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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한미 FTA 편법 비준과 반대의견 묵살을 규탄한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원)

성명서: 한미 FTA 편법 비준과 반대의견 묵살을 규탄한다

11월 22일 한미 FTA를 한나라당 단독으로 편법, 일명 날치기 통과시켰다.  1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안건에다가 장차 나라의 여러가지 기본 제도가 바뀔수도 있는 중대한 내용들이 담긴 비준안을 불과 4분만에 토론도 없이, 야당도 따돌리고 통과시켰다는 것에 우리 교육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현행 교육과정에는 어느 교과를 막론하고 "민주 시민 양성", "민주시민성 함양"을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지배, 과반수가 아니라 공공의 관심과 자유로운 토론, 다수, 소수를 막론하고 합리적인 의견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을 말함은 중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이런 민주주의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반대의견에는 전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안건을 마치 군사작전하듯이 처리한 모습을 보며, 장차 이 사실을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매우 걱정스럽다.

더욱이 정부와 여당은 토론 없는 날치기 통과 뿐 아니라 국민에게 거짓까지 말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블룸버그는 이 협정의 결과 한국의 무역흑자는 줄어들고,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두달 전만에도 예산안을 놓고 극한대립까지 치달았던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이 이 협정안만은 일사천리로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는 그만큼 이 협정이 발효되면 미국이 큰 이득을 얻는다는 점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것 뿐이 아니다. 정부, 여당,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 협정이 발효되면 수백조원의 이득을 얻는다면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오히려 책임있는 정부, 여당, 언론이라면 국제 무역의 균형을 위해 우리가 미국에게 일정부분 양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정확히 공개하고 국민들의 양해를 구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며 연착륙 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수백조의 거짓된 장미빛 전망을 신문 방송을 통해 폭격하듯 쏟아 부으면서, 정작 진지하게 이 협정으로 인해 발생할 피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괴담"이라는 모욕적인 표현까지 사용해 가며 "물대포"를 쏟아 부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는 이 불변의 사실에서부터 모든 교육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민주는 국민의 뜻이 바로 정부를 움직임을 말하며, 공화는 이 국가는 우월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이 나라가 진정 민주공화국이라면 반대의 목소리도 최대한 진지하게 경청하고 공론을 활성화 시킨 뒤, 국민들의 뜻이 섵부른 비준을 거부할 경우 이를 충실히 반영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자기들만 나라의 장래, 경제를 알고 있으며 국민들은 어리석어서 한치 앞 밖에 내다보지 못하고 괴담에 휩쓸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정부와 여당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공공영역에서의 토의와 토론의 절차를 마치 원하는 결과에 빨리 도달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요식 절차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라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이 비준안의 발효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협정안의 정확한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며, 반대의견을 괴담이 아니라 진지한 의견으로 취급하여 국민적인 토론을 거친 다음에 이 협정안의 발효여부를 결정하고, 국민들이 원한다면 어떤 난관을 뚫고라도  재협상을 통해 국익의 손상을 최소화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 아울러 민주당은 국민들의 삶의 틀을 바꿀수도 있는 이 중차대한 협정안의 편법 통과를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들 앞에 사과해야 하며, 특히 이를 도리어 방치하거나 방조한 내부인사들을 철저히 가려내어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2011년 12월 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부대변인

ps: 저는 2008년 전교조 부대변인이었습니다.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 이후 진보단체중 거의 맏형 취급을 받는 전교조에서 이렇다할 규탄 성명 하나 나오지 않아, '전직'이 대세인 요즘 추세에 따라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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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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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