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학교폭력, 그리고 교권(1) 개념 정의

학생인권조례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다. 개학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보수진영은 학생인권조례를 빌미로 총공격이라도 할 모양이다. 때 마침 학교폭력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서 학생인권조례->교권침해->학교폭력 만연 이런 식의 논리를 펼칠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펼치려면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학생인권이 정의되어야 한다. 둘째, 교권이 정의되어야 한다. 셋째, 학교폭력이 정의되어야 한다. 넷째 학교폭력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를 먼저 분명히 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단지 말싸움에 불과하다.

그럼 이 애매한 것들을 한번 정해 보도록 하자.

1. 학생인권: 학생인권은 대한민국 1)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기본권과 2) 학생이라는 특별한 신분에서 비롯되는 권리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기본권은 신체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참정, 평등, 복지 등 헌법 10조에서부터 37조까지의 모든 권리가 포함된다. 학생이라는 특별한 신분에서 비롯되는 권리는 크게 교육권(사회에서 생존과 자아실현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과 성장권(자신의 소질과 희망에 따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권리)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간다(유엔 권리협약에 근거).그런데 이 교육권과 성장권은 떄로는 안전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어른의 의무사항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왕왕 국민으로서의 기본권과 상충하기도 한다.  바로 이걸 놓고 인권과 교권의 충돌 운운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문맥상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어른은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적성, 소질, 희망을 묵살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학생인권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고 싶으면 본인의 졸저 "학교에서의 청소년 인권"의 1장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2. 교권: 교권은 통칭 교사가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통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교사의 권리는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다. "헌법 제 31조 ④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그런데 이 조문을 보면 교권과 학생인권이 충돌할 일은 없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하는 외부의 압력이 학생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권은 교원은 정부, 정치권, 학부모 등 기타 어떠한 교육외적인 부당한 압력에 대해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지, 학생들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통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것이 교권침해 사례다. 
교사가 자신의 전문성에 의거하여 수업을 하는데, 교장이 마음에 안든다고 수업방법을 바꾸라고 한다거나, 혹은 가르친 방법에 의거하여 평가하라고 하는데 교과부장관이 일제고사를 강요한다거나, 혹은 충분한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몇몇 이념적인 이유로 다 갈아치우거나, 특정 교과서의 선정을 거부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거나, 몇몇 이념집단이 자기들 뜻에 맞지 않는 교사들에게 이념딱지 붙여서 물러나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교총은 이런 교권침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결국 교권과 학생인권은 다른 차원이 이야기이며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교권을 침해하는 요인들은 따로 있으며, 그것은 주로 권력과 사회의 비전문적이고 부당한 압력이다. 최근 느닷없이 빈번해진 경제학자들의 경제논리로 교육재단 및 특정 유형의 교육 강요하기가 가장 대표적인 교권침해다.


3. 학교폭력: 폭력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고의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그럴 가능성을 들어 겁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학교 폭력은 이런 폭력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혹은 교사와 교사간에 일어나는 일체의 폭력 사태들 포괄한다. 따라서 오장풍 사건처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행하는 물리적 타격이나 폭언도 학교폭력이며, 일진회 등의 빵셔틀 놀이도 폭력이며, 학급친구들이 어떤 약한 아이를 찍어 괴롭히는 집단괴롭힘도 폭력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학교폭력을 violence란 말이 아니라 bullying이란 말로 규정한다. violence가 폭력 일반을 말한다면 bullying은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여, 강자가 약자에게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행하는 폭력을 말한다. 따라서 학생들간의 우발적인 싸움은 여기 들어가지 않지만, 빵셔틀은 여기에 들어간다. 여기서 학교폭력을 정의하는 3요소를 뽑아낼수 있다. 1) 위해 혹은 그 가능성으로 겁주기, 2) 힘의 불균형, 3) 습관성 혹은 지속성


4. 학교폭력의 심각성: 학교폭력은 물론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와 연관지어 논의가 되려면 학생인권조례가 먼저 시행된 경기도에서 최근 1년 사이에 특별히 더 심각해졌는가 하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양자간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빌미로 학생인권조례를 비난할 수 없다.


물론 학교폭력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그게 심각한 문제였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라는 새로운 지평에 교사들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함으로써 여태까지 해결해오지 못했던 학교폭력문제에 대한 부채감을 청산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단지 일반인의 통념에 불과하며, 교사가 전문직이라 불리려면 일반적인 통념, 상식에 입각해서 쉬운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이 두 그래프를 보면 실제로 학교 폭력은 2008-2010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2010년에는 도리어 감소하기도 했다. 물론 학생들의 응답 신뢰도의 문제도 있어서 섵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교폭력의 증가는 인권조례가 있기도 전에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아,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엉뚱한 인권조례가 아니라  일제고사, 교원평가, 수준별이동수업, 아린지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경쟁교육에 이유를 들러붙이는 쪽이 더 그럴듯 하다.

그런데 최근 학교폭력이 유난히 심각하게 화두가 되는 것은 결국 언론의 몽타쥬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10명 중 1명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왔다. 그리고 그 피해 사례 수천건 중에서 충격적인 사례들도 수십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도를 안하면 안 보일 것이고, 보도를 하면 보인다. 그리고 가장 센 놈만 골라서 집중 보도하면 우리나라 학교는 차마 다닐수 없는 무법천지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TV나 신문에서 선정된 선정적인 보도에 휘둘리지 말고 직접 데이터를 찾아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최근에야 우리를 찾아온 새로운 강적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교라는 곳이 있어온 이래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는 오랜 적수(?)로서 학교폭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소결론을 내리자.

1)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며, 교권의 진정 심각한 침해는 학생이 아니라 관리자나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다. 
2) 학교폭력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학생인권조례가 그 원인이거나 촉매가 될 것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학교 폭력은 인권 유린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폭력에 대해 더 엄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다만 교칙에 의해 솜방망이 대처를 하거나, 아니면 형법에 의거하여 너무 강한 대처를 해야 했던 일선 학교에서는 가해자를 타인 인권 침해자로서 합당한 조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3)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는 없으나, 적어도 교칙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학교폭력에 엄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마련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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