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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의 곽노현 말살사건 정리(위키트리 펌)

위키트리의 어느 기자분이 제 블로그 글에 나온 사건을 인용하였기에 해당 기사를 여기에 불펌 합니다 

(이하 기사)

2011년 12월 1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서울교육연수원에서 "서울교육혁신 한마당"이라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혁신학교를 비롯하여 서울 교육혁신에 관심있는 교사, 학부모, 시민단체등이 총 참가하는 서울교육청 최대 행사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서울교육청의 송년회 같은 행사이다.

이 행사는 오전에는 2012년도 서울교육청의 중점 교육계획 연수로 이루어지며, 이 자리에는 서울시내 모든 학교에서 교장, 교감, 교무부장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참석할 정도로 큰 행사다. 오후에는 10개 이상의 분과에서 강의가 진행되며, 강의자만 120명이 넘고, 강의 자료집만 1400쪽에 달한다. 이 행사의 중요성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후에 참석하여 40분간 연설하고, 유인종 전 교육감, 박재동 화백 같은 저명인사들이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이런 큰 행사이니 만큼 당연히 교육감이 개회사를 하고, 축사를 해야 마땅하지만 곽노현 교육감이 옥중에 있기 때문에 이대영 부교육감이 권한대행으로서 개회사를 했고, 곽노현 교육감의 축사는 자료집 표지에 인쇄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국어교사 출신인 이형빈 보좌관이 곽노현 교육감의 옥중 메시지를 다음어서 자료집 표지에 수록하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장학사들이 총출동하여 행사 개막 전날 밤 새도록 자료집에 인쇄된 곽노현 교육감의 축사를 라벨지를 붙여서 가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정황은 블로거인 "부정변증법"이 간명하게 정리해 놓았다(곽노현 메시지 삭제 사건 보기). 일개 장학사들 수준에서 결정된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렇게 하룻밤만에 1500부나 되는 자료집 표지의 곽노현 교육감의 축사위에 철통같이 단단하게 라벨지가 덮이게 되었다. 아직 재판중이긴 하나 엄연한 현직 교육감의 축사가 그 부하들의 손에 의해 삭제되는 참으로 몰상식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행사가 모두 마무리 된 다음 주 월요일, 당시 행사 자료집에 관여했던 장학관과 교육청 파견교사를 인사조치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더구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울시 교육청 과장(교육청의 과장은 회사의 과장 생각하면 안된다. 일선학교 교장보다 두어 급 정도 윗길인 막강한 자리다)들 중 곽감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사였다. 라벨지로 곽교육감의 축사를 덮도록 지시한 사람도 바로 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곽노현 교육감의 측근으로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과장은 "조중동에게 회자되어 재판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그랬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여기에 대해 또 다른 파견교사는 "참으로 궤변이다. 현직 교육감이 교육청 행사에 옥중 메시지를 보냈기로서니 뭐가 문제며, 조중동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또 옥중 교육감은 인쇄물로 된 메시지를, 권한대행은  현장 개회사를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인데, 담당 교사와 장학관이 잘못한 일이 뭐길래 인사 조치를 운운한단 말인가?"라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래서 다시 이 부분을 알아 보니 담당 과장은 인사조치는 취소하고 자료집에 교육감 축사가 인쇄된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처리한 일에 대한 경위서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청 행사에 교육감 축사를 수록한 일이 경위서 받을 일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현상은 곽교육감의 축사가 처절하게 삭제된 사건에 대해 곽교육감의 보좌관들 중 두세명만이 분노를 표시하고, 나머지는 도리어 그 과장의 역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나마 그 과장을 지켜야 교육감이 옥중에 있는 동안 교육혁신이 그나마 진행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곽교육감의 브레인으로 알려진 한 교사는 "혹시 이대영 눈에 곽교육감 메시지 인쇄된거 보이면 혼쭐날까봐 밤새도록 라벨지로 그걸 덮는 관료에게 옥중에 있는 곽교육감의 혁신의지를 맡겨야 할만큼 서울교육 혁신 세력이 그렇게 무력하단 말인가? 그 보좌관들은 자신들의 비겁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서울교육혁신 세력을 심대하게 모욕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옥석을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그는 "곽교육감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곽감의 사람들의 내공이 다 드러났다. 위기의 순간 쭉정이로 판명된 기회주의자들을 몰아내는것이 서울교육혁신 사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면서 결기를 보이기까지 했다.


서울교육혁신 한마당을 축하합니다

곽노현 (서울특별시 교육감)


  아침 일찍부터 비가 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비의 찬 기운이 옷깃을 파고듭니다. 비에 젖은 먼 산을 보기 위해 운동을 나갔습니다. 벽 따라 난 삼각형 모양의 길 안쪽, 풀이 무성한 곳에 서서 심호흡을 합니다. 


물을 흠뻑 받은 들풀 사이로 오늘 따라 유난히 토끼풀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걸로 꽃반지를 만들어서 아내에게 끼워 준 적이 있습니다. 마침 면회시간에 보여줄 생각으로 세 송이를 땄습니다. 


담벼락 아래 이름 모를 키 큰 풀 두 포기가 탁한 자줏빛으로 물들어 늦가을을 실감케 합니다. 자세히 보니 두 포기 중 하나는 거의 물이 든 반면 다른 하나는 반쯤만 간신히 색이 바뀌어 있습니다. 나란히 서서 완전히 똑 같은 토양조건과 자연 환경에서 컸는데도 이런 차이가 나는 게 신기합니다.

 교실에선 더욱 다양한 아이들이 3ㆍ40명씩 모여 서로 기쁨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크고 있습니다. 각자의 다양성과 차이를 풍요와 자극의 원천으로 삼을 뿐 차별과 편견으로 배척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인성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교실마다 잘 어우러진 꽃밭이 되길 기원합니다.

저는 학생들의 자존감 회복, 자기주도 역량함양, 삶의 기술교육, 그리고 학급회의와 학생회 등 학생자치역량 강화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문화예술교육 및 체육수련교육 등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이 최우선이며 진로적성교육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일 것입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 적성 순이기 때문입니다. 

교무회의와 학교운영위원회를 실질화하여 교사의 자발성을 살려야 하고, 지역사회의 참여와 교육기부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민주사회의 공교육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명과 기능입니다. 교실민주주의, 학교민주주의, 교육행정 민주주의만이 2,30년 후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실질화,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씨앗이 좋은 밭에 뿌려지면 무성한 숲을 이룹니다. 이미 서울교육 혁신의 씨앗은 뿌려졌습니다. 이 씨앗이 좋은 결실을 맺어 서울교육 혁신이라는 숲을 이루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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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