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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관련 허재현, 진중권 논쟁을 리뷰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다. 나는 원래 정지영감독을 좋아한다. 이 분의 영화는 한국 영화의 특징인 "신파조" "감동" 이런게 없다. 정말 드라이하며 영화가 구조적으로 꽉 차있다. "하얀전쟁"같은 영화는 아직도 한국영화에서 다시 찾기 어렵다. 이번 작품 역시 가히 정지영답다라고 할만한 수작이었다. 그런데 영화 리뷰는 그렇다 치고, 얼마전 허재현 기자와 진중권 선생의 트윗 논쟁(사실상 논쟁이 아니라 허기자에게 진선생이 따따따따 한 것)때의 찜찜함이 남아서 이걸 먼저 해결하려고 한다.

먼저 사건의 발단은 허재현 기자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날린데서 시작된다.




허기자의 이 트윗들에는 옳은 부분과 틀린 부분이 섞여 있다. 옳은 부분은 이 영화가 김교수의 증언이 아니라 재판기록을 보고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 재판 속기록을 한번 보면 누구나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게 정말 재판 맞나 싶을 정도의 명대사의 연속이다. 판사가 아니라 개그맨이 애드립 친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잘못한 부분은 "재판과정이 100% 사실묘사"라고 쓴 부분이다. 이건 불가능하다. 재판 속기록은 말하자면 지문이 없는 대본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들을 웃으면서 했는지 호통치며 했는지, 티꺼운 표정으로 했는지 정중한 표정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예술가의 힘이 발휘된다. 이 건조한 재판 속기록을 보고서 감독은 상황을 이미지로 재구성해내며 배우는 말투, 표정등을 창조하여 이것을 입체적이고 생생한 as if 현실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재판 장면을 보면서 실제 재판이 그랬다라고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면 명백히 허기자의 잘못이다. 예술가로서 감독은 이 재판 장면을 통해 이 사건, 이 재판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가 이 재판을 실제에 가깝게 재구성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기에는 감독의 느낌, 배우의 느낌 등이 얼마간은 섞일 수 밖에 없다. 100% 재현은 심지어 실제 법정에서라 할지라도 불가능하다.

만약 진중권이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그런데 진중권의 지적을 보니 그게 아니다.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영화화로 봐줄 것을 당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쨌다고? 이건 이 영화의 성격을 그냥 재진술 한 것이다. 이건 절대 거짓말이 될 수 없다. 이 영화가 실제로 사실의"재현"이 아니라  "영화화"기 때문이다. "영화화"라는 말 자체에 이미 예술적 작업을 의미하며 얼마간의 허구가 들어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니라면 영화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니까 이 말은 결국 허기자가 이 영화를 그냥 허구가 아니라 대체로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 허구를 가미한 것으로 봐달란 뜻이다.

허기자의 트윗에도 분명히 "아무리 영화라 해도 너무한 것 같아서"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즉 영화적 과장, 허구적 요소의 가미등을 감안해도 너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재판기록을 봤더니 의외로 과장이나 허구가 생각보다 많이 가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 어디에 "이 영화를 실제라고 생각하라"라는 당돌한 요구가 들어 있는가?

게다가 사실을 미적 표현의 소재로 활용한 수준을 넘어 사실 그 자체의 구현을 목적으로 한 작품은 의외로 많다. 이를테면 올리버 스톤 감독은 사실의 영화화의 대가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어떤 사실에서 소재를 얻어 미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일수도 있고, 정말 어떤 기록이나 증언들을 실제 영상을 통해 재현해보고자 한 것일수도 있다. 즉 직접 가서 찍을 수 없는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에 대한 유사 기록물을 남기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 영화는 나레이터가 없다는 점에서 다큐멘타리보다 더 사실적이다. 사실을 직접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리 안 감독의 "우드스톡"을 보는 것이 "우드스톡"관련 다큐멘타리 보는 것 보다 더 생생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연극, 극영화는 진실이 아닌 것을 마치 진실인 것인양 포장할 수 있는 위험한 도구가 될수도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 진중권이 "영화 내용을 모두 사실로 믿으라고 당부하는 거짓말 믿지 마세요"라고 했다면 이 지적은 타당했다. 하지만 "사실의 영화화로 믿으라고 당부하는 거짓말 믿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면 이건 틀렸다. 게다가 진중권이 영화 말고 사실에 대해 충분히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진중권은 허기자를 까기 전에 재판기록을 읽어 보았는가? 아니, 영화라도 봤는가? 적어도 허기자는 재판기록을 보고 영화를 보고 비교한 다음에 저 트윗을 날린 것이다. 나꼼수 17회 10분 들어보고 나꼼수를 말살하려 했던 만용이 오버랩된다.
사실을 영화화한다고 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다. 진중권은 설마 허기자가 그 정도로 바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 말을 보니 그 반대인것 같다. 진중권은 허기자가 바보가 아니라 똑똑하다고 본다. 얼마나 똑똑하냐 하면 픽션인 영화를 은근슬쩍 사실로 착각하게 만들어서 이 힘을 이용해서 정의로운 사법부에 대한 팩트를 공격하려는 선동가로 보는 것이다. 아, 여기서 용어를 잘못썼다. 이럴떄는 '의지'가 아니라 '의도'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굳이 '의지'라는 말을 쓴 '의도'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비유하자면 고대 그리스에 어떤 발칙한 녀석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마치 실제 역사 기록인것 처럼 보이게 한다면 그 자는 장차 "자, 봐라. 신들은 질투쟁이, 호색한이며, 왕들의 조상인 영웅들은 치졸하고 옹졸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주장하면서 기존의 권위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리라.
직설 하자면 허기자는 정지영감독의 노련한 기술덕에 마치 사실인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영화를 이용하여 사법부의 권위를 공격하려는 것인데, 이런 자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마라,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리라. 

개그는 개그로 듣고 영화는 영화로 봐라. 이것만큼 진중권 스스로의 미학을 완벽히 배신하는 발언이 또 있을까? 그렇다. 개그는 개그고 영화는 영화다? 그러니까 레니 리히펜슈탈의 선동영화도 내용을 보지는 말고 그 영상미만 봐라. 영화는 영화니까? 만약 1960년대 사람들에게 솔제니친의 소설은 단지 소설이니까 그 미학적 부분만 음미하고 그걸 근거로 소련사회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갖지마라고 주장하면 받아들일까? 아무리 왕년에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끌어들여서 문화판을 초토화시킨 과거를 반성해도 그렇지 이렇게 정 반대의 주장을 할 수 있나? 게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서 어떻게 발터 벤야민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도시 아케이드에서까지 정치를 읽어내는 사람의 미학을 강의하고 다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감독이 명백히 사실을 재구성하고 사회에 문제제기 하려고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감독 스스로 단지 영화로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그 메시지가 어느정도 진실성이 있는 것인지 재판기록과 비교해 보는 것은 기자가 당연히 할 일이 아닌가? 그리고 비교 결과 상당히 진실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고. 그러니 진중권이 정 허재현을 까고 싶으면 영화는 영화로 봐라 같은 자기 미학 부정하는 이중잣대 들이댈 것이 아니라 역시 재판기록을 읽어 보고 영화가 재판기록을 상당히 많이 왜곡했는데 허기자가 그걸 아닌듯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밝히면 그 뿐이다. 

그런데 심지어 다큐에다가 기사까지도 일종의 극영화로 간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럼 이것들을 다 통틀어서 뭐라고 분류해야 할까? 극영화, 다큐, 기사 모두 허구의 요소가 포함된 것이니 서사물이라고 할까? 하긴 문화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본질적으로 재판과 서사예술은 개연성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보았다. 그러니 극영화, 다큐, 기사, 재판진술, 정치연설 등은 모두 내러티브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같다. 대충 이런 얘기를 한건가? 기사까지 극영화랑 같은 범주에 밀어 넣었으니?

그럼 진중권은 대체 조선일보에 대해 왜 그리 흥분했던가? 조선일보 기자 입장에서 이렇게 말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기사는 기사로 보세요. 왜 기사를 팩트로 보세요?". 아 참, 이 팩트라는 말. 사회학에서는 이 팩트를 객관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팩트 자체도 이미 가치가 함축된 사회적, 문화적 구성물이다. 그러니 팩트 역시 허구의 요소, 의도(의지?)가 포함된 산물이다. 그럼 이제 "팩트는 팩트로 보세요. 팩트를 진실로 넘기지 마세요"라는 말까지 성립 가능할지 모른다.

이상하게 요즘들어 진중권은 유난히 사법부의 권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나꼼수와 곽노현을 묻어버리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덕분에 변희재 관련 재판에서도 자승자박에 걸리고 말았다. 좋다. 사법부의 권위가 유지되어야 공동체가 안정된다는 그 충정으로 이해하자. 하지만 "도가니" 열풍때 "픽션은 픽션이고 사실은 사실입니다" 하고 발끈했더라면 그 충정의 진정성을 이해하겠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법부 욕하고 학교 욕하고 그랬나? 그때 진중권이 나서서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며 픽션을 팩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노력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지금은 가히 도가니의 도가니다"라고 편승한 듯한 느낌마저 남겼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에 대해선 왜 다르게 반응했을까? 진선생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겠지만, 혹시 면 " 허재현이 한마디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허재현과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아마 곽노현을 옹호했기 때문이리라. 그럼 곽노현과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밉살스런 김어준이 옹호했기 때문이다. 아, 모든 길은 김어준으로 통한다? 하지만 진선생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이건 말도 안된다.

다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겨우 트윗 몇줄가지고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 트윗 몇줄을 가지고 이렇게 몰아붙이는 건 인간적으로 할 짓이 못된다. 이건 단지 까기 위한 깜, 한 마리로 생트집밖에 안된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요즘 진중권, 혹은 망치부인 등 별안간 순정, 순결, 도덕의 화신으로 변신한 진보(?) 인사들의 모습이다.

추신: 이 글은 이 영화를 보고 사법부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닭취급을 당한 여러 관객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것이지 진과의 키배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19일 곽감이 석방되면 그를 도와 교육혁신 전략 짜야 하고, 못되면 교육퇴행에 맞서 싸워야 하고, 이래 저래 바쁘니, 소모적인 키배로 나를 끌어들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절대 진중권에게 이 글 멘션시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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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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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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