깨비들만 얻을 뿐이라 함으로써 합리론 역시 비켜간다. 결론은 명확하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를 표상으로 만들고 지성은 이 표상들을 12범주를 이용하여 개념화하며, 이성은 이 개념들을 추론하여 지식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여전히 인식의 주체는 개별적인 의식인데 이 지식의 객관성은 어떻게 보장받는가? 그것은 바로 이 의식의 근간인 이성의 보편성 때문이다. 즉 인식은 개별 의식이 행하는데, 이 의식의 중심인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다. 따라서 각자 판단하고 인식해도 그렇게 해서 획득한 지식은 보편적이다. 이로써 근대적 인식론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합리론, 경험론, 그리고 이 둘을 조합했다는 칸트의 인식론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전제조건들을 공유하고 있다. 우선 인식의 대상이 되는 세계는 객관적이며 절대적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의 의식이 이러한 세계를 인식한다. 오직 의식이 인식의 주체이며 신체는 단지 인식의 수단이나 대상일 뿐이며, 심한 경우에는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인식은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작업이며, 이 정신적인 작업은 보편적인 이성에 따른 추론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인식의 관건은 얼마나 이 추론의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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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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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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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