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의 내분과 정파의 문제(1)

요즘 전교조가 내부가 좀 시끄럽다. 쉬쉬하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전교조 내의 정파갈등은 이미 알려질만큼 알려진 사실이라 감추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게다가 전교조 뿐이 아니잖아? 그 동안 민노당, 진보신당, 도로 민노당 하면서 늘 봐왔던게 정파갈등이다.

그런데 이 정파갈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조직 안에 다양한 이견이 있을수도 있는것이고, 이 이견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점잖고 신사적으로만 토론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때론 감정 대립도 하고, 때론 세싸움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국회의원들이 국K1이라 불리는 것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싸울수도 있고, 분하면 명패를 집어던지고 공중부양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행동이 실제 상대를 물리적으로 아작을 내려고 한 건지 아니면 다만 분노의 표현인지는 이미 서로 알고 있는 부분이니. 싸우고 나서 깨끗하게 사과할수도 있고, 책임질건 책임 질수도 있다.

문제는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집단의 정파싸움에는 싸우는 이견집단들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부인하기 바쁘다. 예를 들면 진보신당이 찢어져 나갈때  "종북세력, 주사파와는 같이 못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진보신당파가 대결한 상대방은 철저히 당내 대의제 기구의 이름으로 맞섰다. 물론 이 대의원들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어디선가 가서 뭔가 회합을 해 왔으리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일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 바로 이게 정파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니 공식적으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며 갈등 이후의 어떤 사과도 봉합도 있을 수 없다. 이 정파 문제는 진보신당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혹자는 진보신당에서 노심조(회찬, 상정, 승수)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심조는 다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에 불과하다. 실제 진보신당의 주주는 따로 있고, 이들은 따로 모이며, 이들의 실체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부인된다.

전교조 내의 정파라는 참실련, 교찾사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부인된다. 공식적인 논쟁은 언제나 형식적인 대의기관인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각자 자기들 정파모임에서 어떤 안에대한 찬/반, 심지어는 토론 방식과 전략까지 다 짜 가지고 나온 상태다. 그래서 다수표를 획득하는데 성공한 정파는 "다수결에 따르라"고 주장하고, 실패한 정파는 "비열한 정파 놀음이다"라고 반발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계속 소외되는 사람들은 정파가 아니라 정말로 조합원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나온 대의원들과 중앙위원들이다(그리 많지는 않다).

이렇게 정파는 조직의 공식적인 대의기구의 배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 실체도, 또 거기에 가입하기 위한 통로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정파는 조직 사업의 성패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A라는 정파가 밀어준 사람이 위원장이 되었다가 파렴치한 짓을 했다면 그건 그 위원장 개인의 문제가 되며 A 정파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터럭만큼도 비판받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정파 내에서 지지를 받는 언어와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언어가 갈라진다. 정파원들은 대체로 80년대의 언어에 익숙한 구운동권들이 많다. 따라서 그들이 익숙한 언어와 행위양식을 구사하면 그들의 추대를 받아 각종 선출직 후보가 될 수 있다. 반면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언어와 행위양식을 구사하는 활동가는 "부르주아, 양키 문화에 쩔은 기회주의자" 취급을 받기 때문에 선출되기 어렵다. 설사 그들이 나선다 하더라도 정파로 똘똘 뭉친 몰표때문에 내부경선을 통과하기 어렵다. 그 결과 대중들에게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운동권 방언구사자들이 자꾸 조직과 운동의 전면에 나서는 악순환이 계속되며, 진보진영은 계속 대중과 유리된 소수파로 전락한다.

둘째, 대중이 아니라 상대 정파를 고려하는 정치공학이 횡횡한다. 조직의 지도부를 경선할 경우 어차피 이쪽 후보나 저쪽 후보나 정파의 추대를 받은 자들끼리의 대결이 된다. 따라서 각 후보와 정파들은 조직의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우선 상대 정파가 뭘 하려고 하는지에 신경을 쓴다. 즉 과두정 지도부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전략적인 행위를 한다. 이 전략적인 행위는 정파간의 대립이 심할 경우에는 온갖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내파적인 행위로까지 발전한다.


셋째, 정파의 구성원들은 폭넓은 외부세계에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기보다는 정파 내부의 관계에 몰두하기 쉽다. 그 결과 그들은 매우 편협한 세계관과 정보를 가지기 쉬우며, 그들 중에서 지도부가 선출되기 때문에 결국 조직 자체가 편협한 세계관과 정보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2008년 촛불국면부터 2011년 꼼수 국면에 이르기까지 진보진영의 유명 조직이 선도적으로 뭔가를 해낸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항상 뒷북, 그것도 헛뒷북 치기 일쑤였다. 그 원인은 바로 이렇게 회전문 사고가 굳어지는 문제 때문이다.

그러니 전교조건 진보당이건 뭐건 간에 진보를 자처하는 조직들은 특히 그 구성원들은 그 조직의 10%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전체 조직을 좌우해온 정파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진보정치라고 하는 것이 소수 활동가들의 과두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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