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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조합원도 모르는 사이에 전교조출신 비례대표가 추천된다고?

전교조 조합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글쓴이가 SNS에 취약하다면서 대신 보급해 달라 부탁하셔서 여기에 게재합니다.

(이하 퍼온 글)


2월 22일 전교조 신문 기사 내용이다.
전교조 등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등의 정당에 교육후보 4명 이상을 비례대표에 배정하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오는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교수노조와 대학노조, 전교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30여 개 교육시민단체가 야당에 직접 후보를 추천하는 등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 단체가 꾸린 ‘행복교육실현을 위한 민주진보교육후보 추진위원회(이하 교육후보추진위)’는 21일 서울 대학로 흥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진보교육 후보를 반드시 국회에 진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선언에는 모두 1만3854명의 시민이 함께 했다. 교육후보추진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3일만이다. 선언자 이름이 A4용지 13쪽에 달한다.

교육후보추진위는 구체적으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등의 정당이 4명 이상의 민주진보 교육후보를 비례대표에 우선 배정하도록 강도 높은 활동을 펼쳐나가겠다”며 “이것이 잘 안 될 경우 후보를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하는 것 또한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후보추진위는 이미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등 정당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교육후보추진위 관계자는 “대표에게 추천 후보를 비례대표로 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2월 24일 페북에 올라온 민주노총 이영희 정치위원장의 글이다.

"2월 24일(금) 19시 30분 민주노총 13층 중회의실에서 통합진보당 교사 공무원 개방형명부 전략공천 관련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조준호 공동대표, 김영훈 위원장, 정희성 부위원장, 이영희 정치위원장, 이혜선 노동위원장,
전교조 장석웅 위원장, 박미자 수석, 정진후 후보, 한만중 정치위원장, 박태균 전사무처장
공무원노조 양성윤 위원장, 안병순 전사무총장, 김영철 전정치위원장, 이태기 후보 등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에 전교조에서 정진후 전 위원장을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다는 글을 아래 성폭력피해자지지모임 글에서 읽었다.

통합진보당에 그런 추천을 하는 것에 조합원들의 의견을 어떻게 물었는가?
민주통합당에 그런 추천을 해달라고 누가 부탁하라 했는가?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정해숙 전 위원장이 아니고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이부영 전 위원장이 아니고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이수호 전 위원장이 아니고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원영만 전 위원장이 아니고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이수일 전 위원장이 아니고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장혜옥 전 위원장이 아니고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정진화 전 위원장이 아니고 왜 정진후 전 위원장인가?
그 기준이 무엇인가?
위원장 출신이 아닌 조합원들중 검토된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전교조에서 언제 그런 추천을 하기로 했는가?
어떤 단위에서 결정한 일인가?
어떤 단위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인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가?
전교조가 노동조합이 맞는가?
장석웅 위원장, 박미자 수석부위원장, 한만중 부위원장, 정진후 전 위원장, 박태균 전 사무처장(박석균 전 사무처장의 오기인 듯) 등 몇 사람의 대주주가 좌지우지하는 주식회사인가?

조합원들은 바란다.
자신이 전교조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합의 지도부 동지들이 지도부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교조 전체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교육을 위해서 봉사하기를 바란다.

현재 방영중인 mbc드라마 '신들의 만찬'에서 아리랑 명장 정혜선의 대사 일부를 옮긴다. 아리랑에서 2인자인 전인화에게 충고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제껏 아리랑을 위해 살았다. 나의 존재보다는 아리랑이 나의 삶의 전부였다. 너에게는 요즈음 아리랑이 없다. 있다면 오로지 너의 독선과 오기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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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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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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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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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