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전에 학교 폭력은 근절되지 않는다

대구에서 중학생이 급우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언론에서 난리를 치고 교육감은 사과를 하고 교장은 직위해제되고, 교육청은 감사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어 왔다. 이렇게 반복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접근법이 틀렸단 뜻이다. 이 와중에 공지영 작가는 은연중에 교사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해서 많은 진보적인 교사들을 낙담시키기도 했다.

잠깐 생각 좀 해 보자. 교사가 가혹행위를 했거나 지나치게 억압적인 훈육, 혹은 성적에 대한 강박으로 스트레스를 주어 학생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수 많은 성적비관 자살 사건에 대해 학교, 교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나와 본적이 없다. 학생의 나약함과 입시제도를 탓했을 뿐이다. 하지만 집단 따돌림이나 집단 괴롭힘의 문제만 나오면 너나할 것 없이 교사를 탓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 학생이 한많은 숨을 거둘때 까지 부모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부모도 눈치채지 못하는 일을 과연 그 아이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명을 보아야 하는 교사가 눈치채기가 쉬운 일이었을까? 그리고 설사 눈치 챘다고 한 들 해결이 가능했을까? 물론 노련한 교사는 눈치를 챈다. 점심시간이나 노는 시간에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고립 학생이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대략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일단 상담을 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학생은 상담을 해도 절대 괴롭힘 당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다 정도만 파악할 수 있을 뿐, 어떤 위협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피해 당사자가 밝히거나, 눈에 띌 정도의 상해가 보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위협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실을 알아낸 다음이다. 왜냐하면 가해 학생들이 완강하게 부정하고, 또 가해 학생들의 부모가 와서 적반하장을 하면 더 이상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가해학생들의 부모는 적반하장을 한다. 콩심은데 콩난다. 어차피 그런 애들 부모는 그런 어른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학교에서 학부모의 전횡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도리어 "이런 하찮은 일로 내새끼 범죄자 취급한다"면서 학부모가 깡패처럼 날뛰면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제나 해결의 열쇠는 가해학생의 부모가 쥐고 있다. 이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절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만약 미국이었으면 이런 비열한 행위에 가담한 학생들은 당장 강제 치료를 명령받을 것이며, 부모들은 학교로부터 소환당할 것이다. 담임이 불렀는데 회사일이 바빠서 어쩌구 하며 안 오거나, 와서 도로 적반하장을 한다면 최악의 경우 교사는 아동 보호국에 연락하여 "친권 박탈"을 의뢰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 가해행위가 인종차별이나 성폭력 계통이라면 이건 뭐, 패가 망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라면 아마 교사가 성난 학부모로부터 폭행 당할수도 있는 일이다. 일단 이렇게 교사를 제압해야 자기 새끼의 처벌이 가벼워진다는 전략적 꼼꼼함이다. 하지만 교사에게 폭언 폭행? 선진국에선 인생 완전히 종칠 각오가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교장을 직위해제한 대구교육청은 완전히 주소를 잘못 짚은 것이다. 가해자가 아니라 교장이 왜 책임을 져야 하나? 일차적으로 책임은 가해자가 져야 한다. 미성년자이니 가해자의 부모들이 거의 무한대의 책임을 져야 한다. 교장이나 교사는 상황을 알았으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렇게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에게 엄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흔히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밖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지, 쳐맞지 않는지 걱정하며 관심을 가진다. 이런 관심은 이기적이다. 홉스가 말했듯이 괴롭힘 당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먼저 괴롭히는 것이니 말이다. 오히려 관심의 방향을 바꾸자. 혹시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해꼬지 하지나 않을까 하고 말이다. 모두가 혹시 피해자가 될까봐 조심하는 사회는 답이 없다. 이건 자연상태다. 하지만 혹시 가해자가 될까봐 서로 조심하는 사회라면, 비로소 시민사회가 성립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 그 수준이 아니니, 우선은 그 수준이 되게끔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집단괴롭힘, 폭력, 성범죄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상당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고, 이런 가해사실이 알려져서 학교에서 소환할 경우 군말없이 와서 학교가 요구하는 조치를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친권을 제한하는 정도의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울산 집단 성폭행 사건도 그랬지만, 이렇게 진짜 나쁜 놈들인 가해자와 거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가해자의 보호자가 아닌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 해서는 절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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