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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총과 교과부의 근거도 명분도 없는 학생인권조례 딴지 걸기를 중단하라

1월 26일 서울시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할 예정이다. 이를 놓고 한국교총과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반발하고, 이를 근거로 교과부는 이것을 막을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의 주장을 떠들쳐 보아도 근거도 명분도 없다. 왜 그런가?

먼저 하나 확인해 보자. 신체, 양심, 사상, 집회의 자유, 그리고 차별받지 않을 평등의 권리 등은 이유가 있어야 주어지는 권리인가, 아니면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 다 누리게 되는 권리인가? 당연히 답은 후자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을 "한국형 민주주의"로 포장된 "독재정권"치하에서 보낸 어른들은 이런 답이 바로 나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게 답이다. 그래서 국제연합에서도 국내법에 준하는 효력을 가지는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기본 협약"을 반포했고, 우리나라도 이 협약에 동의한 바 있고,  이 협약에 근거하여 각종 하위법을 제정, 정비하는 작업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교총간부들이나 교과부 간부들은 이 유엔의 협약을 읽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읽어 보았으면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기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이 내용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 실정에 맞게 너무 급진적인 부분을 후퇴시켜서 인권운동가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이번 서울학생인권조례다.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한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도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모든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게 헌법의 정신이니까. 하지만 그것에 일부 제한을 가할때는 그 반대 급부로 얻을 수 있는 법익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인권의 일부 제한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고 할때 비로소 정당화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학생의 기본권을 제한해온 각종 규제, 관례들은 모두 헌법 위반이니 당연히 말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교총 등이 결성한 국민연대(얼마나 되는 국민일까?)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려면 대한민국 헌법은 물론 국제법으로도 보장된 학생의 기본권을 일부 제한할만한 충분히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한 번 살펴보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1)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서울시의회 차원의 공청회 등 여론수렴과정이 없는 등 절차상의 비민주성

2) 학칙을 통해 교육벌(간접체벌)이 가능토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달리 일률적으로 교육벌을 금지해 상위법령과 상충된다는 점

3)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실정에 맞게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칙에서 정할 사항을 조례로 일률적 규제하고 있다는 점
4) 의무와 권리의 부조화로 교실붕괴, 교권추락 현상 등 

이 중 1), 2), 3)은 교육적인 정당성을 두고 학생인권 제한을 요구하는 주장이 아니라 단지 절차상의 트집일 뿐이다. 그나마 쉽게 깨어질 논리들이다.

우선 1)의 경우는 공청회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시의회 차원"의 공청회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교묘하게 말장난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말장난을 하는 까닭은 공청회는 충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총에서는 그 공청회에 와서 피켓들고 깽판까지 쳐 놓고는 공청회가 없었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공청회 후기)

물론 의회차원에서 입법공청회를 열면 더욱 좋겠지만, 국회에서도 입법공청회를 여는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공청회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입법청원을 한 주체측, 혹은 입법하려는 의원실 주최로 공청회가 열렸을 경우에는 굳이 별도의 공청회를 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역시 의원 개인입법도 아니고 정당입법도 아니며, 주민발의안이라 그 과정에서 충분히 민간 차원의 토론과 공청회가 이루어졌고, 교육청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러니 이것을 근거로 비민주적이었다라고 말할수는 없다. 비민주적 절차 때문에 정 화가나거든 교총회원들은 교과부 앞에 가서 조령모개식으로 바뀌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개편의 비민주적 절차에 대해 항의좀 하고 오라. 그리고 자기들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나 민주적 절차 잘 지키기 바란다.

2)의 경우는 참으로 견강부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행령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의결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입법해야 하는 것인데, 소위 교육벌을 도입한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이었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몇몇 사람과 장관의 사견을 하루아침에 법적 효력이 있는 시행령으로 내던지는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교육적 효과가 자유, 평등, 참정권과 같은 기본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시행령은 위헌의 소지마저 있다.

3)역시 허술한 논리다. 초중등교육법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실정에 따라 규칙을 제정하라고 되어 있는 규정 속에서는 당연히 상위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운영위원회가 학교실정이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교칙을 정할 수 있나?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기본권을 보장하고, 그것을 국가의 목적으로 선언한 나라다. 따라서 기본권의 보장을 구체화한 조례가 있으면 당연히 교칙도 조례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허술한 형식논리를 늘어놓은 다음에야 소위 교육적 이유를 들고 있는데, 그것 역시 참으로 한심스러운 내용들이다.


4)가 그것인데, 의무와 권리의 부조화라. 이게 정말 중고등학교때 사회시간에 박정희식 헌법 배운 사람들의 발상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생각이다. 국민의 권리와 국민의 의무의 기계적인 균형론. 하지만 이건 틀린 생각이다. 헌법의 목적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국민의 의무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지켜야 할 약속들을 제시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권리가 10이면 의무도 10, 이런 식의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

"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권리와 자유만을 강조할 뿐 의무에 대한 규정이 유명무실합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총 51개의 조항 중에서 학생의 책무를 규정하는 조항은 극히 미미합니다.학교도 작은 사회라는 점에서 권리와 의무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권리에만 치우쳐 개인별 권리만 주장할 경우 갈등이 유발됩니다."

이런 드립을 날리고 있는데,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10조-37조까지28개 조항이 국민의 권리이며, 국민의 의무는 달랑 38, 39조 뿐이다. 그럼 이 자들은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자유만 강조할 뿐 의무에 대한 규정이 너무 적습니다."이럴 사람들이 아닌가?

인권은 기본이다. 사유가 있어서 지켜지는게 아니라 사유가 없으면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상한 이유 말고, 실제 몇몇 권리를 제약해야만 하는 의심의 여지 없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지켜야 하는 것이다.

교실붕괴와 교권추락 현상 운운은 이 드립의 주옥같은 하일라이트다. 최근 5년간 교사에 대한 폭언·폭행으로 인한 학생 징계건 39%가 서울, 26%가 경기도에서 발생하여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의 부정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감히 권고한다. 교육학은 사회과학에 속한다. 그러니 어떤 근거를 제시할때는 제발 과학의 룰을 지켜라. 교권침해 사례의 60%가 서울, 경기에서 발생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이게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 경기에 살고 있다는 것 외에 더 보태주는 정보가 무엇인가? 게다가 최근 5년간 이런 일이 늘어난 원인이 인권조례라는 증거가 있는가?

최근 5년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원인일수도 있고, 이주호 장관이 원인일수도 있다. 또 39%라는 압도적인 다수 사례는 아직 인권조례가 없던 서울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러니 대체 인권조례와 교실붕괴, 교권추락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가장 자주 충돌하는 영역은 복장, 두발, 휴대폰이다. 그리고 이 영역들은 그 규제가 교육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다고 입증된 바도 없는 영역들이다. 하등의 교육적 이유도 없이 단지 어른들이 보기 싫다는, 혹은 예전부터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신체에 대한 제한을 가하며, 이 때문에 공연히 교사 학생간의 갈등과 불신만을 양산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런 소모전은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교장들이 알아서 민주적인 교칙들을 만들어서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라고 교사들을 윽박질러대지 않았으면 없었을 일들인 것이다. 혹은 학생들이 권리를 보장받을수록 난폭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교총은 전문직 단체를 자처해 왔다. 그러니 비전문적 통념에 입각한 말장난이 아니라 과학의 언어, 즉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 학생의 권리 보장을 독립변인으로 놓고, 교실붕괴, 교권침해를 종속변인으로 놓고 그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검증하라. 여기에 몇개의 가설을 제시해 볼테니 골라잡아 보라.

가설1 학생의 인권이 보장될수록 교실붕괴, 교권추락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가설2 학생의 학업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교실붕괴, 교권추락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가설3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에 비해 학교의 민주화가 지체될 경우 교실붕괴, 교권추락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교총은 가설 1에 걸었지만 나는 가설3에 걸 것이다. 물론 확증되진 않았으니 열린 질문이고, 각자 각 가설을 검증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인권은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그것이 제한되어야 하는 근거가 확증되기 전에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박할만한 어떤 교육적 근거도 과학적 증거를 통해 입증하지 못한 교총은 여기에 반대할 자격이 없다.

그 밖에 교총이 내건 사유는 더욱 기가막히다.

5) '임신, 출산, 성적지향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어떤 사회와 합의를 해야 하나? 소수 기독교 광신도들? 임신, 출산,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임신,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들? 이 사람들 혹시 종교때문에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신을 조장한다면서 달려들 기세가 아닐까?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혈기에 그만 임신할수도 있다. 심지어 성폭행에 의해 임신할 수도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그럼 그 순간 다른 학생들과 다른 존재가 되어 핍박과 설움과 격리를 감수하란 말인가?
그리고 나는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려고 한다. 그럼 나는 동성애자인가? 아니면 너는 동성애자니까 안돼, 이러면서 차별하란 말인가? 그게 정당화 된다면 너는 기독교 광신도니까 안돼, 이런 차별도 감수해야 한다.

6) 학교의 정치장화를 초래할 ‘집회의 자유’

이 사람들 아직도 집회 그러면 데모질, 폭력, 이런거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정치란 말에 대해서도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목표가 민주시민양성이다. "민주시민". 얼마나 정치적인가? 우리 교육 목표 자체가 정치적이다. 그런데 학교의 정치장화를 초래한다고 문제라고? 오, 물론 학교는 정치장이 되어야 한다. 학교는 민주주의의 연습장이 되어야 하며, 그 민주주의에서 집회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학교에서 집회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게 설마 학교에서 특정 정당 지지하는 집회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긴 자기들이 한나라당에 몇백만원씩 바치는 교장들의 집단이니 그리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교내집회라 해 봐야 "급식 반찬 개선하라" 수준에서 시작할 것이다. 소위 "정치적"인 집회는 손님을 모으지 못해서 어차피 성사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만약 중고등학생들의 정치적인 집회에 학생들이 모여든다면, 그건 정부가 잘못한 탓일거고. 게다가 학교에서부터 집회를 배워나가야 나중에 어른 되어서 보수 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불법폭력집회 안할거 아닌가? 그러니 솔직히 말하라. 학교의 정치장화가 싫은게 아니라 학교의 민주화가 싫은 것 아닌가? 교장이 까라면 까던 시절이 그리운 것 아닌가? 학생들이 단체로 항의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가 싫은 것 아닌가?

그러니 한국교총과 소위 보수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솔직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우리는 학생들의 신체와 소유물에 대한 통제권을 원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고,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과 모양을 강요할 것이다.
2) 우리는 학생들의 신체와 소유물에 대해 반박의 여지가 없는 명령권을 원한다. 우리는 명령할 뿐 듣지 않을 것이다.
3) 우리는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4) 우리는 우리 기준에 맞지 않는 학생들을 다른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라는 의미에서 차별하고, 따돌리기를 원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학교에서 독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하, 참고로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을 가장 잘 설명한 이재익님의 글을  링크 걸어 둔다. 학생인권조례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채 덮어놓고 흥분해서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걸 읽고 깊이 반성하기 바란다. (이재익님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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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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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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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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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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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