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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업무 정상화에 태클거는 보수 교육자들, 그러지 말고 아이들 살립시다

2011년 4월부터 곽노현 교육감은 교원업무정상화 계획을 추진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무 법적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교사들에게 부과되어 왔던 각종 행정사무를 분리하여 앞으로 순차적으로 충원해나갈 교무행정지원사들에게 이관하고, 행정사무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던 학교의 부서체계를 수업과 생활지도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사업입니다. 그러니 단순한 교원업무 경감 수준이 아니라 교원업무 정상화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 동안 교사들은 3학년 5반 담임, 혹은 사회과 교사의 자격으로 부서편성이 된 것이 아니라 각종 행정잡무의 담당자로서 부서편성이 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교육정보부 홈페이지계, 교육과정부 봉사활동기록계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특히 교육청이나 교과부에서 내려오는 공문들을 처리하는 담당자들이 가장 중요인물로 대접받아 왔습니다. 얼마 전 교사들이 이 공문처리 담당자들의 다면평가 점수를 낮게 줬다고 교장이 깽판을 친 사건도 바로 이런 맥락입니다.

수업? 아무리 잘해도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시간표 빵꾸내지 말고, 애들 소란 안 부리게 한 시간 꽉 잡고 있는게 그 동안 교사들에게 요구된 수업의 전부였습니다. 생활지도? 무섭게 부라려서 애들 숨도 못쉬게 만들고 머리 다 자르고, 줄 딱 맞추게 만들면 그게 생활지도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내면에서 무엇이 어떻게 역동하고 있는지 따위에 관심가지면 공연히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 취급 받았습니다. 결국 수업이고 생활지도고 모두 얼마나 학생들을 억압해서 찍 소리 못하게 만드느냐 외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행정이니까요. 중요한 건 공문서고, 중요한 건 소위 "학교 일"이고 실적사업이고, 각종 보고회, 평가회니까요.

하지만 2012년부터는 달라집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심지어 곽감이 옥중에 있는 동안에도 이 사업을 끈질기게 추진해서 2012년 역점사업 1호로 "교원업무정상화 정착"을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수업과 생활지도가 학교의 중심입니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1300여 교장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였습니다. 만약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학교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순전히 이 혁신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고의려 방해하려는 교장선생님들 탓으로 알겠습니다.

안그래도 교장들이 중심이 된 한국 교총에서 이번 교원업무정상화 방안에 대해 항의 서한을 보냈더군요. 졸속적인 정책 어쩌구 하면서요.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입니다. 크게 네가진데요, 거기에 대해 나름 답해 보겠습니다.

항의1. 교원업무 정상화라고 하면서 행정직원을 늘리는 것은 부당하다. 교무행정지원사는 행정실이 아니라 교무실에서 근무해야 한다.

답변1. 다들 난독증이 쩌십니다. 지난번에는 행정실장들이 공문 읽어보지도 않고, 지들 멋대로 "교무실, 행정실 통합 반대한다"라고 하면서 공청회장에서 난동을 부리더니, 이번에는 교장들이 공문도 안 읽어보고 엉뚱한 소리들 하십니다. 교무행정지원사는 교무실에서 근무합니다. 교감 옆 자리에서 말입니다.

항의 2.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을 단지 행정보조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답변 2. 아니, 그럼 그 동안 교무부장, 연구부장이 사실상 행정직 아니었나요? 두 분은 그냥 늘 하던거 하심 됩니다. 오히려 교무행정지원사가 들어오면서 행정보조직에서 행정관리직 된 기분을 느끼실 겁니다. 실제 댁들 속마음은 이거죠. 다른 선생들도 행정딱까리 하고 있을땐 교무부장, 연구부장이 우쭐거릴 수 있었는데, 이젠 다른 선생들은 교육만 하고 있으니 앞에서 우쭐댈수가 없다. 네 맞습니다. 우쭐댈 수 없습니다. 교감 인턴한다 생각하세요.

항의 3. 교육법에 규정된 교장의 업무분장권 침해다.

답변 3. 참 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십니다. 교장의 업무분장권이 어디 무소불위의 권력입니까? 교육법에는 교사는 교육을, 교감은 교무 통할을, 행정직원은 각종 행정 및 기타 사무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범위 안에서의 업무분장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학교 교장이 나를 3학년 담임에 꽂을지, 2학년 담임에 꽂을지를 분장할 수 있단 뜻입니다. 혹은 담임을 시킬지 아니면 상담부장을 시킬지 수준에서의 분장권이라는 겁니다. 법의 범위를 넘어서 나를 사회선생을 시킬지 아니면 목공실 수선일을 시킬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동안 교장들은 불법적으로 교사들에게 법에도 규정되지 않은 업무를 부과해 왔던 것입니다. 뭘 좀 알고 말하세요.

항의4. 부장들을 모두 비담임으로 못박아서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

답변4. 그럼 부장교사들도 담임 하세요. 안 말릴게요.

항의5. 교감의 역할이 거의 없어서 사실상 교감을 학교 국외자로 만들고 있다.

항의5. 교감이 교무행정업무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공문을 읽고 나서 항의를 하던가 말던가 하세요.

제발 부탁하는데, 보수적이라고 자처하는 교사, 교감, 교장님들. 아이들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이들을 향해 선생님들의 눈이 가고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의 눈길을 아이들로부터 빼앗은게 뭔지 아십니까? 컴퓨터 모니터입니다. 아시겠어요? 다들 모니터 쳐다보면서 소위 "일" 하느라 아이들 볼 새가 없는 겁니다. 교육청에서 쏟아지는 일로도 모자라서 굳이 간단한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고, 법에도 없는 엉뚱한 각종 장부 만들고, 온갖 해괴한 서류작업을 창조해서 강요해 왔던 분들이, 모든 결재가 전자화 되었는데도 굳이 수기 문서 작성까지 요구하면서 선생님들을 모니터 앞에 붙잡아 두었던 분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원로 교육자 분들이십니다.

그러니 이제 제발 함께 모니터 던져 버리고 아이들을 보자고 하는데 태클 좀 걸지 맙시다. 정 걸고 싶으면 좀 제대로 알고 나서 거시던가 하시고요. 수준이 맞아야 대거리를 해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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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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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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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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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