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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집값에 낚 여서 표 주지 말자

요즘 경제로 대통령 되신 가카께서 인생철학을 논하신다. 747 어떻게 되었느냐는 질문이 의식되는지 행복과 삶의 질이 꼭 경제성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좌빨스러운 말씀까지 서슴없이 하신다. 결국 가카 덕에 대박나지 않을까 싶어 표 몰아준 백성들만 슈퍼울트라그레이트 빅엿을 드신게다. 그런데 스스로 무지해서 먹은 빅엿이니 누구 탓할수 없다. 이건 셀프 빅엿이니까. 그러니 이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제발 부동산 대박의 꿈은 버리고, 부동산 대박의 군불을 지피는 누군가가 있다면 반드시 의심하자.

물론 부동산으로 대박을 낼 수는 있다. 실제로 내가 비교적 넉넉하고 유복한 성장기를 보내고, 이후 한번도 경제적인 궁박함을 겪어보지 않은 까닭은 부동산 대박의 대가인 어머니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결을 알고 나면 절대 부동산에 낚이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빚이 없다. 
어머니는 아파트를 사건, 땅을 사건 절대 빚을 지지 않았다. 선대인 용어로 하면 레버리지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값이 오르거나 내릴때 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2. 살고 있는 집이 따로 있다.
어머니는 살고 있는 집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았다. 어머니가 투자를 노리는 집은 항상 엑스트라 집, 혹은 집이 아니라 집 지을 대지였다. 즉 사는 집 외에 엑스트라 집이 늘 한 채 이상 있었고, 이 엑스트라 집은 가격이 안정기나 하락기때는 임대소득을 제공해 주었고(나대지는 주차장 임대로 돈 벌었다), 가격이 폭등기때는 팔아치워서 큰 이익을 실현시켜 주었다.

3. 원래 부자다.
여기서 허무해지는데, 그럼 어떻게 어머니는 엑스트라 집이 있었나? 외할아버지가 부자였기 때문이다. 1967년, 교사 월급이 5천원이던 시절, 당시 국민은행 사원인 아버지 월급이 9천원이던 시절, 무려 50만원을 싸들고 시집 온 것이다. 국민은행 5년치 연봉! 물론 그걸 홀랑홀랑 까먹지 않고 알뜰하게 불린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애초에 단칸방부터 알콩달콩, 그리고 간신히 대부끼고 아파트 한채, 오 마이 홈,  이래가지고는 절대 부동산으로 돈벌기는 개꿈이란 뜻이다. 


이걸 그림으로 풀어보자. 흔히 뉴타운에 들썩거리는 사람들은 집값 오르는 것만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오른 집값이 정말 번돈이 되려면 집으로 남아선 안된다. 그 집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돈 주머니에서 먹고 잘수는 없는 일이다. 집을 팔았으면 집을 사야 한다. 따라서 뉴타운이건 재개발이건 간에 집값이 올라서 부자가 되려면 집판돈을 가지고, 그 보다 훨씬 싼 집을 사서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비싼 집은 그럴 이유가 있는 것이고 싼 집 역시 그럴 이유가 있다. 예컨대 가락동에 사는 내가 가락동 집을 팔아서 돈을 벌려면 송파구에서는 두번다시 살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가락동 집값이 오르면 문정동, 송파동 집값도 올랐을 테니 말이다. 더 나쁜 것은 집 한채 가진 사람이 집값이 오르자 마치 돈 번것으로 착각해서 그 차액을 미리 댕겨서 쓰는 것이다. 즉 씀씀이가 헤퍼지는 것이다. 


 그럼 재개발, 뉴타운으로 돈 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건 재개발, 뉴타운에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이 있는 사람, 혹은 거기 살더라도 언제든 이사갈 다른 집이 있는 사람들이다. 즉 적어도 집이 두채 이상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집 값이 오르면 그 집을 팔아서 돈으로 바꾼 뒤, 그 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홀랑 다 쓸 수도 있고, 다시 집을 사서 더 불릴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1주택자의 집은 아무리 집값이 올라도 팔기 전에는 어떤 소득도 주지 않지만 2주택자 이상의 집은 팔기 전에도 꾸준히 임대소득을 올려준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울의 2주택 이상 소유 가구는 넉넉 잡아 20만 가구 내외다. 서울 전체 가구가 적어도 200만 가구가 넘는다고 하면 단지 10%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뉴타운을 하건, 재개발을 하건, 부동산 경기를 진작하건 말건간에 이건 오직 이 10%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1주택자야 값이 뛴 집을 팔아본들 어차피 살 집을 또 사야 하고, 우리 집만 값이 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해 봐야 제자리 걸음이고, 오히려 거래비용만 까먹는 일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면 살고 있는 집을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뱁새들이 있다. 여기서 가장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는데 바로 황새 따라잡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2주택자라야 부동산 경기 덕을 볼 수 있다면, 억지로라도 2주택자가 되는 것이다. 방법은 오직 하나, 빚을 지는 것이다. 빚을 지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전세를 끼고 집을 구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돈, 심지어 사채를 빌리는 것이다. 전세 끼고 사는 것이 얼른 보면 이득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도찐개찐이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은 손에 꼽는다. 설사 그렇게 해서 구입한 엑스트라 집이 대박을 내었다 해 본들 빌린 돈 갚고, 이자 갚고 하면 어지간히 대박을 치기 전에는 의외로 얼마 남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집 값이 오르지 않거나 찔끔찔끔 오른다면? 집값이 답보상태라고 해서 매달 청구되는 원리금 상환 고지서는 사정 봐주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는 내집을 장만할 형편이 못되거나, 혹은 그 지역에 집을 장만할 형편이 못되는 사람이 무리하게 빚을 내어 집을 산 뒤, 몇년만 버티면 대박이 날거야 하거 견디는 것이다. 예컨대 강동구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 집을 팔고 하남시에 전세집을 구해 들어간 뒤 그 차액+은행빚+전세낌으로 잠실에 있는 아파트를 사는 따위의 일이 그것이다. 결국 은행에 열심히 이자 가져다 바치고, 잠실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자존심만 세울 뿐(내가 가서 살지 못할 집이 무슨 소용인가?)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주소가 바뀐 것이다. 눈물나게 근검절약해서 빚갚고, 잠실아파트 전세금줄 돈 마련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결론적으로 뉴타운이건 올드타운이건 간에 집값으로 신세고치자는 생각은 허황된 생각이다. 집은 살곳이지 팔곳이 아니다.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일하는 것 외엔 없다. 부자들이 일 안하고 턱턱 대박낼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이미 부자이기 때문에 한 두번 손실을 봐도 버틸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번의 착오로도 풍지박산이 날 수 있는 서민들이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박을 노리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 그리고  그걸 은근히 유도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건 정부가 아니라 거의 범죄자다. 그러니 두번 속지 말자. 20만 가구의 들러리가 되지 않을 천만 서울 시민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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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