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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 장남 공익근무 크리

요즘 강용석 의원이 곽노현 교육감 장남이 어머니가 근무한 일산병원에서 공익근무를 했다고 병역특혜 운운하며 엄청 나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강용석 혼자 나대고 있고 새누리당 쪽에서는 누구 하나 나서서 지원사격을 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진짜 높으신 분들의 병역 특혜는 째째하게 공익근무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 다음 표를 보자. 병역 특혜는 이쯤 되어야 되는 거다. 뺑이 칠거 다 치고, 근무 연한도 긴 공익근무요원은 절~대 특혜가 아니다.


자, 백보를 양보해서 공익근무도 특혜라고 하자. 일단 손가락 인대 수술 두 번 한건 팩트니까 그건 강용석도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4급 받으면 손가락을 못 움직일 정도일거라고 그러는데, 그럼 워드는 어찌 치냐 운운 한다. 허허, 이 사람 이거 공익근무요원을 아주 장애인으로 아는 모양인데, 큰일날 사람이다. 유명한 운동선수들도 공익근무 많이들 한다. 

얼굴만 봐도 다 아는 이 친구도(음 나랑 또래라서...) 공익의 전신인 방위였단 말씀. 그렇다고 일상에 큰 지장이 있었느냐 천만의 말씀. 나중에 규정이 바뀌어서 못하게 되었지만, 주말과 18시 퇴근 이후에는 경기에 나가 뛸 수 있었기에, 홈경기에는 꼬박꼬박 참가해서 펄펄 뛰었다. 어웨이 경기와 낮경기는 근무지 이탈이라 안되고. 이 친구 그렇게 홈경기만 뛰고서도 안타가 130개(타율 0.341), 홈런 23개, 타점 90을 올렸다. 그러니 젊어서는 괴물, 늙어서는 신이란 소리를 들었는 모양.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공익인 곽감 아들이 워드를 치건, 박시장 아들이 점프를 하건 하등 이상할 것 없다는 거다.

자,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서, 공익은 정상적으로 된거라고 치고, 왜 하필 엄마가 있는 병원에서 근무했냐. 뺑뺑이로 절대 안된다 어쩌구 하는데, 강용석 이 사람, 공익근무요원이 뺑뺑이로 근무지 정해지는 줄 알고 있는데, 술이나 깨고 말하기 바란다. 

이땅의 모든 공익들은 12월 중순이면 날마다 컴퓨터에 들어간다. 병무청에서 공익근무할 기관과 TO목록이 고시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록이 고시되면 어디서 근무할까를 내심 정해 둔 다음에, 운명의 날에 로그인(인증서 로그인) 해서 해당기관에 클릭 난타함으로써 공익근무요원의 근무처가 결정된다. 이게 무시무시한게 낙장불입이다. 참고로 공익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은 매뉴얼 링크해 둔다.

공익근무요원 근무지 선택요령

그리고 실제로 공익근무요원이 근무지를 선택하는 과정을 녹화한 동영상도 한 번 보기 바란다. 무슨 뺑뻉이에 특혜? 땡보직 근무지를 잡는 유일한 방법은 총알같은 클릭 뿐이다.





그럼 왜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이냐?

공익근무요원이 근무지 선택할때 고려하는 것이 네가지다. 1) 아는 사람 있냐? 2) 집 가깝냐? 3)땡보직이냐? 4) 요원들 숫자가 적냐?(많으면 고참, 쫄다구 관계가 형성되어 군생활을 하게 된다)
땡보보다 중요한게 아는 사람 있는 곳이란 거다.

그럼 생각해 보자. 집이 일산이다(위장전입 어쩌구 그러는데, 일가족이 살던 곳이 일산이다. 사모님이 일산병원에서 일하는데 집이 일산인건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마침 근처에 일산병원이 있고 공익 TO가 났다. 이것 만으로도 광클릭 할만하다. 게다가 거기 엄마가 근무한다. 엄마 친구가 근무해도 재수가 왔다인데, 엄마라니.... 이건 정말 운이 좋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병원공익중 대학병원, 일반병원에 비해 보훈병원, 공단직영 병원 등은 지옥문으로 불리는 곳이지만 (공립병원 공익근무요원의 비명소리) 집 가깝고 또 아는사람도 있으니 고생은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일산병원 공익을 1순위로 점찍었을 공익후보자들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대개는 동사무소, 국민연금공단, 등등에서 떠 밀려서 왔을 것이니 창 열리기가 무섭게 일산병원 바로 찾아 클릭하면 배정받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내가 공익근무 판정 받았다. 이제 근무지를 선택할 둠스데이가 다가온다. 앞으로 2년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집 근처 공공의료시설에서 엄마가 일하고 있다.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다. 게다가 공익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먼저 찍으면 배정될 확률이 95%다.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정리하자.

1. 차관급 인사 중 공익근무요원 되는 거 정도를 병역특혜로 받는 경우는 없다. 일차 면제며, 이차는 공익보다는 차라리 현역 갔다가 훈련소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질병제대하는 쪽이 갑이다.
2. 공익근무 판정을 받기 위해 신체가 엄청나게 불편할 정도의 장애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공익근무요원들 다 멀쩡한 분들이다. 다만 "전투""작전"이 불편한 것이지 일상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3. 공익근무요원의 근무지는 뺑뺑이 배정이 아니라 본인이 인터넷으로 선택한다.
4. 이때 집 근처에 어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이 있고, 거기 공익 TO가 났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당연히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병원이 1순위를 다투는 땡보직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했다면 거의 1순위로 배정 확정 될 것이다.

따라서 이걸 병역특혜 의혹 어쩌구 하는 것은 참으로 억지다. 그러니 강용석 의원은 새누리당 쪽에서 자신의 의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박근혜한테 욕트윗이나 날리지 말고, 또 째째하게 공익근무가지고 시비걸지 말고 자녀 병역면제 고위직들 찾아서 이 땅의 정의를 세우기 바란다.

외국 갔다 와서 제일 먼저 이런 포스팅부터 쓰게 되어 솔까 좀 짜증난다.

지속적인 포스팅을 위해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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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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