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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수업 증감으로 진보교육감이 우왕좌왕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엉터리

동아일보와 문화일보가 신났다. 체육시수 4시간으로 늘리랬다가 말랬다가 하면서 서울교육청이 일선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간만에 피치를 올린다. 하지만 그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그건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다. 그러니 그 사태의 전말을 정리해서 일부 3류 신문의 혹세무민에 경종을 울리도록 하자.

문제의 발단은 학교폭력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잠재우려던 교과부와 보수집단의 언론플레이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오히려 잠자던 사자의 코털을 뽑은 격이 되었다. 원래 보수집단의 생각은 학교폭력을 잡기 위해서는 소위 교권을 강화해서 학생들을 꽉 틀어쥐게 해야 한다는 듣기에도 곰팡내 펑펑나는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 특유의 선정성 때문에 불과 며칠 만에 전국의 모든 학교가 마피아들과 조폭이 지배하는 악의 구렁텅이로 도배질되고 말았다. 경찰까지 나서서 일진회 소탕 운운을 하면서 공포감을 부추겼다. 이런 상황에서  "교권을 강화하겠다"는 대답따위는 먹힐 턱이 없다.

게다가 이들에게 더 나쁜 것은 학교폭력이란 결국 학생과 교사들의 인권감수성 부족, 불의감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학교문화를 인권친화적이고 불의에 민감하도록 바꿈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는 진보교육감쪽의 주장이 먹혀들어간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빌미로 인권을 몰아내려는 시도는 북한이 처들어올지 모른다는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을 마구 압살하던 수십년전의 논리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망령든 수구들에게나 통할 이야기였던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인권감수성 함양을 위해 교육연극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곽노현 교육감의 시도가 참신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교과부는 더 초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조악한 모조품을 내 걸수 밖에 없다. 문예체 아닌가? 그러니 곽노현이 문예면 이주호는 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사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하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체육 시수를 2시간 늘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당장 2시간 늘어난 체육시간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체육교사의 수급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다른 교과 시간의 조정은 어떻게 해야할지 등등을 이미 초중등 교사 인사가 다 끝나고도 일주일이 지난 2월 17일에 결정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시간표 다 짜고, 체육교사 발령도 다 났는데, 게다가 교사 정원도 10%나 감축해서 각 학교마다 교사가 부족해서 아우성인데 여기대 대 놓고 11일만에 체육수업을 두배로 늘리라는 공문을 던지는 교과부 장관은 차라리 교육방해부 장관이라 불러 마땅하다. 그러니 애초에 말도 안되는 혼란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교과부 장관이지 서울, 경기, 광주, 전북 교육감이 아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말도 안된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불만이 쏟아져 나올때 행정의 일관성 운운하며 낙장불입하는 교육감과, 그 목소리를 반영해서 중단을 지시하는 교육감중 어느쪽이 더 나은 교육감일까? 당연히 후자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 4개 시도 교육감은 현장의 아우성을 반영해서 조속히 무모한 체육시수 증가조치를 중단한 것이다. 교과부 장관의 지시이니 폐지는 못하고, 일단 여건이 갖추어질때까지 연기, 유보 정도가 교육감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범위이니 유보, 중단에 그친 것이다. 이걸 혼란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문해교육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다. 이건 교과부의 철없는 정책이 불러일으킨 혼란을 수습한 것이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맛이 가서 당장 다음주부터 TV편성시 역사드라마를 두배 이상 편성하라고 지시했다고 치자. 그럼 형편없는 역사드라마라도 꾸역꾸역 만들어 내는 방송사와 작가, 연출가 등을 확보할 때까지 유보하고 그 대신 역사 다큐멘터리를 방영겠다는 방송사 중 어느 방송사의 사장이 혼란을 유발하는 사람인가?

그런데 동아일보는 그로부터 며칠 뒤 곽노현 교육감이  "스포츠 클럽활동을 강화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면서 또 오락가락이라고 우겨댄다. 하지만 스포츠클럽활동은 작년부터 곽교육감이 매우 중요시하던 정책을 계속 이어하는 것에 불과하다.
 동아일보의 그림에 따르면
1)  "체육시수 늘리랬다가, 2) 다시 늘리지 말랬다가, 3) 이번에는 스포츠 클럽 활동으 강화하라고?" 이렇게 오락가락이 된다. 하지만 실상은 1) 체육시수 늘리라는 교과부의 말도 안되는 지시, 2)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진보교육감들의 중단 혹은 유보조치, 3) 그 대신 작년부터 활성화 시켜온 스포츠 클럽활동을 보다 더 활성하 시키라는 대안적인 조치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뭐가 혼란이고 뭐가 우왕좌왕인가? 오히려 "엉터리 명령" "일단 거부" "적절한 대안의 제시" 이 순서가 아닌가?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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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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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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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